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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스런 이공계 위기
공포스런 이공계 위기
  • 이윤배 조선대 교수
  • 승인 2005.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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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구실

 

▲앞줄 왼쪽부터 이누리(석사 4학기), 이윤배 교수, 조연희(석사 3학기), 뒷줄 왼쪽부터 구제영(박사 2학기) ,김수경(석사 4학기), 양규승(석사 4학기), 오근탁(박사수료). ©
이윤배/조선대·컴퓨터공학부

1988년 조선대 전자계산학과에 부임할 당시 나는 아름다운 꿈을 많이 갖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부임 했을 때 전자계산학과에는 석사과정 재학생 몇 명만 있었을 뿐 교수별로 연구실(실험실)이 없었다. 몇 명 있는 석사과정 학생들도 기존의 교수님들이 지도를 하고 계셔서 지도할 학생 역시 없었다.

1991년도에야 비로소 겨우 한 명의 석사 과정생을 배정받아 전자계산학과 최초로 ‘인공지능 연구실’을 만들었다. 물론 연구실로서 빈약하기 짝이 없었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힘차게 출발을 하였다. 시간이 지나자 연구실에 식구들이 불어나기 시작했고 1995년에 박사과정이 개설되어 연구 논문 작성과 프로젝트 수행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지도 교수로서 연구실 학생들에게 강조한 것은 여러 가지로 연구 환경이 열악하지만 열심히 한 번 도전해 보자는 ‘도전 정신’이었다. 그리고 서로 협력하고 이해하면서 연구하는 분위기 조성에 힘썼다. 연구력 창출을 위해 연구실 학생 상호 간의 인화와 신뢰가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기회가 있으면 연구실 학생들 모두 함께 산행도 하고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 때 정기적으로 두 차례 1박 2일 워크샵을 개최하고 있다. 워크 삽에서는 주로 한 학기 동안 진행한 연구 성과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다음 학기 연구 계획을 수립한다. 그리고 졸업생이 있을 경우 졸업 논문을 요약하여 발표하고 졸업 기념패 전달식도 갖는다. 초창기에는 주로 무인 운송 차와 지능형 교통 시스템 등에 관한 연구에 치중하였다.

1996년 신임 교수 한 분을 연구실 공동지도 교수로 영입하고 연구실 명칭도 ‘멀티미디어 연구실’로 개칭하였다. 계속 참여 학생이 늘어나 논문 작성 그룹과 프로젝트 수행 그룹으로 나누어 연구실을 운영하였다. 그리고 견문을 넓히고 연구 의욕을 고취 시키고자 영문 논문을 작성하여 연구실 학생 전원이 매년 1회 이상 해외 학술대회에 참석하여 발표하도록 하고 있다. 그 동안  미국 , 스페인, 터키, 호주,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을 다녀왔다.

2001년도에는 연구실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호주 타스마니아 대학교의 염순자 교수를 초청하여 강연회를 갖는 등 조촐한 연구실 창립 기념행사를 가졌다.  그리고 2002년 교수 개인별로 연구실을 갖게 되어 시대 흐름에 부응하기 위해 ‘유비쿼터스 컴퓨팅 연구실’로 다시금 명칭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 동안 열악한 환경 속에서 박사 6명과 석사 20여 명을 배출하였다. 그리고 국제 논문 30편(SCI급 7편 포함), 국내 논문 1백6편 등 총 1백36편의 논문을 각종 학술대회 및 유수 논문지에 발표하였다. 저서(공저 포함) 20여 권을 집필하였고 크고 작은 프로젝트 17건을 수행하였다. 특히, 1999년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연구비를 받아 수행한 ‘인터넷/인트라넷 상에서 빠른 데이터 전송을 위한 글꼴 백터라이징 기술 개발’ 프로젝트는 개발이 완료 되어 산업체에 기술을 이전한 바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공계 기피 현상과 대학원 진학률 저조로 연구 인력이 턱없이 모자란 까닭이다. 연구실에 대학원 재학생이 없으면 교수 혼자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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