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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를 키워내는 시간
장미를 키워내는 시간
  • 박혜영
  • 승인 2022.05.09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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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박혜영 논설위원 / 인하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박혜영 인하대 교수

켄 로치(Ken Loach)의 영화 「빵과 장미」(Bread and Roses)에는 일자리를 찾아 멕시코를 떠나 미국으로 밀입국한 어느 자매의 이야기가 나온다. 돈을 벌기위해 여동생인 마야는 언니를 찾아 ‘천사들의 도시’인 로스앤젤레스로 오지만 그녀 앞에는 천사가 아닌 불법 이민자들에게 가혹한 미국식 노동환경이 기다리고 있다. 엄격한 근무규정과 이를 어기면 가차 없이 삭감되는 성과급 임금제, 잠깐 동안의 휴식도 허용되지 않는 빡빡한 일정과 감시체제 속에서 이민자들은 오직 빵을 벌기위해 온갖 모욕을 참으며 일을 한다.

하지만 노동자라고 빵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동료들과 함께 파업을 이끈 마야는 인간답게 살기위해서는 장미도 필요하다고 외친다. 원래 이 제목은 미국시인인 제임스 오펜하임(James Oppenheim)의 시에서 따온 것이지만, ‘빵과 장미’는 1912년에 일어난 매사추세츠 주의 섬유공장파업에서 여성 이민노동자들이 내건 구호이기도 하다. 이들은 “우리에겐 빵뿐 아니라 장미도 필요하다”(We want Bread, and Roses, too)고 외쳤다. 

교육부는 학령인구 감소를 잣대삼아, 다양한 대학지원사업을 방편삼아 대학구조조정을 추진 중이다.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를 생각하면 대학의 정원감축이나 학과조정 자체를 반대하기는 어렵다. 그보다 염려스러운 것은 대학개혁의 목표가 양적 조정에만 있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 대학의 개혁방향에는 대학의 성격을 보다 친기업적, 친자본적, 친실용적으로 바꾸려는 ‘빵의 논리’가 숨어있다. 물론 생존에는 반드시 빵이 필요하며, 빵이 청년세대의 미래를 위한 물적 기반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켄 로치가 보여주듯이 가난한 노동자들도 빵만을 위해 파업하진 않았다. 이들이 장미를 요구한 것은 오직 생존만을 위한 삶이란 바로 푸코가 말한 ‘벌거벗은 삶’(bare life)이며, 그런 삶의 방식이 대다수를 지배하게 될 때 예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이 빵의 논리만 배우고 장미를 키워낼 능력을 배울 수 없게 된다면 우리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좋은 삶이란 생존의 필요만 충족시키는데 있지 않다. 여기에는 장미를 키워내는 시간도 반드시 있어야한다.

무릇 대학의 공공성은 기업논리를 모든 개인에게 이식하고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삶과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경제논리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 것들의 필요성을 깊이 성찰하는데 있다. 쓸모없는 것의 유용성과 쓸모 있는 것의 무용성이 함께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앞으로 우리의 삶은 노예가 아니면 로봇의 삶으로 전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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