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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웠다'
'나는 배웠다'
  • 신희선
  • 승인 2022.05.02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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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

“나는 배웠다/어떤 일이 일어나도 / 그것이 오늘 아무리 안 좋아 보여도 /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내일이면 더 나아진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당신과 부모와의 관계가 어떠하든 / 그들이 당신 삶에서 떠나갔을 때 / 그들을 그리워하게 되리라는 것을.” 마야 안젤루가 쓴 시 ‘나는 배웠다’ 를 조용히 읽는다. 자신보다도 자식들을 위해 한 평생 헌신하시고 밑거름이 되어주신 분, 바깥 일로 바쁜 딸을 대신해 손주들을 돌보며 아낌없는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신 분, 엄마의 빈자리 곳곳에 스민 은혜를 발견한다. 지난 3월 마지막 날 돌아가신 엄마의 죽음을 통해 내가 배운 것들을 생각해 본다. 

나는 배웠다. 생명의 기운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이 가르치는 유한한 삶의 진실을. 가까운 이의 죽음을 지켜보고 떠나보낼 때 우리는 삶을 대하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한다.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친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은 삶과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이끈다.

샐리 티스데일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함께 길을 걷다 헤어지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있었다 해도 다시 대면할 수 없는 절대적 부재 상황은 깊은 상실감을 던져 준다. 우리는 늘 내일이 있다고 믿지만, 죽음은 역설적으로 같이 있는 사람과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나는 배웠다. 죽음을 통해 우리 곁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본다. 죽음은 삶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에 공감하며 진심을 담아 전하는 말과 글의 무게를 생각한다. ‘죽음을 잊고 살다가’라는 시에서 이해인은 “매일 조금씩 / 죽음을 향해 가면서도 / 죽음을 잊고 살다가/ 누군가의 임종 소식을 접하면 / 그를 깊이 알지 못해도 / 가슴 속엔 오래도록 / 찬바람이 분다”고 했다.

죽음 이후의 시간은 고립된 개인으로서가 아닌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우리의 모습을 확인하는 자리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한 것처럼, 한 존재의 죽음 곁에서 함께 있어주는 일, 각별한 마음을 나누는 일은 중요하다. 사려 깊은 따스한 위로는 뭉클한 감동으로 남아 서로를 더 끈끈하게 연결하는 마음의 길을 새롭게 낸다. 

나는 배웠다. 죽음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치열한 삶의 경쟁으로 한국의 대학 사회는 자기개발 담론이 무성하다. 그러나 죽음을 주제로 학생들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공부가 중요하다. 예일대에서 진행된 ‘죽음학’ 강좌는 죽음을 주제로 한 폭넓은 대화와 토론의 장으로 유명하다. 셸리 케이건은 “삶은 죽음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완성되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목적”이며 죽음을 이해하면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예일대의 ‘DEATH’ 강의는 하버드대의 ‘정의(JUSTICE)’와 ‘행복(HAPPINESS)’ 수업과 함께 아이비리그 3대 명강의로 불릴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죽음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성찰하는 수업을 통해 외부의 자극을 좇아 정신없이 달려가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하는 철학적 사유의 시간이 대학 교양교육에 있어야 한다.

나는 배웠다. 평소 엄마가 산책하셨던 길을 따라 동네를 한 바퀴 천천히 걸으며 죽음이 삶을 좀 더 가치 있게 만든다는 것을, 정성스런 관계맺음의 중요함을, 죽음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공부가 필요함을, 또한 자연이 건네는 위안과 치유가 얼마나 큰 지를 배웠다.

풀꽃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봄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대는 죽어야 할 운명임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메시지를 떠올려본다. 마이클 헵이『사랑하는 사람과 저녁 식탁에서 죽음을 이야기합시다』에서 던진 ‘삶의 가장 소중한 대화로 이끄는 22가지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해보는 과정을 통해,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좋은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배우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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