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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헌 평전
허헌 평전
  • 최승우
  • 승인 2022.04.21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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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은진 지음|456쪽|역사공간 출판

허헌은 한말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공간에 이르기까지 한국근현대사의 굵직한 역사적 흐름과 맥을 같이 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독립운동가, 정치가, 민족지도자로서 사회운동뿐만 아니라 법조계·교육계·언론계·경제계 등 여러 방면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가인 김병로, 애산 이인과 함께 이른바 ‘삼인’으로 불리는 항일변호사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운동가와 사회운동가에 대한 지원과 변론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3·1운동 재판에서는 유명한 ‘공소불수리 신립사건’으로 일제 사법당국에 일격을 가했으며, 1920년대에는 신간회 위원장으로서 일제의 탄압에 맞서다가 옥고를 치렀고, 8·15 직전에도 ‘단파방송 사건’에 연루되어 또 다시 옥고를 치렀다. 해방공간에서는 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 조선인민공화국 국무총리, 민주주의민족전선 의장, 남조선노동당 위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통일민족국가 수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한말부터 해방공간까지 허헌의 활동은 사실상 인권과 박애의 차원에서 휴머니스트로 행했던 다양한 활동에서부터 민족주의자로서의 활동,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적 활동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이 때문에 허헌의 사상에 대한 평가는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진보적 민족주의자’ 정도로 보는 게 일반적인 시선이다. 다시 말해서 허헌의 사상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할 때는, 당대에도 오늘날에도 대체로 ‘양심적이고 진보적인 민족주의자’ 정도로 합의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권모술수와 정치적 책략을 모르는 강직함과 솔직함, 30년 동안 한 번도 자기당파를 만든 적이 없고 오로지 인민대중의 부름에만 응하는, 오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겸허함,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주어진 임무를 주어진 시간 내에 완수하는 열정과 성실함, 허헌이 이 세 가지의 덕목을 지닌 인물이기에 민족의 정치지도자로서 그의 역할이 중요했음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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