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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8.31 부동산 대책 그 이후
교수논평: 8.31 부동산 대책 그 이후
  • 변창흠 세종대
  • 승인 2005.12.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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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 부동산 대책을 실행하기 위한 후속 입법이 지연되고 있다. 이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되었던 과도한 세부담과 정책시행에 따른 부작용 등의 문제점이 또 다시 제기되고 있다. 부동산 가격도 입법화의 추이에 따라 등락을 지속하면서 여전히 각종 언론의 경제면의 머릿기사를 장식하고 있다.

8.31 부동산 대책은 크게 서민주거 안정정책, 부동산거래 투명화 정책, 토지 및 주택 수요 관리 정책, 토지 및 주택의 공급 확대 정책 등 네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 대책은 14개에 이르는 법률과 시행령을 개정해야 하는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번 대책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시장의 기능과 역할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있다.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번 8.31 대책이 과도한 조세부담과 공영개발 확대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경제원리를 부정하는 이념적인 문제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도 주택문제 해결을 위한 시장의 역할과 국가개입의 방식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다. 번(L.S. Bourne)이라는 학자는 주택정책의 유형을 국가와 시장의 역할에 따라 시장경제에 의한 해결을 위주로 하는 자유방임형에서부터 영국이 채택하고 있는 자유주의 국가개입형,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사민주의형, 제 3세계 국가들이 주로 활용하는 권위주의형 등으로 나누고 있다. 우리나라의 주택정책은 그동안 민간시장경제를 원칙으로 하되 전시행정적인 공공주택 정책을 추진하는 권위주의형을 채택해 왔으며, 이번 대책에서도 여전이 이 방식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주택정책이 앞으로 국가의 개입보다 시장경제원리를 중시하는 자유방임형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나 학자들은 우리나라의 부동산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날로 증대하는 주택수요를 충족하지 못하는 주택공급 여건에서 찾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주택의 공급을 확대하기만 하면 시장매커니즘에 의해 부동산 가격의 안정과 주거 수준 향상의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부동산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여건이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그동안 우리의 부동산 시장 환경은 그렇지를 못했다. 시세와 무관하게 결정되는 부동산 거래가격 신고, 이 가격을 기초로 한 국세와 지방세의 과표 결정, 투기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과도한 부동산 투자 열풍, 부동산의 개발과 보유시에 발생하는 자본이익에 대한 환수제도 불비 등이 우리의 부동산 시장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주택공급량을 늘리더라도 부동산 시장메커니즘에 따라 가격이 하락하는 것을 기대할 수가 없었으며, 실수요자에게 전달되지도 못했다.

그동안 언론에서 크게 주목하지 않았지만 8.31 부동산 대책에서 가장 큰 기여는 부동산 시장의 투명화를 통한 정상적인 시장질서의 회복을 위한 각종 조치라 할 수 있다. 부동산 보유 과세를 위한 과표 현실화와 실거래가의 등기부 기재 등을 통해 관행적으로 활용되어 온 이중계약서, 시장가격과 과표간의 불일치 문제가 해소될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또한 다른 자산에 비해 과도게 많은 자본이익을 향유하고도 거의 조세부담을 지지 않았던 보유과세의 현실화와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의 정상화를 통해 자산간 형평성을 제고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럽국가나 선진국의 주택정책을 통해 볼 때 국가에 의한 주택정책의 개입은 여전히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다른 상품과는 달리 주택은 시장매커니즘이 정상적으로 작동할지라도 여전히 시장가격을 지불하지 못하는 계층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주거복지 대책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 8.31 대책에서 ‘서민주거 안정정책’을 발표하였지만, 정작 대다수의 서민이 주거하는 단독주택과 서울시 전체가구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전세 세입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대책이 거의 마련되어 있지 못했다. 최근 정부도 전세가격 상승이라는 새로운 복병을 만나 이러한 문제점을 재인식하고 전세제도 안정화 방안 등을 후속 대책으로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서 자못 기대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이 가계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높고 국민경제에서 건설산업의 비중도 OECD 국가 중에서 최고의 수준인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부동산 가격의 동향과 정책의 방향에 대한 관심은 어느 나라보다 높고 정치적으로도 자유롭지 못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부동산 정책은 정상적인 시장질서와 국가의 균형있는 역할 분담에 대한 분명한 원칙과 목표를 정립하고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번 부동산 대책이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과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는 훌륭한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세종대 행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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