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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세운 도덕법칙, 인간성·존엄성 부여
스스로 세운 도덕법칙, 인간성·존엄성 부여
  • 김상환
  • 승인 2022.05.04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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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② 김상환 서울대 철학과 교수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9를 맞이해 「자유와 이성」을 주제로 총 44회 강연을 시작했다. ‘자유’를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본성, 재난과 질병에 대한 제약과 해방 등을 역사, 정치, 철학, 과학기술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살펴본다. 지난달 9일 김상환 서울대 교수(철학)가 제2강 「인간 존엄성의 근거: 자유, 자율, 이성」을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3강은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철학)의 「유학에서의 자유와 공동체」, 제4강은 나종석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철학)의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 제5강은 이진우 포항공대 명예교수(철학)의 「인간 자유의 본질」, 제6강은 서병훈 숭실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의 「자유, 다원주의, 상대주의」가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자율은 인간과 모든 이성적 존재자의 존엄성 근거다.” 이 문장은 근대 윤리학을 대변하는 칸트의 저작 『윤리형이상학 정초』(1785)의 절정에 해당한다. 칸트의 윤리학에서 도덕성 전체는 자율성으로 집약된다.

 

김상환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칸트의 윤리학을 통해 자유·이성·존엄성 을 강조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칸트의 윤리학이 자율의 윤리학이라면, 자율의 윤리학은 이성의 윤리학이다. 이성의 윤리학은 법칙 중심의 윤리학이다. 다른 한편 이성은 추론의 질서에서 더는 소급해 갈 상위 조건(전제)이나 목적이 없는 무제약적(무조건적) 이념과 관계하는 능력이다. 도덕법칙, 자유, 의무 같은 윤리학의 기초 개념은 이성적 사유에 대한 선험적 분석을 통해서만 도출할 수 있다. 삶에 항구적인 즐거움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우리를 최상의 인간으로 만들어줄 선이 윤리적 실천의 목적일 때,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취해야 할 수단이 도덕법칙이다.

칸트는 법을 윤리학 전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태양의 자리에 놓고 선을 종속적인 위치에 둔다. 선 중심의 윤리학을 법 중심의 윤리학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칸트에 의해 고대의 덕 윤리는 도시적인 삶에 부합하는 의무의 윤리로 전환된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도덕법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개인에게는 자유를, 사회에는 정의를 허락하는 법칙이다. 근대 사회에 부합하는 법 중심의 윤리, 의무의 윤리는 개인주의와 함께 간다. 개인주의는 일반적으로 공동체의 규범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더 중시한다. 도덕법칙은 선악을 개시하는 것처럼 자유를 개시한다. 칸트적인 의미의 자유, 윤리적 자유는 법칙을 통해 개시된 자유다.

윤리학의 지평에서 모든 개념은 자유를 위한, 자유에 의한, 자유의 개념이어야 한다. “자유는 도덕법칙의 존재 근거이나 도덕법칙은 자유의 인식 근거다.”(『실천이성비판』, 1788) 인간은 자유로운 목적 선택과 법칙 수립의 주체인 한에서 신성불가침의 존엄한 자리에 놓인다. 원칙 없이 행사된 자유는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끔찍한 폭력을 낳고 수많은 갈등을 초래한다.

 

칸트는 네 가지 도덕법칙을 정언명령 형식으로 추출했다. 제1 도덕법칙은 "보편화 가능한 준칙에 따라 행위하라"이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모든 개념은 자유의 개념

자유가 어떤 일관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증진될 조건은 이성 개입을 통해 합리적으로 조절되는 데 있다. 자유의지는 이성이 선물한 도덕법칙을 따를수록 좋은 의지, 선한 의지로 탈바꿈된다. 자율은 법칙과 주체를 하나로 묶는 개념이다. 칸트적 의미의 윤리적 주체는 기본적으로 선의지로 상정된다.

