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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_과학자의 조국
문화비평_과학자의 조국
  • 이병창 동아대
  • 승인 2005.12.17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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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문제와 관련하여 벌어진 대대적인 소동에 마음이 불편했을 사람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이 소동을 보면서 혼자 즐거워했던 자가 있으니, 바로 나, 필자이다. 

필자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해, 학자의 연구윤리에 관해, 그리고 논문의 진실성에 대해 사람들은 지금까지 별로 관심 없었다. 먹고 살기 바빠서 그랬던 걸까, 여하튼 학문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주로 물질적 이익과 연관되는가에 있었고,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무시해도 좋았다. 그런데 최근 황우석 교수의 연구윤리와 논문의 진실성에 대해 연일 전 국민이 진지한 철학적 논란을 벌이니, 그만큼 나라 전체가 성숙해진 건 아닐까 한다. 철학으로 밥먹고 사는 필자에겐 그 자체만으로도 반가운 일인데, 더욱 고무적인 것은 그런 논의가 이전투구처럼 보이면서도 용케도 제 길을 찾아 나간다는 것이다. 여기에도 보이지 않는 손의 법칙이 작용하는 걸까. 그러니 필자의 엉덩이가 절로 들썩거리는 것도 이해되리라. 그러면 굿이나 보다 떡이나 먹지 왜 여기 튀어나왔냐고 묻겠지만, 필자도 철학자인데 약간의 할 말이 왜 없겠는가.

자 들어보라. 그는 언젠가 과학에는 조국이 없지만 과학자에겐 조국이 있다고 하면서 장동건 같은 미소를 카메라 앞에서 지어 보였다. TV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았을 때 필자의 마음 속에 떠오른 한 마디는 바로 ‘아, 차기 대통령 후보감이군’ 이란 것이었는데, 사실 이걸 계기로 수많은 대중들이 그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 이후 그는 어디서나 대중들을 끌고 다녔다. 그 정점에 천 여 명의 여성들이 그의 발밑에 붉은 ‘난자’ 꽃을 깔아놓은 이벤트가 있었는데, 그때도 그는 역시 예의 환한 장동건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과학자에게 조국이 있는가. 과거 사회주의 국가에서 과학도 인민에 복무해야 한다고 했을 때는 오히려 일리가 있었다. 그건 역설적으로 지배층의 이익에 복무하는 과학에 대한 비판으로 읽혀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도 오해되어 결국 사회주의 국가에서 인민이 과학을 먹어치워 버렸던 게 아니었던가. 그렇다고 과학이 그야말로 순수한 지적 욕구에서 나온다, 이렇게는 말 못한다. 과학을 에워싸고 있는 관심과 제도, 그 모든 것은 현실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학은 보편적 인류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말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데, 이 말은 무슨 인류의 이익이 있어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과학을 둘러싼 현실로부터 오는 온갖 유혹에 과학자가 쉽게 넘어가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하는 일종의 경구인 셈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조국이 있다는 그의 발언은 그가 현실의 어떤 유혹에 이미 내면적으로 굴복해 버렸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 유혹은 뭘까. 그가 장동건의 미소로 끌어 모은 대중의 유혹이 아닐까. 앞으로 조사되겠지만, 필자는 그의 연구 윤리나 논문의 진위에 대해서 그리 걱정하진 않는다. 다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을 보면 그가 조급해 한 것은 틀림없는데, 이런 조급함을 세계적 업적을 빨리 만들어 내라는 은근한  대중의 압력 빼놓고, 무엇으로 설명하겠는가.

대중의 유혹, 이에 대해선 필자도 한마디 할 수 있다. 필자는 조무래기 학자라, 대중의 인기야 어찌 언감생심 꿈꾸겠는가마는, 그래도 젊었을 땐 학생들의 인기 정도는 얻어 보려 애쓴 적이 있다. 고백하기 부끄럽지만 말이다. 수년의 헛된 노력 끝에 깨달은 게 있었다. 사람 좋은 체하면서 학점을 후하게 베풀고, 같이 술자리 하면서 고만고만한 잡담을 들어주지 않고서는 어찌 학생들의 인기를 얻을 수는 있겠는가. 그러고도 또한 열심히 연구하는 교수로 학생들에게 각인되어야 하니, 대체 어느 시간에 연구하란 말인가. 그러니 편법을 동원해야 하는데, 필자로선 학교서 쫒겨나지 않기 위해 이 이상 말해 줄 수는 없으니, 양해 바란다.

결론적으로 황우석 교수의 문제는 그가 대중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대중의 자발적 행위이지만, 그가 그런 대중에게 내면적으로 굴복한데도 원인이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니 필자로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과학자에겐 조국이 없고 오직 인류만 있어야 한다고.

이병창 / 동아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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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 2005-12-20 03:40:44
대통령감... ㅎ ㅎ 참 예리하십니다. 목에 힘주지 않는, 허식 없고 자연스런 인품을 글에서 떠올리게 됩니다. 읽으면서 슬몃 미소짓게 하는 글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