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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세평]‘민주’ 위협하는 과점언론
[신문로 세평]‘민주’ 위협하는 과점언론
  • 정경희 한겨레
  • 승인 2001.07.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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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09 18:18:58
지난 6월 잠잠한듯했던 ‘언론탄압’ 논쟁이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결과발표와 함께 다시 천하대란상태가 됐다.

이미 보도된 것처럼 국세청은 6개 중앙언론사의 소득탈루 6천3백35억원에 대해 3천억원이 넘는 세금을 추징키로 했다. 추징액은 조선일보의 8백64억원을 비롯해서 8백억원대가 조선·중앙·동아 등 3개 신문, 2백억원대가 1개 신문(국민일보), 1백억원대가 2개 신문(대한매일, 한국일보)으로 돼있다.

추징액의 규모가 “대기업보다 많다”는 비난은 그만큼 소득탈루가 외형액에 비해 크기 때문임을 뜻한다. 신문사가 전자제품이나 옷·가구 등을 만드는 일반 제조업과는 다른 권력기관이었기 때문에 재벌보다는 큰 소득탈루와 탈세가 가능했을 것이다.

신문시장을 과점지배하고 있는 큰 신문과 한나라당은 막대한 탈세에 ‘추징’이라는 제재를 가하려는 시도가 ‘언론탄압’이라고 합창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에는 신문이라는 막강한 권력기관을 탄압할만큼 힘이 있는 壯士는 없다. 예를 들어 보자. IMF사태의 수렁에서 어느 정도 탈출했던 1999년 5월 ‘옷로비 의혹’이 터졌다. 그러나 이것은 ‘의혹’일 뿐, 실체가 없는 사건이었다. 검찰도, 한나라당이 강박해서 열었던 국회청문회도, 특검도 실체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신문들은 열달동안 날이면 날마다 수개면에 걸쳐서 ‘의혹’으로 도배질을 했다. 그래서 ‘의혹’은 ‘사실’로 둔갑했다.

지난 해 한나라당은 ‘경제위기’라고 나팔을 불어댔다. 그 실상은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의 경기하강에 따른 한국경제의 부진이었다. OECD, IMF, 세계은행 등 권위있는 국제기구들이 한결같이 “한국에 위기는 없다”고 했지만 신문, 그중에서도 큰 신문들은 한나라당과 합세해서 이 나라에 종말이 온 것처럼 ‘위기’를 외쳤다.

그 결과는 정작 국가경제를 거덜내고 IMF사태를 불러온 한나라당에게 ‘4·13총선’에서 원내 제1당의 자리를 지키게 해주는 ‘이상한 선거’로 나타났다. 의회민주주의의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상한 선거였다. 선거의 왜곡현상이다. 더구나 신문시장을 과점지배하고 있는 ‘빅3’는 ‘불편부당’의 원칙을 짓밟고 기득권집단인 한나라당과 동맹관계를 형성하고 ‘정치게임’을 즐기고 있다.

한국의 신문시장애 대해서는 아직 정확한 조사자료가 없다. 그러나 통계청의 통계자료를 이용해서 개략적인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 신문구독률 72%(1996년)라는 숫자를 출발점으로 해서 계산해 보면 신문구독 가구수는 1천22만이 된다. 이것을 조선·중앙·동아 ‘빅3’의 발행부수로 흔히 인용되는 6백만부로 나눠보면 이들 3개 신문의 시장점유율은 60%가 된다. 지난 2월 광고주협회가 내놓은 조사결과로는 ‘빅3’의 시장점유율이 74%로 돼있다. 시장점유율이 최소한 60%, 어쩌면 70%를 넘을지도 모르는 이들 3개 신문은 이 나라의 여론을 과점지배하고 있는 최고의 권력기관이다.

‘언론탄압’이라는 구호는 군사정권시대에 있었던 ‘흘러간 노래’다. 과점신문들은 그 노래를 리바이벌해서 그들이 마치 언론자유의 투사이자, 탄압의 희생자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군사정권시대가 끝난 김영삼정부때 이미 폭력적인 언론탄압은 불가능해졌다. 그 대신 김영삼대통령은 언론사 세무조사를 통해 언론을 그 자신의 허망한 구호를 합창하는 확성기로 만들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김영삼씨가 “세무조사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세금추징도 깎아졌다”고 지난 2월 고백함으로써 그 비밀을 털어놨다.

이제 문제는 밖으로부터의 ‘탄압’이 아니라 언론사 내부의 지배·경영구조임이 노출된 것이다. 과점신문들은 ‘비판’이라는 이름밑에 근거없고 사리에 맞지않는 욕설을 퍼부어 선거를 왜곡시키고, 전 국민을 적대적인 집단들로 조각냄으로써 사회적 통합과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신문시장을 과점지배하며 여론의 주도적 위치에 있는 신문들을 ‘오너의 私器’로부터 ‘公器’로 개혁해야 하는 절박한 과제앞에 서 있다. 과점신문의 기업공개, 지배주주의 지분 제한, 자본주의적 경영권 논리와의 충돌없이 편집권 독립을 확보할 수 있는 ‘종업원지주조합’의 의무화 등은 필자가 1993~94년부터 제기해온 개혁 프로그램이다.

언론자유와 시장의 敵은 이미 망해버린 공산당이 아닌 ‘독과점’이다. 자유롭지만 공정치 못한 언론, 그들은 압도적인 과점지배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면서 ‘언론자유·언론탄압’을 노래하고 있다. 압도적 과점상태는 무엇보다도 여론을 획일화하는 데에 큰 문제가 있다. ‘프라우다’와 ‘이즈베스차’가 소련의 여론교본이었던 것처럼 이 나라의 여론은 3개 과점신문의 지배하에 있다.

‘신문개혁’은 김대중정부를 위해 해야하는 일이 아니다. 또 이회창 총재를 위해 그만둬야 되는 일도 아니다. 오직 국가경영의 大義를 위해 반드시 해야되는 역사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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