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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일본형 아트프로젝트, 현대예술·지역활성화의 딜레마
[글로컬 오디세이] 일본형 아트프로젝트, 현대예술·지역활성화의 딜레마
  • 김효진
  • 승인 2022.04.22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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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김효진 서울대 일본연구소 조교수
2019년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전시된 김운성·김서경 작가의 「평화의 소녀상」. 당시 극우세력의 항의로 전시가 중단됐었다. 사진=연합뉴스
2019년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
당시 극우세력의 항의로 전시가 중단됐었다. 사진=연합뉴스

2019년 8월, 일본의 아이치현이 개최한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서 「평화의 소녀상」이 포함된 전시인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가 극우세력의 격렬한 항의로 인해 전시가 중단되었다. 한일관계의 경색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발생한 이 사태를 한국사회는 예술 표현의 자유가 부정되는, 우경화하는 일본 사회를 상징하는 사례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예술통제와 검열은 포퓰리즘 정치의 대두에 힘입어 21세기인 지금도 전 세계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당시 한국 예술계가 과거 정권의 ‘블랙리스트’ 사건을 상기하면서 전시 중단 조처에 항의하는 일본 예술가와 관계자들에게 연대한 것도 국경을 넘는 예술계의 위기의식과 연동되어 있다.

이와 더불어 일본의 경우, 현대예술의 정치성과 검열을 둘러싼 논쟁과 갈등을 이해할 때 ‘아트프로젝트’라는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이후, 일본에서는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현대예술을 지역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아트프로젝트’ 붐이 일어났다. 1989년 나오시마를 기점으로 최초로 개최되어 인접한 섬들도 참가하는 세계적인 예술제로 성장한 ‘세토우치 트리엔날레’, 그리고 2000년부터 지역과 예술의 조화를 테마로 지역성을 강조하면서 개최되는 ‘에치고츠마리 국제예술제’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성공에 힘입어 2000년대 이후 일본 전역에서 ‘아트프로젝트’가 지방의 중소도시, 농산어촌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실시되었고, 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 최소 90개 이상의 지역 명칭을 붙인 예술제가 매년 개최되었다.

이때 아트프로젝트는 미술관과 갤러리를 벗어나 다양한 장소에서 실시되는 활동을 가리킨다. 작품 전시뿐만 아니라 그 준비 과정과 다양한 참가자들 간의 관계를 중시하는데, 구체적으로는 예술가들이 폐교 등에서 행하는 전람회와 지역 거점 만들기, 야외 작품 전시와 공연 예술제, 사회포섭 등 커뮤니티의 과제를 추진하기 위한 활동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예술 활동을 통해 동시대의 지역사회 안에 파고들고 다양한 상황에 관여하면서 그 상황에 무엇인가의 변용을 일으키고자 시도하는 표현활동이다. 따라서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큐레이터, 예술가, 지역주민, 자원봉사자 등 다양한 주체가 협력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견 이것은 서구의 사회참여형 예술과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하는데, 쿠마쿠라 준코는 이러한 ‘일본형 아트프로젝트’의 특징으로 첫째, 정치적 메시지와 사회비평적 시점을 명확하게 한 표현이 적고, 둘째, 개별 활동에서 목적이 명확하지 않다고 정리한다. 사회참여형 예술이 사회 모순이나 갈등, 차별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데 비해, 일본형 아트프로젝트는 현대예술을 수단으로 활용하고 행정에서 예산을 지원해 과소화하는 지역사회의 활성화를 목표로 삼는다.

이로 인해 일본형 아트프로젝트는 예술적 메시지나 사회적인 미션을 명확하게 제시하기보다는 아트프로젝트 진행을 통한 지역사회와의 관계성 형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나아가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을 중시한 결과, 후지타 나오야 등의 평론가는 현대예술이 지닌 예술 고유의 아름다움이나 정치적 메시지성이 약화한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이런 아트프로젝트의 범람은 2010년대 중반부터 일본 각지에서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특히 지자체와 작품을 제작·전시하는 예술가, 그리고 이를 기획하는 큐레이터, 지역주민 간의 입장 차에서 기인하는 문제들이 지속해서 지적되었다. 나아가 ‘지역예술제의 패키지화’로 인해 특정 큐레이터와 특정 예술가만이 반복적으로 초청되어 비슷한 예술제를 만드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비판도 많다. 행정 예산에 기반해 현대예술의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이 강조됨으로써 정치적 비평성은 소멸되고 지역사회라는 소우주 안에 머무르는 예술작품만이 생산되는 경향성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제5회 아이치 트리엔날레는 ‘국제예술제 아이치’라는 이름으로
오는 7월에 새로 열린다. 사진=국제예술제 아이치

이런 관점에서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의 전시 중단에서 마지막 3일간 전시 재개에 이르는 일련의 사태는 바로 이러한 ‘일본형 아트프로젝트’의 특징과 문제점을 첨예하게 보여준 사례로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현대예술의 비평성과 행정 중심의 지역 활성화라는 실용적인 목적은 본질적으로 결코 쉽게 화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일본형 아트프로젝트’를 지역 활성화의 성공모델로만 간주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 안에 필수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갈등과 모순, 타협의 과정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일본어 명칭을 ‘국제예술제 아이치’로 변경하고 올해 7월 말부터 10월까지 제5회가 개최될 예정인 아이치 트리엔날레가 2019년 행사가 드러낸 갈등을 딛고 어떤 새로운 모색을 보여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효진 서울대 일본연구소 조교수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를, 하버드대 인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 HK조교수를 거쳤다. 오타쿠문화를 중심으로 한 현대 일본사회의 대중문화 및 젠더 정치학, 한일문화 교류와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등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BL진화론: 보이즈러브가 사회를 움직인다』(역서, 2018), 『퀴어돌로지 전복과 교란, 욕망의 놀이』(공저, 2021), 『원본없는 판타지: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화사』(공저, 202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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