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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으로 왜곡된 민주주의… 자유주의의 결핍이 불러온 결과
포퓰리즘으로 왜곡된 민주주의… 자유주의의 결핍이 불러온 결과
  • 김재호
  • 승인 2022.05.04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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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최장집·이덕환’ 명예교수 대담

“한국사회에서 자유주의는 보수·진보에 의해 부정적으로 각각 이해되며 본질과 멀어졌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는 이덕환 <교수신문> 논설위원(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과 지난달 25일 최 교수의 서울 경복궁 근처 연구실에서 나눈 대담을 통해 이같이 강조했다. 역사·문화적 맥락에서 등장한 자유의 본래 개념이 변질됐다는 지적이다. 즉, 인권을 보편적 가치로 내세우는 제도 중심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아닌 포퓰리즘적 민주주의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와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의 이번 대담은 네이버 열린연단의 강연 주제인 '자유와 이성'에 대한 총체적인 진단과 비평이었다. 역사적 맥락과 함께 성장해온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분단이라는 한국상황에서 포퓰리즘으로 왜곡됐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자유주의의 취약성과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지적했다. 사진=김재호

네이버 ‘열린연단’ 시즌9 ‘자유와 이성’ 총 44회 강연이 본격 닻을 올렸다. 이에 이번 강연의 주제와 의미에 대해 두 교수가 대담을 나눴다. 최 교수는 네이버 열린연단 자문위원장, 이 교수는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대담에선 ‘자유와 이성’ 강연이 지향하는 바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중요성, 자유와 기술적 환경·지구적 위기 문제 등에 대한 대화가 오고갔다.

이 교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유’와 ‘이성’은 공기와도 같은 것”이지만 “일상에서는 그 존재조차 인식하기 어려운 것”이라며 ‘자유와 이성’ 강연에서 지향하는 목표는 무엇인지 물었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자유주의의 기풍’을 역설했다. 그는 “자유는 이성을 통해 지각되고, 인지될 때 그 중요성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지만, “그 자유의 이념은 구체적인 사회·정치적 조건에서 행위의 특성이자 양식이고, 기풍으로서 표현되고 실천되는 것으로 스스로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자유의 이념은 한편으로는 가치로서의 강건함, 그리고 그 이념을 구성하고 그에 내장된 가치의 자기표현으로서 기풍은 자유의 이념을 구성하는 특징이자 핵심이 되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자유의 이념은 가치로서의 강건함과 절제의 덕을 그 본질로 내장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의 이념이 자기표현을 갖는 것, 그것을 특징 지어, 강하지만 절제된 기풍 내지 온유함의 미덕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4월 25일 열린 대담을 통해 최장집 교수와 이덕환 교수는 자유와 이성,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자유와 과학기술 등을 논의했다. 사진=김재호

아울러, 이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의 혼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최 교수는 “한국에서 자유주의는 분단국가의 공식이념으로 수용되고, 그것을 토대로 미국헌법을 모델로 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헌법을 만들어 시행해왔지만, 자유주의 그 자체는 정작 한국사회에 뿌리 내리는 데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라고 밝혔다. 더욱이, 최 교수는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즉 ‘포퓰리즘적 민주주의’라고 지적했다. 촛불시위를 기반으로 한 개혁 정부는 기존의 구질서를 권위주의적인 것으로 규정하면서 전면적으로 부정함과 동시에, “제도 밖에서 행위하는 인민개념”을 “깨어있는 민주시민”으로 정의하면서 새로운 민주주의의 주역으로 설정했다. 한국사회의 부정적 구조를 재생산하는 데 주역으로 규정되는 기득이익을 한편으로 하고, 한국의 정치체제를 전면적으로 개혁하는 역사적 역할을 부여받은 도덕화한 민중, 깨어있는 시민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사회적·정치적 양분화가 민중주의적 민주주의의 기반으로 나타난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이 교수는 네이버 열린연단의 의미를 물었다. 최 교수는 네이버 ‘열린연단’이 “한국의 지적·문화적 향상 내지 교육적 역할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것”과 “대학에서의 연구나 지적 탐구가 이론의 범위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의 지적·문화적 문제와 소통할 수 있게 되면서 그 범위가 확장될 수 있는 계기로서 작용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한국의 지적·문화적 범위를 확대했다고 평했다.

