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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도덕의 계보』 입문
니체의 『도덕의 계보』 입문
  • 최승우
  • 승인 2022.05.20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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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콘웨이 지음 | 임건태 옮김 | 서광사 | 280쪽

이 책은 영미권에서 영향력 있는 니체 연구자로 잘 알려진 콘웨이(Daniel Conway) 교수가 2008년 『도덕의 계보』에 대해 쓴 해설서를 옮긴 것이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 서문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통상 수행하는 지식 활동이란 낯선 것들을 익숙한 것으로 동화시키는 작업이며, 그런 작업만 지속적으로 하게 되면 익숙한 것 자체를 문제 삼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기서 니체가 염두에 두고 있는 익숙한 것은 서구의 전통적인 도덕적 가치들이다. 그래서 『도덕의 계보』에서 니체가 시도하는 작업은 바로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져서 더 이상 문제 삼기 어려웠던 도덕적 가치들 자체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그 가치들의 기원을 추적해 밝힘으로써 따져보는 일이다.

『도덕의 계보』는 전통적인 도덕적 가치들을 차례로 문제 삼고 의심하는 세 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좋음과 나쁨, 선과 악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첫 번째 에세이는 도덕상의 노예 반란에 주목한다. 그런 반란이란 좋음과 나쁨이라는 이기적이고 귀족적인 가치들이 선과 악이라는 이타적이고 노예적인 가치로 전도된 과정을 말한다. 니체는 이런 가치 전도를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금욕적 사제에게 주목한다. 자신이 스스로 느꼈던 귀족들에 대한 원한을 노예들에게 심어주고, 무력함을 선으로 내세울 수 있도록 조작했던 금욕적 사제의 개입에 힘입어 도덕상의 노예 반란은 비로소 성공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반란이 성공한 결과 인류는 더 이상 타인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야수가 아니라 범용하고 온순한 가축 무리로 길들여지게 되었고, 인류의 미래는 극히 위태롭게 되었다. 니체에 의하면 인류가 미래의 생존을 계속 보장받기 위해서는 노예도덕이 악하다고 선언하고 비방했던 야수적 개인들의 부활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에세이는 양심의 가책과 죄책감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행위를 하지 않도록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양심의 가책을 마음속에서 들리는 신의 목소리처럼 대개 긍정적으로 평가해 왔다. 그러나 니체는 양심의 가책이 비롯된 도덕과 무관한 기원을 폭로함으로써 그런 상식을 뒤집는다. 니체에 의하면 양심의 가책은 국가나 사회 속에서 작용하는 관습의 도덕이 가한 압박에 의해 잔인성의 본능을 외부로 발산하지 못하게끔 갑작스럽게 차단된 약자들이 자신을 대상으로 삼아 그런 본능을 발휘한 결과물이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 니체는 양심의 가책을 반자연적 본능과 결합시켜 그런 본능을 제압할 수 있는 능력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놀라운 반전의 가능성 역시 제시한다.

세 번째 에세이에서 니체는 금욕적 이상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 청빈, 겸손, 절제 등 그리스도교에서 내세웠던 금욕적 이상들은 죄인들이 고통스러운 삶을 거짓된 것으로 부정하고, 이와는 또 다른 참된 삶을 지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따라서 금욕적 이상의 핵심은 바로 거짓을 거부하고 진리를 얻으려는 진리에의 의지다. 더 나아가 니체에 의하면 삶을 부정하는 이런 식의 역설적 삶이 가능한 이유는 인간이란 의지하지 않기보다는 오히려 무를 의지하는 편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금욕적 이상은 무에의 의지 역시 숨기고 있다. 그렇다면 금욕적 이상과 반대되는 대안적 이상은 무엇인가? 학문이 유력한 후보다.

니체는 자신과 같은 학문의 수행자들이 진리에의 의지를 진리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의심하기 위해 발휘함으로써 진리에 관한 진리가 드디어 드러나게 되면 진실성을 기반으로 삼고 있던 그리스도교 도덕의 자기 극복이 가능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니체는 독자들로 하여금 의심하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던 진리의 가치에 대한 믿음에 진리에의 의지를 과감하게 적용함으로써 그런 믿음을 떨쳐버리고 도덕의 자기 극복 과정에 기꺼이 동참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도덕의 계보』 서문 말미에서 니체는 아포리즘 등으로 구성된 자기의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독해가 아니라 해석이 필요하고, 제대로 된 해석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서는 되새김의 과정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도덕의 계보』를 특징짓는 레토릭적 긴박성과 반대로 오히려 니체는 아주 천천히 꼼꼼하게 읽고, 깊이 사유하기를 독자들에게 요청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에 대해 워릭대학(University of Warwick, UK)의 키스 안젤 피어슨(Keith Ansell-Pearson) 교수는 “이 책은 교수법적인 측면에서 역작이다. 나는 다니엘 콘웨이가 최고 수준의 학생들의 필요를 염두에 두고 니체의 고전에 대한 안내서를 서술한 방식에 대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생들이 니체의 저술을 연구하는 데 도움을 받으려면 이 책을 가장 먼저 찾아야 한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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