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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빌의 ‘민주주의 리더십’과 풀뿌리 민주주의
토크빌의 ‘민주주의 리더십’과 풀뿌리 민주주의
  • 김찬동
  • 승인 2022.04.21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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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역사로 본 21세기 공공리더십 ⑦_김찬동 충남대 도시·자치융합학과 교수
민주주의 성숙 위해 넘어야 할 산
미국의 민주주의』를 쓴 정치철학자 토크빌은 주민들의 정치 참여, 즉 풀뿌리 민주주의가 민주주의 발전에 필요한 요소로 진단했다. 사진=베르사유 궁전(왼쪽), 예일대 바이네케 고문서 도서관(오른쪽)
『미국의 민주주의』를 쓴 정치철학자 토크빌은 주민들의 정치 참여, 즉 풀뿌리 민주주의가 민주주의 발전에 필요한 요소로 진단했다. 사진=베르사유 궁전(왼쪽), 예일대 바이네케 고문서 도서관(오른쪽)

토크빌은 1835년과 1840년에 걸쳐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을 출간해 미국과 영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대의정부가 최적의 민주주의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던 존 스튜어트 밀도 이 책을 통해 지방자치와 풀뿌리 민주주의로 민주주의가 보다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게 됐다고 말할 정도로 토크빌은 민주주의에 대한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역사상 가장 인간의 본성에 적합한 제도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으로서 ‘주권재민’을 들고 있다. 국민이 주인인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정부 수립에 참여할 수 있는 자유로운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고, 그 권리는 누구에게든지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국가의 정부 수립만이 아니라, ‘근린 정부(neighborhood government)’를 수립할 때도 이러한 권리가 보장돼야 하고, 그 권리가 평등하게 주어져야 하는 것을 '주민주권'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풀뿌리 민주주의이고, 근린 자치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주민자치회를 통해 주민자치를 실질화하자는 논의가 있다. 이는 주민주권을 제도화할 수 있는 모형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해, 길을 잃어버린 한국의 근린 민주주의에 제도 설계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국가전래설에 기반한 단체자치 제도로 운영되다 보니, 주민주권에 입각한 주민자치 제도가 형성되어 있지 못하고, 이것을 가능케 하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토양도 갖춰져 있지 않다. 한국의 민주주의 성숙을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기도 한데, ‘이 산을 넘을 수 있는 지혜를 어디서 구해야 하는가’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

한편, 토크빌은 평등사회에서 개인들이 개인주의에 빠져서, 민주 독재가 등장하는 것을 염려했다. 그런데 『미국의 민주주의』에 따르면, 토크빌은 평등의 저주를 극복하고 있는 모습을 봤다. 참여 확대를 통해 사람들이 지역 공동체에 참여하는 게 일상화되면서 개인주의의 늪을 빠져나오게 되고, 그 결과로 자유를 향유하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토크빌은 미국인들이 참여로써 개인주의를 이겨냈다는 것에서 유럽 민주주의의 희망을 보게 됐다. 즉 평등이 빚어내는 여러 폐해를 맞서 싸울 수 있는 것은 정치적 자유 확대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다.

토크빌은 정치적 자유 확대를 가능하게 해 준 것이 뉴잉글랜드 지역의 생활근거지인 ‘타운(town)’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 주민들이 일상생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참여하고, 타운미팅을 통해 참여를 실천하고 있었던 것에 주목했다. 즉, 타운에서의 체험을 통해 자유민으로서 스스로 생각하고 다스리는 습성을 발전시키게 된다.

토크빌은 이러한 타운 제도를 통해 다수의 전제정치를 제어하게 되고, 주민들이 자유에 대한 취향을 고취하고, 자유를 누리는 기술을 알려준다고 했다. 즉, 타운 제도가 자유의 토대가 된다고 생각했고, 타운이 없으면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고 봤다. 한국에는 이러한 타운 자치 제도가 없다.

21세기 한국에서 과연 민주주의가 제대로 성장하고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지닌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촛불정치를 통해 대통령을 탄핵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지만, 여전히 소득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있다. 수도권에 대한 인구집중이 심화되고 있고, 세대 간 갈등이나 지역 간 갈등도 심각해지고 있다. 또 제왕적 대통령제나 제왕적 지방자치단체장의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고 있으면서, 한국의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30년이 넘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방 민주주의는 요원한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 이번 대선 공약에서도 고유권설에 입각한 민주주의를 제도·설계할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한국의 시민사회가 정권의 권력을 잡고 참여하는 패턴이 구조화되면서, 정부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시민성이 침몰하는 측면도 보인다.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하향적(top-down)으로 만들어가려는 노력으로는 민주주의의 발전이 한계에 직면할 것으로 본다. 시민사회의 자유와 평등을 기반으로 근린 지역 단위에서부터 민주주의를 체험하고 경험하면서 중앙집권성을 견제할 수 있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사명을 토크빌의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에서 찾아보아야 할 시기가 아닌가 한다.

 

김찬동 충남대 도시·자치융합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도쿄대 대학원 법학정치학연구과에서 정책 과정에서의 정관 관계와 행정책임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연구원(시정개발연구원)에서 10년간 연구위원으로서 서울시 행정과 정책을 연구했고, 현재 충남대에서 자치행정 인재들을 길러내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의 지방자치』(공저, 2022) 『주민자치정책론』(2019), 『주민자치제도의 재설계』(2017), 『주민자치의 이해』(201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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