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2-10-05 17:07 (수)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88] 마르크스에게 700페이지의 비판을 받은 사나이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88] 마르크스에게 700페이지의 비판을 받은 사나이
  •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 승인 2022.04.25 09: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막스 슈티르너
라인신문에서의 마르크스와 엥글스. 사진=위키미디어

2019년 7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의 독일어판 번역이 발간되기 시작했다. 최초로 발간된 제3권의 두 책에는 카를 마르크스가 1845년 봄에 쓴 『포이어바흐 테제』와 마르크스가 1945~46년에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함께 쓴 『독일 이데올로기』(Die deutsche Ideologie)가 포함되어 있다. 『독일 이데올로기』는 집필 당시 출판사를 찾지 못해 결국 그들의 생전에는 나오지 못하고, 1932년에 와서야 모스크바의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를 통해 데이비드 리아자노프에 의해 처음으로 출판되었다.

한국에서는 1988년과 1989년에 각각 박재희(청년사)와 김대웅(두레)에 의해 일부(제1권 제1장 포이어바흐 장을 중심으로)가 번역되었다가, 2019년에 이병창에 의해 『마르크스엥겔스전집』 제3권(먼빛으로)으로 완역되었다. 원고가 쓰이고 173년 만에, 원저가 나오고 87년 만에 우리말로 완전하게 소개된 셈이다. 그만큼 우리와 마르크스 엥겔스 사이에는 엄청난 시간의 격차가 있는 것일까?

『독일 이데올로기』는 1840년대 초 독일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포이어바흐, 브루노 바우어, 슈티르너, 모제스 헤스 등이 속한 이른바 ‘청년헤겔파’ 또는 ‘헤겔좌파’의 철학을 비판한 책이다. 슈티르너는 1842년부터 청년헤겔파에 참가했고 마르크스는 1841년에 베를린을 떠났기 때문에 두 사람은 만나지 못했지만, 엥겔스는 그 모임에 참석해 청년헤겔주의자들의 시끄러운 논쟁을 바라보고 있는 고립된 인물로 슈티르너를 묘사한 스케치를 남겼고 슈티르너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 시 「신앙의 승리」도 썼다. 

슈티르너를 봐, 그를 봐, 모든 제약의 평화로운 적이야.
당분간 그는 여전히 맥주를 마시겠지만 
곧 그는 물처럼 피를 마실 거야. 
“왕을 타도하라”고 거칠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오면 
슈티르너는 곧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법 또한 타도하라”고 외친다. 

 

“에고이즘에서 인간이 되고자 한다”

라인신문 사진=위키미디어
슈타르너는 <라인신문>에 자신의 논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사진=위키미디어

슈티르너가 마르크스의 <라인신문>에 1842년 4월 10일부터 19일 사이에 4회 연재한 「우리 교육의 잘못된 원리 또는 휴머니즘과 현실주의」라는 제목의 논문을 실은 것을 보면, 그 또한 당시에는 마르크스나 엥겔스가 슈티르너의 생각에 공감했음을 보여준다. 논문에서 슈티르너는 당대 교육 사상인 휴머니즘과 현실주의를 각각 학자와 직업인 양성을 위한 것이라고 보고, 둘 다 지식 습득을 목표로 삼는다고 비판하면서 의지를 갖는 자유로운 개인인 에고이스트를 키우는 것이 교육의 참된 목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슈티르너는 ‘교육받은 사람’과 에고이스트를 구별하여, 전자에게 지식은 인격 형성에 이용되어 교육받은 사람을 교회, 국가 또는 인류가 소유하게 되는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자유로운 선택을 용이하게 하는 데 이용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문길 교수는 『에피고넨의 시대』에서 슈티르너가 휴머니즘과 현실주의의 화해를 추구했다(83쪽)고 오해했다.

슈티르너는 같은 신문 6월 14일자에 「예술과 종교」도 실었다. 그 글에서 슈티르너는 브루노 바우어가 쓴 「신앙의 관점에서 판단된 헤겔의 종교와 예술에 대한 이론」을 다루면서 바우어가 헤겔과 공통된 결정성과 명료성, 그리고 공통의 윤리적 근원을 바탕으로 예술이 종교보다 철학에 훨씬 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헤겔이 주장한 예술과 종교의 관계를 뒤집었다고 보고, 예술이 오히려 종교의 목적을 창조했고 슈티르너가 고려했던 것, 즉 헤겔과 바우어와 반대로 철학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헤겔과 바우어의 비판을 모두 뛰어넘었다.

슈티르너는 1843년에 『유일자와 그 소유』를 썼고, 1944년 4월에 완성한 뒤 11월에 출판했는데 출판 직전에 엥겔스에게 교정본이 전해졌다. 그때 엥겔스는 마르크스에게 편지를 써서, 그 책을 보내겠다고 약속하면서 다음과 썼다.

