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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론’ 세계 대표 수학자…난제의 실마리를 찾다
‘정수론’ 세계 대표 수학자…난제의 실마리를 찾다
  • 김재호
  • 승인 2022.05.26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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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학기술인 이야기 ⑬ 최영주 포스텍 교수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이 시대 여성과학인 소개 캠페인 ‘She Did it’을 펼치고 있다. <교수신문>은 여성과학기술인이 본인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경력 성장을 하기 위한 다양한 이야기를 공동으로 소개한다. 여성과학기술인이 현장에서 겪고 있는 생생한 목소리가 교수사회에 전달되길 기대한다. 열세 번째는 최영주 포스텍 교수다.

8년 동안 영국·네덜란드·한국 수학자 협업
불변의 진리 찾아가는 개척자로서 성과 도출

최영주 포스텍 교수(수학과)는 ‘정수론의 대표 수학자’다. 최 교수의 전공 분야인 ‘정수론’은 수학의 근본인 ‘수’의 성질과 패턴을 연구하는 순수 학문이다. 흔히들 수학자는 특출난 재능을 타고난 ‘천재’라고 생각하는데, 재능보다 중요한 것은 진리를 향한 애타는 마음과 진리를 발견하기까지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인내와 노력이다. 

 

최영주 포스텍 교수(수학과)는 미국 템플대에서 수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통령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위원, 한국여성수리과학회 회장, 포스텍 수학연구소장을 역임했다. 사진=WISET

세계 수학계로부터 ‘오래된 수학 난제 해결의 새로운 방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최 교수의 ‘실가중치 주기이론 논문’도 8년 이상의 연구 끝에 완성됐다. 최 교수는 “영국, 네덜란드 그리고 한국 수학자가 함께 완성한 작업”이라며 “국경을 오가며 함께 연구에 몰두했고, 각자의 나라에서 서로의 생각과 연구 과정을 교환한 이메일은 수천 통에 이른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이기에 그 과정 자체가 흥미롭기도 하지만, 그 길 끝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어 두렵기도 하다”라며 “동료 수학자들이 있어 이런 두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최 교수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우리는 모두 ‘불변의 진리’를 찾아가는 개척자이며, 그 과정이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를 잘 알고 있다.”

최 교수는 수학에 대한 애정과 열정으로 국내를 넘어 세계 수학계에서도 빛나는 성과를 개척해왔다. 그는 아직도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수학, 그 불변의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이 얼마나 가슴 벅차고 아름다운 일인지를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10대 시절, ‘왜 세상 모든 것은 변할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친구와의 우정도 남녀 간의 사랑도 영원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되었던 거죠. 고민은 ‘시간이 지나도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는 없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고, 그 해답이 되어준 것이 바로 ‘수학’이었어요. 진리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런 아름다움에 가까이 가고픈 간절한 마음이 저를 수학자로 남게 한 것 같습니다.”

수학에는 중간이 없다. 예측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방법을 상상하여 개발하여, 그 자체로 완벽한 진리를 찾아가야 한다. 최 교수는 그 과정이 여전히 즐겁고 설렌다고 했다. 그는 “수학자는 진리를 예측하고 그것이 진리임을 증명해 내야 하는 숙제들이 주어지는데 그것들을 난제라 한다”라며 “이 세상에는 여전히 많은 난제가 존재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수학자에게 주어진 과제인 동시에 가장 흥분되고 설레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최 교수는 “그 과정에서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기도 하고 몇 백년 동안 아무도 접하지 못했던 반짝이는 진리로 가는 황금의 길을 개척하기도 한다”라고 강조했다.

 

논문 완성의 두려움과 수학자 사명

최 교수는 수학자의 삶은 ‘두려움의 연속’이라고 했다. ‘과연 내가 이 논문을 완성할 수 있을까, 수학자로의 삶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은 평생 함께해야 할 동반자라고 했다. 그럼에도 단 한 번도 포기를 떠올리지 않은 건 두려움보다 두근거림이 더 크기 때문이다.

최 교수가 처음 수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1980년대 초만 해도 국내 여성 수학자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1986년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처음 강단에 섰을 때, 수업을 들은 학생이 “동양 여성 교수는 처음 만난다”라며 놀라움을 표했으니, 당시에는 미국 역시 여성 수학자에게 그리 녹록한 환경은 아니었던 듯하다.

​최 교수가 국제 학회를 조직하고, 한국 수학회지 편집장, 한국여성수리과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인재 양성에 힘쓰는 것도 우리나라의 수학자, 특히 여성 수학자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진리를 탐구하며 수학자로의 행복을 경험하길 원해서다.

​“수학자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개척자입니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나만의 방법으로 만들어가야 하기에 상상력과 창의력이 필요하죠. 이러한 능력은 결국 다양한 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더 넓은 시각을 가질 때 키워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국제 활동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100개 이상 국제 학회 주관

최 교수는 후배 수학자를 위해 100개 이상의 국제 학회를 주관해왔다. 바쁜 연구 일정 속에서도 이러한 활동을 하는 이유는 ‘먼저 이 길을 걸어온 선배’로서의 의무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선도할 기술은 과학이고. 과학은 근본적으로 수학을 기초로 해요. 이제는 우리 일상의 한부분인 휴대전화에서부터, 우주 개발, 인공지능, 기후 변화 예측 등 우리 삶에 변화를 주도할 첨단 기술의 모든 바탕에는 수학적 근거가 자리합니다. 그렇기에 더 많은 여성 인재들이 수학계에서 성장해나가며 이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기를 원하죠. 이를 위해서는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최 교수의 표현에 의하면 ‘수학은 아름다운 진리’다. 수학자란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진리를 찾는 개척자며 수학이란 엄밀한 증명을 통해 이를 구체화 시키는 언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의미로 수학자는 개척의 가장 선두에 있다. 최영주 교수는 앞으로도 ‘아름다운 진리’를 찾아가는 개척자의 삶을 지속해나갈 것이다. 난제를 만났을 때, 여전히 그녀의 심장은 가장 빠르게 뛰기 때문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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