아래는 대담 전문이다. 질문은 이 교수, 답변은 최 교수가 했다.

△올해 네이버 열린연단의 첫 강연은 최 교수님의 ‘자유주의의 이념·현실·기풍’이었습니다. 자유주의의 ‘이념’과 ‘현실’에 대한 이야기는 가끔 논의되는 주제입니다. 그러나 자유주의 ‘기풍’에 대한 강연은 낯설어 보입니다. 간단하게 소개해주십시오.

“한국정치로 말할 것 같으면 소셜네트워크가 정치를 도배하고 있습니다. 정서적 적대, 양극화를 만들어내고 있어요. ‘뭘 하겠다고 할 때 실제로 할 수 있겠느냐?’ 의문이 듭니다. 한국사회에서는 이 문제에 대응할수 있는 이념적 기반이 너무 없습니다. 사회는 거의 무규범, 가치나 이념의 부재 상태로 양극화와 분노가 나타납니다. 사회는 전면적 아노미 상태에요.

세계나 한국정치 상황에서 ‘정치에서 이념이 없는 정치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마주하게 됩니다. 그때그때 즉자적으로 문제에 대응하는 것으로 가능할까? 그래서 먼저 자유주의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정치적·사회적 가치를 담는 보편적인 아이디어, 또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의 이념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자유의 이념과 자유주의의 이념입니다. 

최근에 다시 주목 받고 있는 건 ‘냉전 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어요. 냉전 자유주의를 조명할 때 자유와 자유주의가 현실에서 냉전이라는 조건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실천됐던 방식, 내용에 대해 우리가 반성적으로 되짚어 봐야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냉전 자유주의가 실천됐던 방식이 구체적으로 평가될 수 있고,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또한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행위규범, 그 이념이 표현되고, 실천됐던 방식입니다.

그렇다면 왜 기풍이냐? 이념으로서의 자유주의는 추상화된 이념의 체계나 가치로서 법, 또는 제도, 또는 정치적 실천의 규범으로 이해되거나 실천돼야 하지만, “강건하면서도 절제된 자유주의”라든가, “온건함의 기풍”과 같은 자유주의의 기풍을 말할 때, 그것은 훨씬 더 우리의 실생활속에서 정치와 사회적 현실에서 자유주의가 어떤 이념이고, 행위양식이고, 규범이라는 점을 일깨워주고 영향를 미칠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의 기풍(liberal ethos)을 말할 때 우리는, 자유주의의 특징에 대해 이해하고 그 긍정성을 쉽게 발견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냉전 시기라는 이데올로기 양극화의 경험과 그 영향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이해하면서,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문제점들을 발견할수 있게되는 것 말이지요.”

△내년 3월 말까지 진행될 9번째 강연 시리즈의 주제는 ‘자유와 이성’입니다. 사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유’와 ‘이성’은 공기와도 같은 것입니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그 존재조차 인식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올해 ‘자유와 이성’ 강연에서 지향하는 목표는 무엇인가요.

“자유는 현실에서 인간의 정치적·사회문화적·윤리적으로 이성적 판단을 통해 지각되고, 그 의미가 구체적 현실에서 표현되고, 실천될 때 그 효능을 갖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는 이성을 통해 지각되고, 인지될 때 그 중요성이 드러납니다. 자유가 비이성을 통해 표현되고, 실천된다고 할 때 그것은 방종이고, 무책임이고, 데까당스(부패)가 될 것입니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가장 보편적인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그 의미와 가치를 살펴볼 보고 정치·사회적 환경을 절감할 때입니다.

