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01:20 (토)
사회적 신뢰가 더 절실하다
사회적 신뢰가 더 절실하다
  • 이덕환
  • 승인 2022.04.20 08: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정론_ 이덕환 논설위원.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논설위원

대학이 몰락하고 있다. 앞으로 20년 이내에 전국 385개 대학의 절반 이상이 문을 닫고, 9만 명의 교수가 5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대학이 양적으로만 몰락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학문적 수월성이나 혁신적 교육의 전통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대학을 중심으로 산업·경제가 살아나는 지역도 찾아보기 어렵다. 대학이 사회는 물론 학생으로부터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대학의 대응이 너무 안이하고 이기적이다. 국립대를 통합하고, ‘서울대’를 더 많이 만들고, 사립대를 공영화하고, 평생교육을 확대하자는 정도가 고작이다. 정확한 진단에 따른 처방이라고 보기 어렵다. 대학의 몰락이 지역 소멸을 가속화시킨다는 지적도 공허하다. 사실은 도심에서 떨어진 곳의 값싼 건물들이 흉물로 변하고, 인근의 원룸촌과 대학가(街)가 썰렁해지는 정도가 고작이다.

대학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하나뿐이다. 교수들이 전문성·윤리성을 강화하고, 대학의 고비용·저효율 운영을 뜯어고쳐야 한다. 학문의 자유와 학자의 자율은 학문적 권위와 학자적 양심이 확인된 교수들에게만 사회가 제한적으로 인정해주는 특권이다. 학문적·기술적 성과에 대한 사회적 책무도 외면할 수 없다.

교수라면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주제를 제멋대로 연구할 수 있도록 사회가 지원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특히 정부의 지원에는 반드시 책임과 간섭이 따르기 마련이다. 연구윤리를 외면하고, 학생들에게 고약한 갑질이나 일삼는 불량 교수들의 일탈과 방종을 대학의 자유·자율로 착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전공 분야의 견고한 칸막이도 제거해야 한다. 물론 학문 분야에 따른 특성과 개성은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 전공에 따라 문제를 파악하고, 연구·탐구하고, 성과를 활용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전공만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는 착각은 용납되지 않는다. 특히 학생들의 교육에서는 더욱 그렇다.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현대 과학과 기술에 대한 왜곡된 인식도 바로잡아야 한다. 현대 과학적 세계관·생명관을 부정하고, 인류의 생존과 발전에 필요한 기술을 거부하는 인문학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과학적 세계관이 변화하면 사물에 대한 인문학적 의미와 가치도 달라져야만 한다. 인문학적 고전(古典)과 정전(正典)은 끊임없이 재해석되어야만 그 생명력이 유지되는 법이다.

학생들에 대한 인식도 확실하게 바꿔야 한다. 학생이 교수를 위해 대학을 다닌다는 생각은 확실하게 버려야 한다. 학생은 모두 학문의 전통을 이어가는 학문후속세대가 되어야만 할 이유도 없다.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연구 환경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학생을 저임금의 ‘근로자’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학과의 행정업무나 연구과제의 행정관리는 학생이 아니라 교직원에게 맡기는 것이 원칙이다. 대학이 스스로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춰야 한다.

물론 정부의 획일적인 지원·간섭·평가는 적극적으로 거부해야 한다. 대학을 오염시키고 있는 교수직의 비정규직화도 서둘러 정리해야 한다. 사회와 학생이 신뢰하지 않고, 대학의 사회적 책무를 소홀히 하는 대학은 영원히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이덕환 논설위원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