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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인문학의 생물학적 과제
학이사: 인문학의 생물학적 과제
  • 박만준 동의대
  • 승인 2005.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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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만준 / 동의대·철학

“인간이 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이 완성되는 외적 및 내적인 과정을 경험해 보고 이를 과학적인 지식을 통해서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에른스트 페너 피셔 교수의 말이다. 지난 수천 년의 인류 지성사를 돌이켜보면 이는 결코 헛말이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에 관한 탐구는 영원한 과제였으며, 또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도대체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일까? 막상 이런 물음을 당하면 오늘날 우리도 여전히 막연해진다. 수천 년 동안 탐구되어 온 이 물음이 왜 아직도 명쾌한 해답을 갖지 못한 것일까?

물론 ‘사회적 동물’이라든가 ‘이성적 존재’ 등 널리 알려진 인간에 관한 규정들이 있다. 그러나 그 규정들이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얼마나 명쾌하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일까? 또 그것들이 실제로 우리의 삶을, 그리고 우리의 사회적 행동을 이해하는 데 얼마만큼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일까? 더 나아가 그것이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줄 수 있는 행동지침이 있다면 그것은 또 무엇일까? 사실 이런 물음들 앞에서 우리는 무척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선뜻 대답이 나오질 않기 때문이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고 명확하다. 인간에 대한 보다 치밀하고 솔직한 논의가 없었던 탓일 것이다. 사람들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또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사회적 동물이 되거나 이성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사회적 동물이나 이성적 존재가 되기 위해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순간순간 지도해가는 것도 아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문학이 인간의 실체에 대해 강렬한 호기심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

최근 생물학적 기호를 통해, 더 나아가 그런 기호로 표현되는 명제를 통해 ‘원리적으로’ 이 물음에 접근하면서, 새로운 인간학을 위한 이론적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학문분야가 있다. 에드워드 윌슨을 중심으로 한 사회생물학이 바로 그것이다. 윌슨은 그의 저서 ‘곤충의 사회들’에서 집단생물학과 비교동물학의 원리들을 척추동물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생물학’에서는 동물들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생물학의 원리를 사회과학에까지 확장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윌슨의 ‘사회생물학’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인간의 위치와 특징을 면밀하게 추적하는 것을 중심과제로 삼고 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앞으로의 전망을 더 밝게 하다거나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 이외에도 각 인류가 사회 조작을 통해 다윈의 적응도를 증가시킬 수 있었던 행동과 규칙들을 밝히고 있다. 사회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결코 생물학적 · 유전적 요인과 무관하지 않다. 인간은 영장류 및 유인원과 공통된 생물학적 토대를 지니고 있으며, 인간의 존재 의미를 읽어내는 출발점은 곧 영장류와 유인원의 생물학적 기호이다.

인간과 인간의 삶을 다루어야 하는 인문학이 이러한 사회생물학적 명제를 언제까지나 외면할 수 있을까? 그 외면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정말 조금이나마 앞당길 수 있길 기대하면서 나는 새로운 인문학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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