예컨대 지금 우리는 자유주의와 관련하여 두 가지의 완전히 반대되는 모순적, 환경 또는 이율배반적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한편으로 우리는 자유주의의 편재성이랄까, 현실 속에서의 보편적인 실현이라는 측면이 있습니다. 인권과 개인의 자기권리 주장은 사회전체, 모든 한국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인식의 준칙으로 자리잡고 있어요. 모든 사상들의 의식과 행위의 근저에, 평등한 인권을 갖는 시민의식, 온 사회에 모든 시민들의 의식에 편재돼 당연한 것으로 수용됩니다. 이점에서 한국사람들에게 자유의 이념은 모든 사람들의 의식 속에 편재돼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국에서 자유의 이념과 자유주의 사상이 현실 정치나 사회에서 존재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스스로 던질 때 한국에서 자유주의가 존재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됩니다. 만약 한국의 민주주의는 곧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이고, 한국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헌법이 규정하는 바를 존중하고, 그 체계 내에서 작동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게 될 때, 한국 민주주의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너무 많이 포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촛불시위 이후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현상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할 기회가 있었을 때,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내지 ‘포퓰리즘적 민주주의적 요소’에 대해 말하기도 했어요. 한국의 현실을 자유주의와는 큰 거리가 있는 정치체제로 이해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에서의 자유주의는 보수에 의해 존중되지 않고, 진보에 의해 버려진 미아라고 표현했던 적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볼 때에도 한국에서의 이데올로기적 지형은 간단히 말하기 어려운 매우 복합적인, 이중적인 구조를 갖는다고 생각해왔습니다.   .”

△ 전 세계적으로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도처에서 감지되고, 권위주의 정권이 늘어가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폭군적 기질을 갖춘 트럼프가 미국의 민주주의 전통을 바닥부터 흔들어 놓았고, 러시아의 푸틴은 이웃 나라의 영토를 빼앗는 것으로도 모자라 공개적인 침략 전쟁까지 일으키고 있습니다. 자유와 민주화를 요구하던 목소리도 사라져버렸습니다.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전망하시나요.

“지난해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회에 난입한 사건을 보면 그동안 축적된 자유주의 이념으로서 헌법이 무시됐다고 생각됩니다. 트럼프는 이전 정부부터 나타난 경제적 악화나 흑인, 아시아, 히스패닉계 인종차별로 발생하는 갈등을 정치적으로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역이용 했어요. 포퓰리즘적 정치를 한 것이에요. 정치적 규범으로서 관용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대통령의 권력이 강해지고, 사법부는 보수로 편향됐고, 입법부는 제 역할을 못했습니다. 비자유주의적인 민주주의의 모습으로 실체를 드러내기에 이르렀다고 보겠습니다. 

자유주의는 홉스·로크의 사상가들에 의해 자연적이고 보편적인 인권으로서 태동했어요. 민주주의는 고대 아테네에서 직접 민주주의로 시작했고요. 그 당시 6천 명 정도가 광장에 나와 인민스스로의 통치를 구현할 수 있었죠.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와는 다른 모습이에요. 자유를 신장하는 보편주의에 입각하지 않았어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이론과 현실에서 달랐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공화정이 들어섭니다. 상원과 하원(호민관) 체제도 구축되면서 인민 주권의 원리가 선언됩니다. 아직 민주주의가 일반화 한 건 아니었고요. 현대 민주주의의는 미국혁명(18세기 후반)에서 입헌적 민주주의의 모델이 만들어지면서 입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통합된 역사적 사례를 보게되는 것이지요.  

