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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동원 vs. 자발적 참여 … 공과론의 이념성 비판도
국가동원 vs. 자발적 참여 … 공과론의 이념성 비판도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5.12.10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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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흐름 : 박정희 연구에서 산업화시대 연구로

명지대 국제한국학연구소가 지난 12월 9~10일 ‘박정희시대와 한국현대사’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올해 ‘박정희와 쟁점들’이라는 대주제로 매월 둘째주 금요일에 포럼을 진행해온 연구소 측은 한해를 마감하는 즈음에서 그간 소위 ‘박정희 논자’들을 불러모아 총괄적인 관점에서 이 시대를 조명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에서 펴내는 학술지 ‘마르크스주의 연구’ 제4호에는 김수행 서울대 교수가 ‘박정희 체제의 경제적 성과에 관한 비판적 평가’를 실어 박정희시대 옹호론에 대한 총체적 반격을 펼쳐 주목을 끌었다.

명지대 행사에서는 이영훈 서울대 교수,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 우승지 경희대 교수,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한도현 한중연 교수, 전상인 서울대 교수 등을 비롯 외국학자들도 다수 발표했다. 이 가운데 이영훈·김일영·한도현 교수의 발제문이 특히 눈길을 끈다.

“박정희 전에는 ‘왜곡할 시장’도 없었다”

이영훈 교수의 ‘20세기 한국경제사·사상사와 박정희’라는 논문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주요 경제정책을 결정짓는 자리였던 수출진흥확대회의와 월간경제동향보고회의 회의록을 분석하고 있다. 논문의 의도는 두 회의가 당시 정책결정에 가졌던 영향력을 확인하는 것으로 회의에서 합의된 내용이 기업공개촉진법 국회통과 등으로 현실화되는 부분이 거론된다. 역시 이 교수는 회의를 이끄는 좌장으로서 박정희의 역할에 주목한다. 이 교수는 박정희가 경제에 대해 전문적인 식견을 바탕으로 당시 필요했던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있음을 당시 회의를 현장중계하듯 보여준다. 그러면서 “흔히들 박정희의 개발독재가 시장기능을 왜곡했다고 하는데, 원래 시장 자체가 없었고, 박정희가 추진한 기업공개촉진법에 따라 1979년까지 상장사가 50개에서 3백55개로 늘어 2조6천억원의 시장이 형성되었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박정희가 “공과 사가 구분되지 않은 전근대사회에서 공과 사를 구분한 최초이자 마지막 개명군주”라는 평가를 내렸다. 박정희는 대통령이기보다 군주이며, ‘필요한’ 절대제왕이었다는 것이다.

김일영 교수는 1971년 대선 시점에서 내세워졌던 박정희의 ‘조국근대화론’과 김대중의 ‘대중경제론’을 비교검토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이 둘 모두가 1950년대부터 고조되어온 민족적 열정, 즉 자립경제를 세워야 한다는 국민적 소망에 바탕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김 교수의 논의는 ‘대중경제론’ 비판에 모아지는데, 이것이 박현채 등의 ‘민족경제론’에 포퓰리즘을 입힌 것으로 실제 정권을 잡아 실현하려고 했을지라도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것이 박정희의 대외개방적 발전전략을 비판하고 ‘내포적 공업화’를 핵심으로 했는데, 1997년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기까지 4차례 변화를 겪으며 오히려 박정희 모델과 유사하게 만들어져왔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애초 집필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변절의 과정이지만, 박정희 입장에서는 투항의 과정”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한도현 교수는 ‘새마을운동’을 ‘국가에 의한 대중의 동원’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농민들의 적극적 의지를 찾아보려는 입장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새마을운동의 성공체험담, 지도자들의 수기, 서신 등을 보면 농민들의 자기변화와 체험이 잘 드러나 있는데, 당시 엄청난 양의 자료들이 아직 분석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위주의적 국가모델의 틀에서 벗어난 이런 아래로부터의 사회변화의 관점은 새로운 연구경향으로 매우 활발해지고 있다.

“박정희 지지세력은 파시즘 정서와 유사”

이상의 연구들이 박정희 체제에 대한 지지와 긍정에 초점이 모아진다면,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의 발제는 박정희 신화의 부활에 대한 우려로 채워졌다. 그는 시장 근본주의와 유신독재가 전혀 별개의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가치, 그것이 표방하는 정책이 실로 유시한 정서와 입지를 갖는 세력에 의해 주창되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며, 한국의 민주적인 제도와 정책들은 70년대 민주화세력에 의해 마련될 수 있었음을 강조하며 앞으로 상당한 기간 한국은 민주화세력의 정신적 에너지의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행 교수는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기고한 글에서 박정희 체제를 비판해온 기존의 관점들인 민족경제론, 발전국가론, 개발독재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우선 민족경제론은 경제와 정치가 서로 분리된 것으로 여겨 외재적인 상호관계로 파악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한다. 따라서 민족경제론이 한국 자본주의를 종속적인 것으로 성격짓고 이것이 경제의 만성적 정체와 위기를 불러왔다고 한 것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경제와 정치는 자본주의적 계급관계의 정치적·경제적 형태”임을 강조한다.

발전국가론은 국가의 자율성을 비현실적으로 강조하는 국가물신주의로 인해 박정희 정권이 미국 등에서 받은 영향, 사적 자본으로부터의 영향 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가한다. 마지막으로 개발독재론은 고도성장의 요인을 국가의 자율성과 달리 복선형 산업정책에서 찾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발전국가론과 큰 차이가 없다는 지적을 가한다. 특히 박 정권 때의 대중들의 고통과 희생을 동의와 헌신으로 둔갑시킨 역사왜곡을 벌이고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발전국가론과 개발독재론에 대한 비판

흥미로운 것은 민족경제론에서 개발독재론으로 이어지는 비판 패러다임의 변화는 좀더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시각으로 이론틀이 변형되어온 것인데도 불구하고, 김수행 교수는 뒤로 올수록 더욱 비판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는 김 교수가 박정희 체제를 재평가하는 일체의 논의는 결론적으로 현재의 계급관계에서 재벌체제의 정당성을 긍정하고 초국적 자본간 경쟁에서 한국계 초국적 자본의 편에 서는 것을 합리화하는 기제로 작용한다는 관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즉 過를 아무리 많이 나열한다 해도 평가 틀 자체가 자본주의 체제를 긍정하고 있기에 안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계급투쟁적 관점에서 박정희 시대를 꿰뚫는다. 박정희가 흥할 때는 자본이 절대적 우위를 갖는 계급역관계가 다양한 국내외적 상황에 의해 형성되었고, 박정희가 망할 때는 자본이 궁지에 몰리는 노동자 우위의 계급역관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계급적 관점임에 비해 당시 계급들의 현실에 대한 중층적 제시가 부족한 느낌이다. 전태일 등의 상징적 아이콘 몇 개로 전체 현실을 대변하려는 경향이 있다. 또한 박정희 시대 사람들의 계급의식이 충분치 못했다는 주장은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빌려오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도 의문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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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사 2005-12-12 10:53:27
그 날 학술회의를 지켜본 사람으로서 이 기사는 회의 전체를 균형잡히게 소개한 좋은 기사라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일간지, 특히 조선일보가 형편 없는 발표문을 당일날 들고와 횡설수설 한 연세대 박 모의 발표를 박스처리해 소개한 것과는 대조되게 이 기사는 좌우를 떠나 적어도 소개할 가치가 있는 글만 골라서 소개한 훌륭한 기사다.
기자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