칸트의 분석과 구성은 서로 얽히는 세 가지 문제의 축에 따라 서술된다. 첫째 축은 행위의 동기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한다. 칸트에 따르면 윤리적 가치는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동기에서 찾아야 한다. 윤리의 세계는 자연의 세계를 지배하는 인과적 제약성이나 상품의 세계를 지배하는 도구적 유용성의 논리를 깨뜨리며 출현하는 무제약적 가치의 질서다. 둘째 축은 선의지의 지향성과 관련된 문제를 제기한다. 선의지는 무조건적인 것과 관계하고 그것을 자신의 목적으로 설정하는 능력으로 등장한다. 무조건적인 것의 의미는 두 가지 관점에서 새겨야 한다. 하나는 감성적인 세계(경향성)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용성의 논리(도구성)를 벗어난다는 것이다.

셋째 축은 선의지의 자기 이해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한다. 선의지는 의지적이면서 이성적인 이중적 주체다. 선의지는 이성적 주체로서 어떤 먼 것, 무제약적인 것을 지향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선의지의 속성은 자기 복귀의 능력, 그 복귀를 통한 자기규정의 능력이 있다.

칸트에게 윤리성 혹은 도덕성은 존엄성과 동의어를 이룬다. 존엄성을 획득한 인간은 칸트 윤리학에서 두 가지 이름을 얻는다. 하나는 인간성이고 다른 하나는 인격이다. 인간성은 무제약적 동기에 따른 행위, 스스로 부여한 목적과 법칙에 대한 자발적 종속, 자기충족적인 존재 방식 등을 의미한다. 인간성이 동물성과 대비를 이룬다면, 인격은 물건과 대조를 이룬다.

 

윤리성은 인격으로서 존엄성

칸트는 네 가지 도덕법칙을 정언명령의 형식으로 추출하면서 이상적인 윤리적 주체가 태어나는 모습을 가리킨다. 첫째 ‘보편 정식(how)’, 보편화 가능한 준칙에 따라 행위하라. 보편 정식은 준칙의 합법칙성(보편적이고 필연적인 타당성)을 요구한다. 둘째 ‘목적 정식(what)’,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 인간성을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단지 수단으로서만 대하지 않도록 행위하라. 셋째 ‘자율 정식(who)’, 너 자신의 의지가 스스로 수립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법칙에 따라 행위하라. 자율성은 신과 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된 인간을 연결하는 표징이다. 모든 사람은 자율적 법칙 수립과 준수 능력인 인간성(인격)을 지니므로 목적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넷째 ‘나라 정식(hope)’, 우리 각자가 자율적으로 수립한 모든 준칙은 가능한 목적의 나라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나라 정식은 목적 자체인 자율적 주체들과 그들이 추구하는 사적 목적들 전체가 아름다운 유기체를 형성하듯 조화를 이룰 수 있기를 명령한다. 자율의 윤리학에 완결성을 부여하면서 정치철학과 역사철학으로, 세계시민주의와 영구 평화론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을 형성하는 것이 바로 나라 정식에 담긴 문제의식이 아닌가 한다. 나라 정식이 가리키는 이상적인 공동체, 그것은 계몽기 지식인이 꿈꾸던 자유주의, 법치주의, 인본주의가 활력적으로 헤엄치는 연못과 같다. 그것은 현존하는 현실의 세계가 아니라 다만 인류 전체가 윤리적 실천을 통해 이루기를 희망할 수 있는 상상 속의 ‘가능한 목적의 나라’다.

칸트는 자율이라는 적극적 의미의 자유를 현실적 인간 일반에 내재한 일반적 속성으로 입증하는 일이 이성의 한계를 넘어선다고 밝혔다. 빛나는 이상 속에 모습을 드러낸 나라, 합리적 행위자라면 누구나 받아들일 보편적인 나라, 그것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행위의 자유가 오로지 인간 존엄성의 이념에 의해서만 제한을 받는 나라다. 자연의 숭고가 일으키는 전율은 우리 내면에 숨어 있는 무시무시한 힘을 체험하는 계기에 불과하다. 그 힘은 도덕법칙에 대한 존경과 인류 전체와 더불어 목적의 나라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도덕적 소명 의식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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