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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하면서도 절제된 자유주의’를 위하여
‘강건하면서도 절제된 자유주의’를 위하여
  • 최장집
  • 승인 2022.04.25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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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①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9를 맞이해 「자유와 이성」을 주제로 총 44회차 강연을 시작했다. ‘자유’를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본성, 재난과 질병에 대한 제약과 해방 등을 역사, 정치, 철학, 과학기술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살펴본다. 지난 2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가 「자유주의의 이념·현실·기풍」을 총론격으로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2강은 김상환 서울대 교수(철학과)의 「인간 존엄성의 근거: 자유, 자율, 이성」, 제3강은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철학)의 「유학에서의 자유와 공동체」, 제4강은 나종석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철학)의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 제5강은 이진우 포항공대 명예교수의 「인간 자유의 본질」이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노르베르토 보 비오의 개념을 인용해, 자유가 민주주의의 제1의 원리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인간의 지적, 철학적, 문화적 영역에서, 또한 정치와 경제, 사회적 영역에서 근대를 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자유의 이념, 내지 자유주의는 여러 이념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의 하나라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냉전 해체 이후 오늘의 국제 정치 환경과 사회경제적 조건의 변화가 자유주의의 의미와 역할을 재해석하려는 학문적, 지적 노력들을 필요로 한다. 그만큼 자유주의가 위기에 처했음을 의미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냉전이 해체된 지도 한 세대 이상의 시간이 경과한 오늘, 우리는 냉전 자유주의를 호명하면서, 자유와 자유주의의 의미를 다시 탐구하고, 재해석하는 현상을 대면하게 된다. 냉전 자유주의로부터 어떤 진정한 가치, 이념, 덕의 윤리, 자유주의가 스스로를 드러내고, 행위하는 기풍(ethos)을 찾아내고, 발전시키고, 고양하는 역할을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여기서는 조슈아 처니스 조지타운대 교수(정치이론)가 강조한 “강건하면서도 절제된 자유주의(tempered liberalism)”를 살펴본다. 이 개념은 냉전 자유주의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정치 윤리이자, 자유주의자의 행위 규범이라고 생각한다.

현대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줄임말이다. 이탈리아 철학자 노르베르토 보비오를 인용하자면, 자유주의는 부르주아지의 권력에 봉사할 수 있지만, 그 자유를 통해 국가 권력을 확대하는 것을 동시에 제한할 수 있는 이념이다. 절대다수의 정치철학자나 이론가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자유가 민주주의의 제1의 원리라는 점을 믿었고, 지금도 믿고 있다.

자유주의라는 이념, 철학은 17∼20세기 사이에 만들어졌다. 자유주의는 서구 문명을 가장 근본적으로 이끌어왔던 이념이고 이론 체계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간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프랑스의 1848년 2월 혁명은 역사적 전환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회주의라는 또다른 중요한 제3의 정치 이념이 출현하는 역사적 계기였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저한 『공산당 선언』이 나온 것도 바로 이때이다.

 

자유와 평등 결합, 자유-민주주의의 과업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수렴은 하나의 경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이 작동할 수 있게 된 것은, 전반적으로 성공적이라 할 만하지만, 그 협력은 불평등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 내용면에서 볼 때 민주주의가 자유주의를 합병한 것보다 훨씬 더 자유주의가 민주주의를 흡수했다는 의미에서 자유주의가 민주주의를 압도했다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는 자유를 요구하는 것이고, 민주주의는 평등을 요구하는 것이다. 반대로 둘을 합쳐서 본다면, 자유와 평등을 결합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과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유와 평등이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은 서구의 체제가 자유주의적이고, 동시에 민주주의적이라는 바로 그 사실을 통해 드러난다.

민주주의는 사회적 결속과 분배적 평준화를 지향하고, 자유주의는 탁월함과 자발성을 존중하는 이념이나 가치, 또는 행위 규범이라 할 수 있다. 평등은 통합과 조화를, 자유는 자기 주장과 문제를 일으킨다. 민주주의는 다원주의에 대해 별 필요를 느끼지 않지만 자유주의는 다원주의의 소산이다. 아마도 둘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자유주의가 개인을 중심으로 해서 돌아가고, 민주주의는 사회를 축으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자유주의적인 것은, 정치적 유대, 개인적 이니셔티브를 국가 형태의 주요 특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민주적인 것은, 복지, 평등, 사회적 융합이 특징일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공식은 자유를 통한, 자유의 수단에 의한 평등이다. 평등의 수단을 통한 자유가 아니다.

자유주의의 성공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어떤 현대 국가도 더 이상, 하나의 최소 국가가 아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모든 사안에서 국가 전체를 움직이는 “대규모 규제자”일 뿐 아니라 점점 더 거대한 “대규모 고용자”로 등장했다. 여전히 자유주의가 가질 수 있는 정치적 강점은 견제되지 않은 권력은 참을 수 없고, 재난이라는 점이다.

 

소극적 자유 대 적극적 자유

영국의 이사야 벌린은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의 철학을 구분했다. 소극적 자유가 누구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자유라면, 적극적 자유는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고, 자율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극적 자유는 인간의 목적과 재화 그 자체가 경쟁적인 다양성과 가장 일치하기 때문에, 자유의 근원이 되는 유형으로 수용되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벌린의 가치 다원주의는 윤리적 온건함을 불러들이는 데 기여한다.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받아들인다는 아이디어가 한 사람이 덕과 지혜를 독점하거나 다른 사람을 자신의 이미지에 짜 맞추려는 욕구를 불러오는 오만한 환상을 약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보비오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한 진정한 헌신은 편향되지 않고, 이데올로기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가능한 한 많이 민주주의 체제의 부정적 측면들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주의가 여러 약점을 지닌다 하더라도, 그 원칙에 있어서만큼은 존중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요구였다. 그는 민주주의가 법의 지배, 언론과 결사의 자유, 다원주의가 핵심 요소로서 작용하지 않고서는 적절하게 기능할 수 없다고 믿었다. 아울러, 보비오는 좌와 우를 결합해 초월하고자 했던 제3의 길이 확실하지도 않고, 애매모호한 아이디어일 뿐, 사회민주주의의 원칙과 비교할 때 실제의 진전을 만들어내지도 못했다고 비판적으로 이해한다. 한편, 보비오는 다른 주요 철학자들이 중시하지 않는 온유함이라는 미덕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다.

서구의 철학자, 정치·사회철학자, 과학자, 지식인, 언론인 그리고 정치인들이 냉전 자유주의에 대해 재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진정 냉전 자유주의의 의미와 역할을 반추하는 것만으로서는 가능할 것 같지 않다. 본 강연자는 그 핵심적인 지식, 행위 규범, 시민적 덕과 윤리의 중심에 일단 “강건하면서도 절제된 자유주의”를 관심의 주제로 제시했다. 생산적인 토론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 강연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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