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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산이 웃는다
학이사: 산이 웃는다
  • 김정례 전남대
  • 승인 2005.12.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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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례/전남대·일본고전시가    
       
 <고향이여 / 어디를 보아도 / 산이 웃네>

산이 웃는다. 원대한 꿈을 품고 대도시로 나갔다가 귀향한 젊은이가 바라본 고향의 산. 그의 귀향을 산들이 웃으며 맞는다. 마사오카 시키(政岡子規, 1867~1902). 명치유신(1868)이 일어나기 한 해 전에 일본 시코쿠 섬의 마츠야마(松山)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고향 사람들의 기대 속에 동경대에 입학하고 일본의 전통시 하이쿠를 근대적으로 혁신해 냈던 시인. 그에게는 고향의 산도 이렇게 따뜻했던 것일까?

유학 시절, 막 일본 문학 공부를 시작하던 때에 읽었던 이 하이쿠는 공부가 힘들 때면 떠올리는 시가 되었다. 그러다가 잠시 귀국했을 때 바라본 무등산은 내게 ‘웃지’ 않았다.  우직하게, 무뚝뚝하게 그냥 서 있는 무등산. 무등산의 우직함은 그냥 무뚝뚝함이 아니라 어떤 질타인 것처럼 오랫동안 내 마음을 누르고 있었다. 떠나 온 고향의 ‘웃는 산’에 대한 집착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산이 웃는다’는 것은 봄의 산을 표현할 때 쓰는 하이쿠의 정해진 어법(기고季語라고 한다)이라는 것을 알고서 혼자서 쓴 웃음을 지었다. ‘산이 잠든다’는 겨울 산. 시인은 오랜 겨울 잠에서 깨어나 나무에 새순이 나고 꽃이 피는 봄, 심호흡을 하며 봄을 맞이하는 산을 ‘산이 웃는다’라고 표현한 것. 그러므로 이 하이쿠는 <고향이여 / 어디를 보아도 / 산엔 꽃피네>의 의미였던 것이다.

며칠 전, 호남지방의 기록적인 폭설이 되고 말았던 첫눈을 무등산의 조그만 산사에서 맞았다. 새벽 무렵엔 나뭇가지들의 색깔을 가릴만큼, 절 마당의 흙빛을 가릴만큼 살포시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금세 펄펄 내리기 시작하더니 온 산을 하얗게 덮어갔다. 아, 올해도 이렇게 산이 잠들어가는구나. 내려갈 길이 막힐까봐 서둘러 산사를 내려오는데, 무등산의 첫눈 구경을 나선 사람들이 줄지어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눈 축제에 가는 듯한 상기된 표정이었다. 혹시라도 자신의 산행이 이제 막 잠들어 쉬려고 하는 산의 ‘꿈’을 방해한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는듯이. 그들에게 눈꽃 가득 피어난 산은 ‘잠자는 산’이 아니라 ‘웃는 산’일 터.

생각해 보면 산에 대한 사유는 나라에 따라 사람에 따라 참 각각일 것이다. ‘산이 웃는다’라는 시를 읽고 무등산의 무뚝뚝함이 어떤 질타처럼 느껴졌던 건, 대학시절 부르곤 했던 노래,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제 떠났다고>라든가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속의 ‘청산’, 언제나 변치 않고 푸른 청산, 그것들 앞에 비루한 나의 일상에 대한 회한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은 광주의 무등산에게 많은 말, 가슴 속의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한다. 첫눈이 오자 무등산으로 달리는 사람들, 상기된 표정의 사람 혹은 묵묵히 걸어 오르는 사람들을 보며, 문득 산은 둘러보았다. 고요했다.

결국 그토록 상큼하게 내리기 시작했던 첫눈은 다음날까지 펑펑 내려 기록적인 폭설로 변했다. 곳곳에서 아우성이었지만, 내 마음의 저 ‘청산’ 무등산은 참으로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으리라 내심 흐뭇해 하며, 나 또한 눈 속에 갇혀 하루 종일 긴 잠을 잤다. 꿈 속에선 눈꽃과 진달래와 산벚꽃이 한꺼번에 피어 있었다. 산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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