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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학문분야별 번역 트렌드 점검-자연·사회과학
기획특집: 학문분야별 번역 트렌드 점검-자연·사회과학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5.12.02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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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생물학 쪽으로 ‘편식’…촘스키 등 저항담론 우세

자연과학은 각 분과뿐 아니라 과학철학도 포함하는 매우 방대한 영역이지만, 몇몇 이론들로 편중돼 트렌드를 이루고 있다. 우선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이는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다. 올해에만 ‘조상 이야기’(이한음 옮김, 까치글방 刊), ‘에덴의 강’(이용철 옮김, 사이언스북스 刊), ‘악마의 사도’(이한음 옮김, 바다 刊) 등 세 권이 출간됐다. ‘이기적 유전자’ 이후 계속되는 ‘도킨스 붐’이라 할 수 있다. 같은 계열로 ‘인간본성에 대하여’의 저자 에드워드 윌슨과 ‘빈 서판’의 저자 스티븐 핀커가 있다. 윌슨 역시 올해 ‘우리는 지금도 야생을 산다’(최재천 외 옮김, 바다 刊)와 ‘통섭’(최재천 외 옮김, 사이언스북스 刊)이 번역됐는데, 이들 모두는 ‘인간의 사고나 행동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분야 역시 전공자들이 부지런히 발벗고 나선 탓에 널리 읽히고 있었다.

해킹, 쿤의 主著 번역돼야

하지만 최근 유독 같은 계열의 이론만 과도하게 소개되는 것 아닌가하는 우려도 없지 않다. 이상원 포항공대 교수는 “진화생물학자들과 반대의 입장인 로우즈나 굴드, 르원틴 같은 이들을 함께 접해야만 균형적 입장을 취할 수 있다”라고 조언한다. 로우즈의 저서는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가, 굴드는 ‘인간에 대한 오해’ 등이, 르원틴은  ‘DNA 독트린’ 등이 번역돼 나왔다.

과학철학 쪽에선 교과서나 다름없는데 올해에야 출간된 것이 이언 해킹의 ‘표상하기와 개입하기’(이상원 옮김, 한울 刊)다. 언어철학쪽 저서가 소개된 바는 있지만, 그의 과학철학서가 이제야 빛보게 된 데엔 여러 이유가 있다. 번역을 감당할 이가 적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과학철학 분야가 철학에서 다뤄야 하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인문학과 자연학과의 거리감 때문에 전문번역가나 또는 한정된 과학철학자들이 소화해야만 한다”는 지적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탓에 해킹의 주요 저서 중 하나인 ‘The Social Construction of What?’도 향후 과제로 남아 있다. 

해킹 뿐 아니라, 과학철학 쪽에 파이어아벤트나 라카토스 등의 번역도 학문적 중요성에 비해 번역성과는 썩 좋지 않은 편이다. 그래도 라카토스의 경우 지난 2002년 ‘수학적 발견의 논리’와 ‘과학적 연구 프로그램의 방법론’이 출간된 반면, 파이어아벤트는 1987년 ‘방법에의 도전’(Against Method)이 번역된 후 절판됐고 그 이래 역서가 단 한권도 나오고 있지 않는 현실이다. 

가장 유명한 과학철학자로 꼽히는 토머스 쿤 역시 이름값에 비례하는 저술들은 소개되지 않고 있다. 다행히 올해 쿤에 대한 연구서 ‘토머스 쿤’(웨슬리 샤록 외 지음, 김해진 옮김, 사이언스북스 刊)이 소개됐지만, 저서는 ‘과학혁명의 구조’ 외엔 없다. 최소한 ‘The Essential Tension’, ‘The Road since Structure’ 정도는 번역돼야 한다는 게 학계의 의견이다. 이 외에도 과학 쪽에선 우주에 관한 물리학 저서들이나 아인슈타인과 관련한 책들, 생명윤리에 관한 책들이 활발히 출간됐다.

사회과학 쪽 번역상황은 시의성과 관련해 팔리는 책 중심으로 과도하게 시장이 형성된다거나, 이데올로기적 지형 내에서 이뤄지는 번역들, 나아가 몇몇 출판사들이 저항담론 위주로 출판을 집중하고 있는 까닭에 그리 풍부하지 않은 출판상황에서 번역구도는 단순하게 그려지는 편이다. 특히 공급이 수요를 결정짓는 게 아니라, 수요가 공급을 결정짓는 상황이라, “학문의 저변을 확대시키기 위한 필독서 수준의 번역보다는 일부 인기 사상가들의 번역이 과도하게 치중돼 번역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게 몇몇 전공자들의 지적이다.

