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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진실을 공유하지 못하는가
왜 우리는 진실을 공유하지 못하는가
  • 천정환
  • 승인 2022.05.10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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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상)_『지식의 헌법』 | 조너선 라우시 지음 | 조미현 옮김 | 에코리브르 | 432쪽

가짜뉴스부터 트롤링까지 소란한 맥락들과 진실
지식생산과 유통의 자유·정의는 사회전체의 투쟁

이 책의 주제는 영화 「돈룩업」(2021)과 비슷하다. 「돈룩업」은 꽤 깊이, 앎과 정치의 문제 즉 과학과 진실 그리고 미디어정치의 복잡한 문제를 건드렸다. 영화에서 렌들 민디 박사는 자주 ‘동료심사’를 입에 올린다. ‘동료심사’는 과학의 객관성과 과학자의 양심을 표상하는데, 이와 함께 영화에서 지구종말 위기의 과학적·객관적 근거를 말하는 매개는 ‘데이터’ ‘나사(NASA)’ ‘논문’ 등이다. 이런 과학(성)과 반대편에 있는 것은 빅테크 기업의 의도 외에 미국식 현실정치, 학벌주의, 미디어문화, 대중의 정동 등이다. 그 모두는 정말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이 매일매일 요동치고 소란한 ‘맥락’들이다. 

 

이 책은 8개 장에 걸쳐 가짜뉴스, 확증편향, 트롤링, 취소문화(cancel culture)의 문제를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 ‘포스트트루스 시대’ 또는 트럼피즘과 팬데믹이 겹쳐 엉망진창이 된 2020년대 미국의 고민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이 간다. 2021년 1월 6일의 의사당 점거 폭동으로 폭발하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 상황은 한마디로 미국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다.  

물론 『지식의 헌법』이 다루는 내용 모두는 한국에서도 아주 중요하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 선동을 주요 정치수단으로 삼는 하버드대 출신이 집권당 대표도 해먹고 매일매일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즐기는 나라 아닌가. 또한 진실의 보루라 여겨지는 학계와 대학을 농단한 심각한 연구 부정을 저지른 사람이 영부인이나 권력의 핵심이 되고, 매일매일 ‘기레기’들이 생산하는 뉴스와 그에 대한 ‘대깨문’들의 분노가 경합하는 시절 아닌가. 이 대목에서 한국의 출판사가 적절하게 붙인 지식의 헌법의 부제를 환기해본다. “왜 우리는 진실을 공유하지 못하는가.” 

 

영화 「돈룩업」(2021)은 동료심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영화는 빅테크 기업의 횡포 등을 고발한다. 이미지=넷플릭스 영화 포스터

 

자유언론과 자유과학의 연동

지식의 헌법에서 제일 문제적인 곳은 제4장 ‘지식의 헌법’과 취소문화를 다룬 제7장이었다. 4장은 ‘인식론적 자유주의’가 어떻게 대학과 연구자 문화의 제도화와 함께 발달해왔는가, 또 일상의 공론장과 학문장의 진리 생산기제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를 논했다. 즉 책 전체의 방법론을 펼친 곳인데, 저자의 용어로 ‘자유언론’과 ‘자유과학’이 연동되어 있다는 관점은 새삼 날카롭고 중요하게 느껴졌다. 

과학자·연구자들의 양심에 기반한 자유로운 연구와 그에 대한 학문적 합의에 의해 창출되고 발전해가는 지식이 ‘자유과학’이며, 전문가와 공중 그리고 책임 있는 언론인들이 검열과 다른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게 진지한 토론을 통해 형성하는 것이 ‘자유언론’이다. 저자는 표현의 자유를 중심축으로 하는 자유주의의 신봉자로서, 자유과학과 자유언론이 곧 미국 헌법의 정신이자 민주주의의 보루라 반복적이고도 열정적으로 주장한다. 그래서 존 로크, 애덤 스미스 등 고전적 자유주의의 주창자들과 제임스 매디슨, 토머스 제퍼슨 등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또한 『연방주의자 논집』(1788) 같은 그들의 고민이 끝없이 호출된다. 그래서 책 제목이 ‘지식의 헌법’이며 이는 저자가 세계의 복잡한 앎과 정치의 문제를 보는 시좌며 신조이기도 하다. 

‘자유언론’과 ‘자유과학’ 양자가 어떻게 삼투해있는지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해보이지만, 대학-학계와 공론장 및 대중정치의 ‘진리’가 같은 인식론적 기반을 갖고 있다는 주장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에 따르면 ‘유지(Yuji) 논문’과 미성년 자녀 제1저자 만들기 같은 문제는 단지 대학이 썩고 연구자들이 나빠서만이 아니다. 연구부정은 대학과 학계 바깥의 가짜뉴스·트롤링·음모론·취소문화 같은 것과 깊게 이어져 있다. 앎의 생산과 그 유통의 체계가 같이 썩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 연구자들은 새로운 사명을 부여받는다. 학계에서의 지식생산과 유통의 ‘자유’와 ‘정의’에 대한 투쟁은, 사회전체와 인민을 위한 진실과 지식 투쟁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조너선 라우시는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 연구원이자 〈애틀랜틱〉 기고 작가이다. 예일대를 졸업했다. 사진=위키피디아

한편 ‘소수의 횡포’라는 부제가 시사하는 것처럼 7장은 논쟁적이고 아슬아슬하다. 저자는 혐오발화와 표현의 자유 사이의 좁은 통로, 인종·젠더 등의 문제와 얽힌 ‘정치적 올바름’의 양가성 같은 어려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교수신문 1115호 서평 (하)로 이어집니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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