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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갈등 해결할 볼테르의 관용 리더십
우리 사회 갈등 해결할 볼테르의 관용 리더십
  • 김충현
  • 승인 2022.04.28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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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역사로 본 21세기 공공리더십 ⑧_김충현 충남대 연구교수·리더스피릿연구소
최근 새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여부를 두고 ‘공약 이행’(오른쪽 위 사진)과 ‘여성정책 강화’(오른쪽 아래)로 대립되는 젠더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볼테르가 주창한 ‘관용’은 이러한 갈등을 건전하게 해결할 열쇠 중 하나다. 사진=베르사유 궁전(왼쪽), 연합뉴스(오른쪽)
최근 새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여부를 두고 ‘공약 이행’(오른쪽 위 사진)과 ‘여성정책 강화’(오른쪽 아래)로 대립되는 젠더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볼테르가 주창한 ‘관용’은 이러한 갈등을 건전하게 해결할 열쇠 중 하나다. 사진=베르사유 궁전(왼쪽), 연합뉴스(오른쪽)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는 갈등이 존재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한국전쟁 이후 첨예하게 대립했던 이념 갈등부터 지역갈등, 세대 갈등, 그리고 최근 가장 심각한 것으로 생각되는 젠더 갈등까지 우리는 계속되는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생각의 차이, 그리고 그로 인한 갈등은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다. 다만 문제는 그 갈등이 건전하게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증오와 혐오로 변하고 마침내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갈등을 건전하게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볼테르와 그가 주창한 ‘관용(Tolérance)’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자. 검열을 피하기 위해 볼테르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던 프랑수아마리 아루에(Françoix-Marie Arouet)는 18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계몽사상가로서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이다. 프랑스 혁명 때 위인들을 모시기 위해 제헌의회가 마련한 장소인 ‘팡테옹(Panthéon)’에 첫 번째로 안장된 인물도 볼테르였다. 사형제를 폐지한 빅토르 위고, 「나는 고발한다」(J'accuse)를 통해 드레퓌스 재판의 부당함을 고발했던 작가 에밀 졸라는 자신들이 볼테르의 뒤를 잇는 투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알제리 독립을 지지하며 정부에 대항했던 작가 사르트르를 구속하라고 측근들이 요구했을 때, 드골 대통령은 “볼테르를 감옥에 가둘 수는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프랑스 지식인들은 왜 볼테르를 소환하는가. 볼테르가 살았던 18세기는 계몽주의 시대였다. 그러나 마녀사냥의 광기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종교적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죽이기까지 했던 시대였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칼라스 사건(l’Affaire Calas)’이다. 1762년 장 칼라스(Jean Calas)는 아들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사형에 처했다. 아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려고 하자 개신교도였던 아버지가 아들을 살해했다는 이유였다. 볼테르는 사건자료들을 면밀 조사한 끝에 무죄를 확신하고 칼라스의 복권을 위해 투쟁했다. 그리고 칼라스에 대한 재심, 무죄, 복권, 보상금 지급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볼테르가 개신교의 종교적 신념을 지지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종교적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칼라스가 부당한 재판을 받았던 것에 분노했고, 그것을 시정하기 위해 투사가 되었다. 그리고 부당함을 널리 고발하기 위해 『관용론』(Traité sur la tolérance, 1763)을 썼다. 여기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하지만, 당신의 말할 권리를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겠다”라는 말은 없다. 그러나 볼테르는 “어떤 이들은 자비나 관용 그리고 종교의 자유는 가증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자비나 관용, 종교의 자유가 그와 같은 재앙을 초래한 적이 있었던가”라고 반문하며, 관용을 호소했다.

관용이란 무엇인가. 관용은 단순히 너그럽게 용서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종류의 사고방식과 행위 양식을 ‘존중’하고 자유롭게 ‘승인’하는 태도다. 나와는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존재 안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에 ‘권리를 부여’하고자 하는 태도다. 본래 인간이란 존재가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볼테르는 『관용론』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기도한다. “우리의 허약한 육체를 감추는 의복들, 부족한 언어들, 가소로운 관습들, 불완전한 법률들, 분별없는 견해들… 인간이라 불리는 티끌들을 구별하는 이 모든 사소한 차이들이 증오와 박해의 구실이 되지 않도록 해주소서.”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로서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우리가 느끼는 차이는 볼테르가 말한 것처럼 매우 사소하다. 그렇기에 어떤 점에서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혐오하거나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역사적으로도, 불관용은 파국을, 관용은 발전을 가져왔다. 스페인이 마녀사냥으로 유대인을 잃은 뒤 쇠퇴했고, 루이 14세가 종교박해로 개신교도들을 잃은 뒤 프랑스 경제를 위축시켰지만, 유대인과 프랑스 개신교도를 받아들인 네덜란드가 17세기 황금기를 맞이했던 것을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 갈등을 관용으로 극복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김충현 충남대 연구교수·리더스피릿연구소

충남대에서 프랑스 종교전쟁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충남대에서 교양강의를 하고 있다. 공저서로 『공공성과 리더스피릿』(2022), 『고전의 창으로 본 리더스피릿』(2021)가 있으며, 「17세기 후반 위그노 망명과 영국의 명예혁명」(2020), 「루이 16세의 <관용칙령>과 얀센주의 운동」(2019) 등의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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