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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농업 아니라 農村 살리는 정책을
교수논평: 농업 아니라 農村 살리는 정책을
  • 양승룡 고려대
  • 승인 2005.12.02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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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룡/고려대·농업경제

  우여곡절 끝에 쌀의 관세화를 10년 더 유예하는 협상안이 국회에서 비준되자 정부의 쌀 산업대책은 농업인구 감축론으로 시작되었다. 한국경제를 진두지휘하는 재경부차관은 현재 8%에 이르는 농업인구의 비중이 과다하여, 구조조정을 통해 농업인구를 줄이고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2005년 한국. 농업은 벼랑 끝에 섰다. 앞으로는 WTO라는 이름의 탱크를 앞세운 수출 농산물이 물밀듯이 들이닥치고, 뒤로는 천길 벼랑이다. 농업을 먹고 자란 국내산업들은 농업이 수출 확대에 걸림돌이 된다며 농업포기를 은근히 종용한다. 그러면 핸드폰과 반도체를 더 많이 수출해서 극빈층에 대해 생활보호지원을 하듯, 농촌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쳐주겠다고 회유한다. 먹거리를 생산하는 일을 가장 숭고한 직업으로 자랑스럽게 여기던 농민은 더 이상 갈 곳도 기댈 곳도 없다.

  길거리로 뛰쳐나와 극렬한 데모를 하는 농민들을 보고 혹자들은 아직도 기세등등한 농업의 정치적 파워를 우려한다. 그러나 이는 정작 소외되고 외면당한 농업이 할 수 있는 최후의 부르짖음이다. 정용품 전남 담양, 오추옥 경북 성주, 전용철 충남 보령. 이들은 11월에 숨진 농민들이다. 그냥 숨을 거둔 것이 아니라, 농업을 살려달라고 목숨을 버려 절규한 농민들이다. 눈부신 경제성장의 뒤안길에서 열심히 농사지은 것 밖에는 없는데, 갈수록 쌓여가는 빚은 소외감과 절망감과 함께 농민으로 하여금 목을 매거나, 농약을 마시거나, 할복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이들이 목숨을 버리면서 세상을 향해 터뜨리고 싶은 분노가 무엇이었을까? 그 분노마저도 감당하기 어려운 절망감은 얼마나 큰 것이었을까?

  오늘날 한국농업이 직면한 문제는 농업에 대한 철학의 충돌에서 발생한다. 농업도 하나의 산업으로서 시장논리에 의해 그 존망과 성패가 결정될 수밖에 없으며,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농업에 투하된 자원은 다른 비교우위 산업으로 이전되어 국가의 부를 증대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농업이 생산하던 식량은 더 저렴한 가격으로 수입하여 조달해야 한다. 200년 전 리카르도가 주창한 단순한 비교우위론이 아직도 눈이 시퍼렇게 살아 한국농업의 목을 죈다.

  이미 세계를 점령한 신자유주의는 당연히 수출의존적인 한국경제를 지배하는 사상이다. 그러나 이들은 왜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이 강한 농업을 가진 미국정부가 자국의 농업에 엄청난 예산을 들이는지에 대해 외면한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미국에 식량을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유럽이 왜 막대한 농업보조금이 드는 식량자급을 국가정책의 기본으로 삼는지에 대해 외면한다. 이들은 왜 전체 인구의 2%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국농업이 한국농업이 추구해야할 모델이 아니라 반면교사가 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중국에서 사먹을 수밖에 없는 납 꽃게와 중금속 김치, 농약범벅 한약재를 보면서 왜 국내 생산기반이 식품안전에 중요한지 이해하지 못한다.

  과거 고무신산업과 연탄산업이 우리 경제의 무대에서 사라져갈 때 아무도 이들 산업을 살려달라고 아우성치지 않았다. 그러나 전 세계 어떤 선진국도 산업화과정에서 사양화되는 농업을 그대로 사라지게 두지 않는다. 오히려 더 쪼그라들지 않게 온갖 정성과 노력을 기울인다. 이는 농업이 다른 산업과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 있는 농가만을 선택해서 육성한다는 정책방향을 가지고 있다. 선택에서 탈락한 농가들은 농지를 이양하고 사회보장지원을 받으며 살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구조조정 정책은 필연적으로 농촌의 공동화와 황폐화를 촉진시키고, 도농간 격차와 지역간 갈등을 심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러한 정책은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던 농민들을 사회의 천덕꾸러기로 전락시키며, 그들의 자존심을 짓밟고 있다. 이것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도 차마 하지 못한 마지막 말일 것이다.

  오늘날 농업문제의 해법은 소수의 스타농민을 키우는 구조조정 정책이 아니라 농촌과 농민을 살리는 정책에서 찾아야 한다. 농촌에는 그 나라의 전통과 문화,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농업에 대한 철학의 정립이 최우선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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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 2005-12-05 12:26:43
농촌에서의 생활 방식만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농촌은 많은 오염물질을 만들어 내지 않고,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여서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하고, 매년 정해진 생산을 하며, 많지 않은 수입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죠.
농촌마저 구조조정의 논리에 의해 살벌한 경쟁의 장이 된다면 이 땅에서 마음 놓고 누구에게 의지하며 살아갈 곳은 사라진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농촌에서 농사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60세 이상의 노년층입니다. 그동안 땅을 지키며 묵묵히 살아온 그들이 구조조정 된다면 국가가 그들에게 무얼 해 줄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그리고 농촌의 노인들은 죽늘날까지 일을 합니다. 휴경지에 대한 보상에 대해 노인들은 "일을 하지 말라니 망할 세상이다"라고하죠. 비록 그들이 많이 배우지 못하였지만 바르게 살아 갈 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곳이 농촌이라 생각합니다.
농촌은 우리들의 마음의 고향이며 힘들때 돌아가서 위안 받고, 재충전 할 수 있는 곳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