시장논리에 좌우되는 사회과학

그중 최근에 가장 많이 빛을 봤던 게 촘스키의 저서들이다. 올해엔 ‘지식인의 책무’(강주헌 옮김, 황소걸음 刊)와 ‘중동의 평화에 중동은 없다’(송은경 옮김, 북폴리오 刊) 등 두 권이 출간됐지만, 지난해 촘스키에 대한 번역서가 7권 나왔던 걸 보면 ‘촘스키 시대’였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한 신문칼럼에서 “촘스키는 병적인 반미주의자로 미국의 진보진영도 멀리하고 있는 인물”이라며 한국 출판계의 기이함(?)을 지적한 바 있다. 물론 이 역시 동일선상의 이데올로기적 지형에서 나온 발언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국내 출판계에서 저항담론의 출판이 우세한 건 사실이다. 그중 몇몇을 살펴보면, 네그리의 ‘혁명의 만회’(영광 옮김, 갈무리 刊), 하워드 진의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윤길순 옮김, 당대 刊), 마이클 만의 ‘분별없는 제국’(이규성 옮김, 심산 刊)이 출간됐다. 또 ‘새로운 제국의 도전’(레오 파닛치 지음, 진보저널읽기모임 옮김, 한울 刊)이나 아룬다티 로이의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제국 가이드’(정병선 옮김, 시울 刊) 등도 마찬가지 위치에 놓여질 것이다. 

물론 보수주의 쪽 견해도 반짝 기운을 입었다. 잘 팔리는 사상가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강한 국가의 조건’(안진환 옮김, 황금가지 刊)뿐만 아니라 ‘더 라이트 네이션’(존 미클레스웨이트 외 지음, 박진 옮김, 물푸레 刊) 등과 같이 네오콘의 붐은 지난해에 이어 좀 남아 있다.

그래도 이론쪽에서도 역시 틈을 두지 않고 출간되는 건 사회주의나 노동계급에 관한 번역이다. 올해 이들 관련 번역서로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존 몰리뉴 지음, 최일붕 옮김, 책갈피 刊), ‘소련의 역사와 계급이론’(스티븐 레스닉 외 지음, 신조영 옮김, 이후 刊), ‘노동의 힘’(비버리 실버 지음, 백승욱 외 옮김, 그린비 刊)등이 출간됐다.

보수건 진보건 사회과학계열은 시장논리와 이론적 입장이 상당한 작용을 하는 곳이다. 이에 대해 한 정치학과 교수는 “제3세계적 취향을 만족시켜준다는 차원에서 계속해서 저항담론 쪽만 번역이 되고 있는데, 일반 학생들은 이런 비주류적 사상들을 주류로 오해할 수 있다”라며 비판한다. 이기홍 강원대 교수도 “촘스키를 어떻게 해석하건 간에 그가 계속 번역되는 이유는 우리시장에서 팔리기 때문이다”라면서, “한국의 시장은 기묘하게 짜여져 있다. 제도적 장치가 없다면 사회과학의 기반을 다지는 게 아닌 아주 기형적인 형태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한다. 이충훈 뉴스쿨대 박사과정생의 의견도 귀담아들을만하다. 이 씨는 “사회과학에서 번역은 이슈 중심이어야 하지만, 이것은 시류 편승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면서 “예전에 국가의 검열을 받았던 것처럼 지금은 시장의 검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라고 꼬집는다.

이 씨는 ‘이슈중심의 번역’이란 “시장 상황에의 종속이 아니라 사회과학적 문제에 대한 공적 여론에 구성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라면서 이를테면 시장의 시선 때문에 번역되지 않는 예로서 젱하스의 ‘The Clash within Civilizations’나 식민지시대 과거청산에 실패했을 때 사회가 어떤 파국을 맞을 수 있는가를 르완다 학살을 통해 탁절하게 분석한 맘다니의 ‘When Victims become Killers’ 역시 그런 맥락에서 우리 사회에서 번역되지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깝다고 덧붙인다.

이런 상황에서도 최근 방법론 쪽에서 로이 바스카 의 ‘초월적 실재론과 과학’, ‘비판적 자연주의와 사회과학’(이기홍 옮김, 한울 刊) 등이 나왔고, 정치사상 쪽에서 조지 세이빈 등 옛날의 정치사상 개론서와는 좀 달리 씌어진 ‘정치사상의 이해 I’(폴 슈마커 외 지음, 양길현 옮김, 오름 刊) 등이 나왔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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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 2005-12-05 11:52:56
좋은 기사 잘 봤습니다. 한 가지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도킨스, 핀커, 윌슨 등은 "인간의 사고나 행동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핀커의 [빈 서판]은 유전자의 역할을 아주 조금이라도 언급하면 그런 사람들을 오직 유전자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믿는 유전자 결정론자로 낙인 찍어 버리는 허수아비 논증을 펴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책입니다.

핀커의 [빈 서판]을 언급하면서 핀커를 유전자 결정론자라 칭하다니, 참 슬픈 아이러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