19세기 후반에 자유 시장경제가 확대되면서 자유주의가 경제적 자유주의로 이해되는 경향이 나타났지만, 자유주의는 어디까지나 민주주의와 결합하는 것을 본질로하는 정치적 자유주의로 이해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봅니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유럽에서는 19세기 중반 사회주의운동의 등장으로 사회주의와 경쟁하는 이념이자 정치체제로 나타났지만,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발전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역사의 실체로 등장한 것은, 아메리카신대륙에서 자연권에 입각한 인권사상과 정치적 자유를 원리로하는 자유주의적 헌법혁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은 미국식 자유주의를 수용했지만 헌법을 현실에서 지키기는 분단 상황 때문에 어려웠어요. 보수 세력은 미국 헌법을 기초로 했지만 냉전을 반공으로 규정하며 자유주의의 이상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과거를 거부하고 등장한 민주화 세력들 역시 민주주의에 경도되면서 자유주의와 멀어졌습니다. 보수나 진보나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경도된 것이에요. 

진짜 민주주의는 선출된 권력이 헌법에 규정된 경계를 넘어서려는 강한 국가를 견제해야 합니다. 민주화 세력의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다수의 이익만을 고려하는, 루소의 통속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어요. 민중의 다수결이 적용된 민주주의로 민주주의가 절대 가치가 돼 버렸어요. 개인의 권리가 실종되고 민주주의는 오염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19세기 미국이 주창한 인권 중심의 자유주의, 제도 중심의 민주주의와는 멀었던 것이에요. 비슷한 사례가 독재정부를 넘어서 민주화를 시도했던 라틴이나 동유럽, 아랍 국가들에서도 나타났어요. 본질적인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유지하기에는 정치·경제적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죠.”

△특히 올 연말에 시작할 다섯 번째 주제 ‘한국에서의 자유주의’를 주목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경험하는 일이지만 누구나 ‘자유’와 ‘자유주의’를 외치지만 아무도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정치인들이 그렇지요.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의 혼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 주제에서 저는 ‘한국에서 자유의 개념과 자유주의’ 리드강연을 맡아서, 자유주의의 이중성 문제에 대해 말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종전 이후 한반도에 몰아닥친 냉전에서 한반도의 분단과 분단국가의 건설, 전쟁, 그리고 냉전시기 전 과정에 걸쳐 남북한은 군사적 이데올로기적 대립으로 늘 남북한은 적대적이고, 긴장상태로 고통받았습니다. 남한은 남한대로 현재적이고 또 잠재적인 이데올로기적 대립상황으로 고통받아왔어요. 이것은 한국의 자유주의를 변형시켜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번 네이버 열린연단에서 저의 강연 주제를 ‘냉전 자유주의’라는 말과 더불어 냉전시기 자유주의가 실천됐던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기풍을 말하게 되는 것도, 그 말을 통해 우리가 놓쳤던 것, 우리가 자유주의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 그것을 실천할 때 무엇을 배워야하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담는 주제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자유주의는 분단국가의 공식이념으로 수용되고, 그것을 토대로 미국헌법을 모델로하여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헌헙을 만들어 시행해왔지만, 자유주의 그 자체는 정작 한국사회에 뿌리 내리는 데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자유주의의 내용은 실제로 왜곡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보수는 그것을 문자 그대로 부정적 의미에서의 냉전 자유주의로 이해했기 때문에, 자유주의는 권위주의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됐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마치 냉전 반공 이데올로기처럼 활용됐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민주파나 진보파는 자유주의를 냉전 하의 공식이념으로 이해하면서 적대적이 됐습니다. 그러다보니 한국사회에서 자유주의는 부정적으로 보수와 진보에 의해 부정적으로 각각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면서 샌드위치가 됐습니다. 

