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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착각(5)
교수의 착각(5)
  • 박구용
  • 승인 2022.05.11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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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박구용 편집기획위원 / 전남대 철학과·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박구용 전남대 교수

니체의 말에 따르면 세 부류의 사상가가 있다. “광천 중에는 끓어오르는 광천, 흘러나오는 광천 그리고 뚝뚝 떨어지는 광천이 있다. 사상도 이에 상응하는 세 부류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물의 양에 따라 평가하고 전문가는 그 속에 있는 물이 아닌 것에 따라 평가한다.” 

끓어오르는 광천, 흘러나오는 광천, 뚝뚝 떨어지는 광천 등등이 있지만 혼자 생겨난 광천은 없다. 교수들이 나름대로 제시하는 사상, 이론, 지식, 지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경우 교수들이 제안하는 사상과 이론은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다. 오롯이 홀로 만든 것은 없다. 독창성도 부분적이다. 그럼에도 포괄적으로 저작권을 인정하는 까닭은 개인의 소유권보다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다.    

교수는 논문과 책을 쓴다. 논문은 전문가 집단 내부의 소통 방식이다. 논문을 게재하는 학술지를 중심으로 학문공동체인 학회가 형성된다. 대부분의 학문공동체는 진리를 지향한다. 하지만 공동체마다, 학회마다 진리로 가는 길이 다르다. 

인문학, 예술학, 자연학, 공학은 서로 다르다. 인문학에서 철학, 역사학, 문학, 지역학이 다르다. 철학에서도 시대와 지역, 그리고 방법론에 따라 진리로 가는 길이 다르다. 해석학, 현상학, 비판이론, 분석철학 등과 같이 하나의 방법론에 우선적 가치를 부여하는 연구자들은 관련 학회를 중심으로 모여서 담론을 형성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학술지에 담는다. 

모든 발전이 그렇듯 학문도 다양성의 토양 위에서 꽃을 피운다. 다양성은 다수성이 아니다. 같은 것이 많아지면 전체성이다. 다른 것이 많아야 다양성이다. 학회와 학술지는 어떤가? 갈수록 다양성이 전체성으로 수렴되고 있다.  

차별화된 학회의 학술지는 편집방향이 뚜렷해야 한다. 그 방향에 수긍하는 학자가 학회도 참여하고 논문도 게재한다. 학술지 편집위원회는 이 정체성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핵심 제도다. 그러니 편집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이 중요하다. 그런데 대부분 학회가 학회장과 임원, 심지어 편집위원까지 2년마다 바꾼다. 다양성이 사라진다. 장점은 하나다. 교수들의 학문적 실적을 양적으로 평가하기 쉽다. 평가에 익숙한 교수들은 저항하지 않고 적응한다.  

만약 저작권을 가진 자신의 논문이 질적으로 차별화된 독창적 사상과 이론을 품고 있다면 그 교수는 양적 실적으로 줄을 세우는 환경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교수는 독창적인 지식 체계를 만들기보다 유통 가능한 지식을 재구성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졌다. 

광천은 비교적 많은 양의 광물질을 함유하고 있는 샘이다. 물보다 어떤 광물질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사상과 이론은 수많은 문제 상황을 품고 있는 지식체계다. 지식보다 문제 상황이 중요하다. 상황을 파고들어가 문제를 찾아내고, 찾은 문제를 풀이하는 새 길을 만드는 큰 학자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교수는 큰 학자가 만들 길을 가꾸고 다듬고 고치는 일을 한다. 그 또한 훌륭한 일이다. 그런데 많은 교수들이 큰 학자가 되고 싶어 한다. 이런 욕망이 나쁘진 않다. 다만 큰 학자도 아니면서 그렇게 착각하는 교수들이 꽤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큰 학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제자들을 동원한다. 

스스로 큰 학자라고 착각하는 교수들은 제자들의 연구 내용과 방향을 조정한다. 제자를 위한 것처럼 꾸미지만 사실 자기 가는 길에 제자들이 등불을 켜도록 줄을 세우는 것이다. 동일한 것의 반복, 무절제한 증식을 즐기는 교수들은 사실 자신의 학문에 독창성이 없다는 것을 감추려고 다른 학자를 쉽게 경시한다. 이들의 오만에는 진실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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