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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색하는 정신의 지도에서 ‘공약’닮은 정책지도로
탐색하는 정신의 지도에서 ‘공약’닮은 정책지도로
  • 안길찬 기자
  • 승인 2001.07.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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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10 10:59:25
총장들의 대학 운영 청사진이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곳이란 어딜까. 대개 ‘취임사’에서일 것이다. 총장 취임사는 그들의 대학 운영 스타일을 담아낼 뿐만 아니라 이들이 지닌 교육관, 사회관, 사유의 깊이까지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한 자료다.

그러나 한국 대학 총장들의 ‘취임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지 않다는 점에서, 또한 취임사에 담은 포부에도 불구하고 권력이나 법인에 의해 강제 하차 당하는 경우가 있고 보면 ‘취임사’는 단순히 종잇장 건축물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임사’를 중요하게 들여다보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이제 막 대학의 수장 자리에 입문하여 수만명의 지성을 이끌고 ‘북극성’을 향해 험한 항해에 나서는 ‘리더’의 나침반이자 정신의 지도라는 사실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북극성 향한 리더들의 나침반

이러한 사실은 고난의 시절 총장직에 취임한 지성들의 취임사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 유진오 고려대 총장은 1952년 9월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대학은 민족과 국가의 문화를 담당하는 기관이며 문화는 민족과 국가의 성쇠를 좌우하는 원동력이므로 대학교육의 내용이 충실하고 대학생의 의기가 헌양하면 비록 그 민족 그 국가가 고난에 처해 있더라도 능히 그 고난을 극복하고 번영의 피안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 국가와 민족이 ‘번영의 피안’에 도달할 수 있는 궁극적인 원동력으로 ‘대학’과 ‘대학교육’을 꼽고 있는 이 이해는 궁핍한 시절, 행복한 총장들의 자긍이었음이 분명하다.

1995년 3월 이수성 서울대 총장이 취임사를 통해 “물질주의 문명의 탁류에 휩쓸려 대학조차도 지금까지 사회의 가치와 규범을 떠받치던 일을 소홀히 한 채, 시류에 안주하며 사회의 도덕적, 정신적 구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오지 못했다”고 고백한 바 있듯,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대학 총장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와진 현실 속에서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자의 고뇌를 내비치게 된다.

과거나 지금이나 총장 취임사의 한 단면은 시대적 소명의식, 구성원들의 통합, 비전의 제시로 축조돼 있다. 하지만 세월과 함께 이 구도 역시 적잖은 변화를 내보이고 있다. 먼저 외부적 요인에 의한 변화.

권력에 주눅든 얼룩진 시대

1961년 12월 7대 총장에 취임한 권중휘 총장은 취임사에서 “난국을 뼈저리게 인식하고 분연히 일어선 충성된 혁명용사들에게 경의와 감격을 아낄 수 없습니다. 뜻있는 사람들은 기왕에 국가의 전도를 깊이 우려하는 나머지 기적을 바라기도 했습니다만 기적이 마침내 오고야 말았습니다.”라고 당시 쿠데타군에 영합했다. 그가 자주 동원한 말들은 조국애, 정의감, 진리에의 충성심 등이었다.

이러한 취임사는 1964년에도 되풀이됐다. 신태환 서울대 총장은 이 해 7월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학생들이 교문을 차고 나가는 것은 그대로 사회불안의 연장이다. 대학의 사회참여란 한국의 지성의 방향을 가르치는 것이고 교문을 차고 나가는 것은 아니다.” 1983년 11월 취임한 이현재 서울대 총장도 취임사에서 “지성은 대학이 호흡하는 공기이기도 하다. 서울대인의 지성은 반드시 학원 안정에 결정적으로 기여해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해, 당시 광포한 전두환정권의 ‘학원 안정 시책’에 편승해버렸다.
권총장이나 신총장, 이총장의 취임사는 군사 쿠테타 세력의 등장에 따른 지성의 위축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이를 1970년 10월의 김상협 고려대 총장 취임사와 비교해보자. 그는 “일체의 기성에 대한 과감한 도전, 일체의 기성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을 강조하면서 “진정 역사의 고아, 시대의 낙오자로 탈락하지 않고 여전히 새로운 선두로서, 민간의 향도로서 계속 달리기 위해서는 날로 새로워지고 날로 젊어지는 선취적 기상을 유감없이 발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민족 고대’라는 자긍심에 가득한 이 취임사는 결국 김총장의 정치적 운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됐다.

총장 취임사가 변화되는 내부적 요인은 대학 환경을 들 수 있다. 70년대 말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1979년 6월 고병익 서울대 총장의 취임사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취임사에 그려진 서울대는 외형상 이미 2천여명의 교원에다 1만8천여 명을 웃도는 학생을 보유한 거대 집단이었다. “민족의 여망에 부합하는 대학으로 발전하고 또한 우리나라가 선진산업사회로 도약함에 있어서 반드시 이뤄져야 할 과제”로 대학, 대학원 과정의 육성 강화를 들고 나왔다. “학문분야의 연구에 대한 지원을 집중 강화하여 거기에서 세계적 수준의 연구 성과들을 얻고, 나아가서는 학문 전 분야의 발전을 촉진시키는데 이바지한다”는 구상이었다.

90년대들어 대학 내부문제 비중 늘여

이러한 구상은 비단 국립 서울대 총장만의 것은 아니다. 2000년 8월 취임한 김우식 연세대 총장 역시 취임사에서 “우리대학은 오래 전부터 세계 1백대 대학진입을 목표로 삼아 왔다. 이제 명실공히 세계적인 대학이 되기 위해 연구와 교육의 질적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여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 1998년 고려대 총장에 취임한 김정배 교수도 취임사에서 “고려대학교의 교육 경쟁력과 연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교육 및 행정의 정보화와 국제화를 능동적으로 실천하고 한”고 명시했다. 급변하는 대학의 사정을 이만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달리 없을 것이다.

총장 취임사의 또 다른 비밀은 준열한 대학 지성의 자기 비판이다. 세속화된 대학의 현실을 스스로 점검하는 이 모습은 서울대 22대 총장에 취임한 이기준 교수의 1998년 11월 취임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학이 고시촌화되는 등, 세속적인 가치기준에 휩쓸려 순수학문이 도외시되는 현재의 대학 분위기는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이기준 총장 취임사에는 교육을 마침내 ‘교육 수요자’에게 내맡기는 ‘비교육적’ 발상도 담겨 있었다. “교육의 축이 교수 위주의 공급자 중심에서 과감히 학생 위주의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게 그렇다. 이것 역시 다변화되는 대학 현실을 반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취임사는 이제 알게 모르게 현실 속에서 항해하는 운영 프로그램의 일부로 전락해가고 있다.
안길찬 기자 chan121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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