한국에서의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특성이랄까, 정황이 한국에서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보수나 진보나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경도될 수 있는 정치사회적 조건 내지 이념적 지형이 만들어진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정황은 지난 1980년대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지극히 부정적인 효과를 미쳤습니다. 적어도 저의 관점에서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건강한 발전을 가로막고, 그로인해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포퓰리즘적·민중주의적 민주주의로 유도되는 중요한 요소가 된 것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이점은 왜 ‘냉전 자유주의’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으면 안 되는가, 그것을 비판적으로 넘어설 수 있다면 넘어서고, 그것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정면으로 마주서는 의식 내지 지적 과정을 거쳐야 하는 작업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때마침 서구, 특히 영국과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세대의 정치사상 및 정치 이론가들이 정면으로 제기하고 있는 개념, 냉전 시기를 통해 표현될 수 있었던 새로운 문제의식, 즉 ‘자유주의의 기풍’이라는 말의 의미는 중요합니다. 이 말을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지형으로 불러들여 정면으로 다루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한국사회에서 자유주의를 본격적으로 대면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와 ‘자유주의’는 흔히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개념이라고 인식합니다. ‘자유’가 ‘기술적 환경’이나 ‘지구적 위기’와 어떻게 관계될 수 있는지요.

“자유가 기술적 환경이나 지구적 위기를 대면하고,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과정에서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믿습니다. 자연과학적 이론 및 지식영역과 닿아있는 문제영역에서 자유는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철학적·과학적 사고가 접합돼야 할 부분이고요. 예컨대 갈리레오의 지동설을 포함하는 우주 이론은 그 이전 아리스토텔레스적 우주론, 물질의 운동론에 대한 혁명적 변화를 불러와 기독교적 세계관을 혁명적으로 바꾸어야하는 이론이지만, 그것이 자유없이 현실이 될 수는 없지 않았겠습니까. 

지구위기를 대면하는 것도 먼저 여러 형태의 정치적 편익이나, 어떤 편향된 지배적인 사회여론의 영향으로부터의 자유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기존의 정치권력의 편익과 연동된 문제에 대한 왜곡된 대응방식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유로운 과학적 사유의 힘이 먼저 선행하고 중심적으로 작용함이 없이 환경문제, 지구적 위기에 대응한다고 할 때, 그것은 정부권력자들에 의한 정치적 편익이 선도하는 한정된 지식과 기술관료적인 대응을 넘어서지 못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네이버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열린연단’은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학자들의 폭넓은 지식을 소개해주는 가장 성공적인 인문학 강연 프로그램입니다. 2014년 ‘주제 강연’으로 시작해 8개 강연 시리즈에서 모두 352편의 강연을 소개했고, 이제 9번째 대장정을 시작했습니다. 네이버문화재단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내용이 축적됐어요. 여기에 더해 ‘열린연단’은 콘텐츠의 축적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한국은 대학을 중심으로 한 지적 학문 영역이 일반 대중과 만나기 어렵습니다. ‘열린연단’은 지식생성의 장으로서 대학에서의 지적·학문적 탐구와 활동의 결과라할 지식의 축적이 학문적 장벽을 뛰어넘어 대중, 그리고 사회적 현실과 만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열린연단의 자문위원장을 맡으시면서 선생님께서 개인적으로 추구하시는 목표와 철학이 있을까요.

“한국의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면서 한국이 문화강국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외양(façade)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지금 한국에서 필요한 것은 내실을 다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기업이 선도하는 경제를 비롯해, 한류는 일류인데 정치는 삼류라고 말합니다. 분명 문제는 정치입니다. 그러나 정치의 문제는 정치에만 국한되지 않고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가장 잘 집약해줍니다. 이점에서 정치는 사회의 거울이에요. 그 이유는 한국의 문화, 정신적 현 상태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적·문화적 가치를 함양하고, 이를 통해 이념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자유주의는 그러한 이념의 대표적 형태이자 콘텐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방적 문화와 사유가 필요해요. 민족주의는 좋지만, 그것이 세계로 나아가는 개방적 지적영역의 확대를 저해하는 것으로 작용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이번 강연이 자유주의를 중심에 놓고, 좀더 새로워지는 것을 시도하는 건 저의 그러한 관심을 반영합니다. ”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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