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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보다 많은 자유를?
대학정론: 보다 많은 자유를?
  • 이종오 논설위원
  • 승인 2005.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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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신임 총리로 취임한 안젤라 메르켈은 11.30 대연정의 시정철학을 밝히는 첫 의회연설에서 주목할 만한 발언을 하였다. 즉 대연정은 ‘보다 많은 자유(mehr Freiheit)’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1969년 1차 대연정 당시의 빌리 브란트 부총리의 연설에서의 ‘보다 많은 민주주의’를 보충하는 것이라고 하였으나 듣는 사람들에게 이는 보충이 아니라 ‘대조’ 혹은 ‘대치’로 느껴지게 한다.

독일은 2차 대전의 폐허 위에서 의회민주주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정치, 사회 시스템의 양대 축으로 하여 이른바 ‘독일 모델’을 전 세계에 과시한바 있다.

독일 모델의 독특한 점은 정치적, 경제적 자유주의의 내용이 ‘사회적’이라는 것이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흔히 조합주의 모델이라고 이야기 하는 이해당사자 참여형, 사회적 동반자 주의를 산업민주주의, 경제민주주의의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후 가장 모범적인 민주국가의 하나를 이룬 이 나라에서 지금 나오는 ‘자유’에의 외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바로 경영참여형, 사회적 동반자 관계라는 이인삼각의 불편함 으로 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사회적’ 자유주의에서 ‘사회적’이라는 구속으로부터 ‘천천히’ 벗어나겠다는 것이며 바로 독일 모델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사회국가(Sozialstaat)의 성격을 시대에 ‘적응’시키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세계화, 시장화의 폭풍속에서 ‘사회적 합의주의’의 전망이 매우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흔히 만체스터 자본주의라고 일컬어지는 고전적 자유주의가 사회적 자유주의로 진화,발전하기 까지에는 노동자운동을 위시한 사회운동의 엄청난 이론적, 실천적 역사적 자취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 1990년대 부터의 세계화, 시장화 바람은 150년 이상의 사회적 성취를 매우 빠르게 해체하고 있다. 산업화를 갖 끝낸 한국은 이제 겨우 ‘사회성’을 정치, 사회의 각 영역에 도입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민적 성격의 사회보험은 이제 설계단계에 있다. 그런데 세계의 흐름에 결코 둔하지 않은 한국 지식인 들 중 일부는 이미 ‘자유의 상실’과 ‘보다 많은 자유’를 시대의 화두로 제기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의 경제, 사회시스템이 ‘보수화’로 바꿔야 할 ‘사회적’ 내용을 얼마나 지니고 있느냐 이다.

이른바 ‘경쟁력’이 약한 집단과 개인은 독일이나 한국이나 웅크리고 앉아 불안하게 미래를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불안의 확산은 결국 ‘보다 적은 민주주의’와 ‘새로운 권위주의’를 가져올 위험성이 매우 크다.

이런 면에서 민주주의는 동서를 막론하고 전 세계적으로 위험에 처해있으며 한국 민주주의도 여기에서 결코 예외가 아니다. 지금이 아직도 ‘보다 많은 민주주의’를 추구해야 할 때인가 혹은 이미 ‘보다 많은 자유’를 도입할 때인가에 대해 한국의 지식인들은 심각하게 고민하여야 한다.

명지대,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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