“그의 원칙에서 참된 것은 우리 역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사실인 것은 우리가 어떤 대의에서든 활동할 수 있기 전에 그것을 우리 자신의 에고이즘이라는 대의명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물질적인 기대와는 별개로 우리는 우리의 에고이즘 덕목에서 공산주의자로, 에고이즘에서 우리는 단지 개인이 아니라 인간이 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뒤 1846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슈티르너를 비판하는 『독일 이데올로기』를 썼다. 

 

『독일 이데올로기』로 『유일자와 그 소유』를 비판한 마르크스

마르크스 쓴 『독일 이데올로기』의 친필 첫 페이지. 사진=위키미디어

『독일 이데올로기』의 무삭제 본문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슈티르너를 공격하는 데 바친 페이지 수는 슈티르너의 저술 총계를 넘는다. 『독일 이데올로기』의 1권 1장은 포이에르바흐, 2장은 바우어, 3장은 슈티르너, 2권은 헤스와 프루동 등의 철학을 비판하는데, 그중 가장 방대한 부분은 슈티르너의 『유일자와 그 소유』에 대한 것으로 전체 약 1400쪽(한글판. 독일어판은 그 반이다)의 반에 이른다. 

그중에서 지금까지 중시되어온 것은 1권 1장으로 그것은 『포이어바흐 테제』가 윤곽을 드러낸 작품이라는 외관을 주는 것으로 마르크스가 ‘역사의 유물론’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역사 이론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 슈티르너에 대한 마르크스의 장황한 맹렬함은 이후 마르크스의 지적 발달에 관념론에서 유물론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여겨졌다. 역사적 유물론이야말로 공산주의와 도덕에 대한 슈티르너의 거부를 화해시키는 마르크스의 방법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독일 이데올로기』의 첫 출판 이후,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은 이 작품이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진술일 것이기 때문에 특히 가치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새로운 마르크스엥겔스전집(MEGA)에 대한 최근의 연구는 그 안에 있는 내용의 상당 부분이 1930년대 모스크바의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의 서지학적 연구로는 한국에도 고 정문길 교수에 의한 훌륭한 업적이 있다. 그러나 그 책의 내용, 특히 슈티르너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을 분석한 내용을 찾기는 어렵다. 서지학적 연구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책 자체가 번역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책의 서지학에 대한 연구만이 나온다면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다. 

2019년에 『독일 이데올로기』의 완역본이 나오기 전의 한국은 그런 문제적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완역본 번역자인 이병창은 그 책의 번역이 너무 어려워서 한국에 마르크스주의가 도입되고 근 100년이 걸려 나왔다고 한다(910쪽).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면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들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게으름 때문이었다고 해야 한다. 원전 번역을 무시하고 해설이나 비평에만 급급한 것이다.

 

비판받던, 슈티르너의 고민 아직 몰라

막스 슈티르너. 사진=위키미디어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비판되는 책들의 우리말 번역이 거의 없어서 비판되는 책의 내용을 충분히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포이어바흐의 경우 『기독교의 본질』과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가 번역되어 있으나, 바우어, 슈티르너, 헤스의 책은 번역되어 있지 않다.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의 반을 차지하는 내용인 슈티르너 책은 아직 번역되어 있지 않다. 필자가 2020년에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번역작업을 시작했으나, 심사 등의 절차를 거쳐 번역이 나오기까지에는 앞으로 몇 년이 걸릴 것 같다. 따라서 이 글에서도 슈티르너 원전이 없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간단한 소개에 그칠 수밖에 없다.

먼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대한 기존의 책에서는 그들이 슈티르너를 참으로 하찮게 보았다는 식으로 서술한 점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보았다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성 막스’, ‘산초’, ‘별종’이라고 이름 붙인 슈티르너 비판에 『독일 이데올로기』의 반을 바칠 필요가 있었을까? 도리어 그 정도로 슈티르너를 진지하게 다루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사실 슈티르너는 마르크스 엥겔스와 많은 점을 공유한다. 즉 그의 변증법적인 방법, 추상화와 ‘인간 본질’에 대한 비판, 노동에 대한 분석, 정적인 유물론의 거부, 그리고 사회 변화 속의 인간의 의지에 대한 강조에서 그렇다. 엥겔스는 심지어 마르크스에게 그가 슈티르너의 책을 읽고 나서 에고이즘으로 전환되었음을 인정했고, 비록 일시적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우리가 공산주의자인 것은 똑같이 에고이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슈티르너는 공산주의자가 아니고, 그 점에서 그는 마르크스나 엥겔스와 다르다. 여기서 에고이즘이라는 말을 개인주의나 이기주의로 번역하지 않고 원어 그대로 표기하는 이유는 그 말의 번역이 그 말을 상당 부분 왜곡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에고이즘을 개인주의, 특히 이기주의라고 번역하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극단적으로 대립 되는 의미로 오해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해해서는 마르크스나 엥겔스도 에고이스트였다는 점을 제대로 알 수 없다. 그래서 그런 번역어보다 자아주의라는 말이 적합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말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유에서 역시 채택하지 않는다. 에고이스트라는 말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그대로 사용하겠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