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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마 아파트' 바깥의 퍼레이드
‘은마 아파트' 바깥의 퍼레이드
  • 신현아
  • 승인 2022.05.24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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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신현아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과 박사 수료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무려 ‘교수’신문에서 ‘학문후속세대’들 중에서도 ‘지방대학’의 위치에서 발언할 연구자를 수소문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그럼 당연히 나지. 지역에서 태어나 지역의 사립대에서 학사·석사·박사과정을 모두 마치고 지역에 관한 연구를 하는, 34년 인생에서 지역이라는 외길만 걸었던 바로 나를 찾는 전화였다. 

이 운명적인 청탁을 받아들고, 다른 연구자들은 어떤 이야기를 썼는지 보기 위해 이 지면에 실렸던 글들을 모두 천천히 읽어보았다. 그리고 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아니, 필자 중에 ‘서울대학교’ 소속이 놀랄 만치 많았다. 이런 와중에 지방에서 연구하는 연구자를 찾기 얼마나 힘들어 수소문을 하였을까. 결국 내가 부여받은 지면은 단지 나에 대해 쓰는 것이 아니라, 이 지면의 높은 ‘서울대학교’ 비율을 약간 희석해주는 ‘지방대학교’ 필자의 역할도 함께 부여받은 것이다.

물론 나도 처음부터 의심이 많은 연구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눈치 없는 사람에 가깝다. 지방에서 연구를 하다 보니 내가 놓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나에게 마련된 자리가 정말 내 것이 맞는지 자꾸만 묻고 따지고 삐딱하게 굴게 되기 때문에 이렇게 되고만 것이다. 그렇게 한참 의심하며 자문자답을 거친 후에는 그 다음 선택지가 나타난다. ‘의심한 결과를 질러버릴 것인가 꿀떡 삼킬 것인가!’ 지르면 지금과 같은 소리를 쓰게 되고, 꿀떡 삼키면 그냥 지역에는 인력풀이 적고, 지원도 적어서 힘들지만 열심히 연구하겠다고 쓰면 된다. 물론 나도 그런 의심과 고민 없이, 그냥 열심히 연구하겠다고 쓰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지역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에게 마련된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계속 묻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자체가 연구 주제를 놓지 않을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내가 지금 연구하고자 하는 주제는 ‘산업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국가, 자본, 지역이라는 스케일이 중첩되어 만들어낸 위치성이 어떻게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을 태어나면서부터 규정하게 되는지이다. 그리고 그 ‘산업 도시’는 내가 태어나 자란 지역이기도 하다. 지역에서 연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계속 질문했기 때문에, 나아가 내가 자라온 지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질문하고 연구할 힘을 만들어가게 되었다.

하여 연구는 결국 나의 생을 해명하고, 해방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지방 대학교’라는 위치성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덕분에, 연구라는 것이 “이들의 삶도 나의 삶도 틀리지 않았음을 같이 증언하는 연구, 그 연구를 해서 오히려 내가 해방되는 그런 연구”(「정규직·비정규직·인맥이 아닌 연구로 해방되려는 몸부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는 ‘명문대’야말로, “은마아파트 같은 곳”이라고 했다. (‘명문대 대학원, 은마아파트 같은 곳’, <교수신문> 1111호) 정확한 진단이다. 소위 ‘명문대’는 상승과 투자의 욕망을 담아낼 수 있는 거대한 그릇이다. 그러나 지방의 대학은 밀려나면 ‘재개발’이 되지 않고 폐가만이 남는다. 여기는 밀려나면 끝이다. 그리고 그 간담회의 후속으로는 지방대 연구자와 외국인 유학생 특집이 이어질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은마아파트’에 들어가지 못하는 ‘지방민’과 ‘외국인’을 하나로 묶어 호명하는 기적의 논리 덕분에 오히려 지방 연구자든 외국인 연구자든 심지어 외계인 연구자까지도 포함한 ‘에이리언(이방인‧외국인‧외계인)’들이 은마아파트 바깥에서 만날 수 있게 될 듯하다. 

그렇게 은마아파트 바깥에 모두가 모이게 되면 멋진 퍼레이드를 하고 싶다. 나는 거기서 ‘바람의 연구자’라는 깃발을 들고 같이 행진하겠다. 은마아파트에도, 폐가에도, 외계 행성에도 바람은 분다. 어느 지방, 어느 학교, 누구 제자라는 ‘출신’에서 자유롭고 싶은 연구자가 바로 ‘바람의 연구자’이다. 그리고 “연구로 해방되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바람의 연구자’이다.

결국 나는 열심히 연구하겠다고 쓰는 대신, 해방되고 싶다고 썼다. 나의 해방은 느리고 더디게 오지만 끝내 다른 바람의 연구자들과 함께 해방되고 싶다. 

신현아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과 박사 수료
청년, 서브컬처, 소녀 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내가 연애를 못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인문학 탓이야라는 책에서 ‘오타쿠와 연애’에 관한 글을 썼다. 지역에서 일어나는 운동에 관해 「스피커는 광장에서 촛불이 꺼지고 나서 들려온다」는 글을 썼고, 현재는 산업도시 거제와 중공업 가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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