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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정말 지옥일까?”…사르트르 대 메를로퐁티
“타인은 정말 지옥일까?”…사르트르 대 메를로퐁티
  • 김재호
  • 승인 2022.04.1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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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사르트르 vs 메를로퐁티』 강미라 지음 | 세창출판사 | 220쪽

사르트르(1905∼1980)와 메를로퐁티(1908∼1961)는 철학사에 한 획을 그은 철학자이다. 이 둘은 프랑스 파리고등사범학교 선후배 사이로 후설의 현상학을 공부했다. 특히 각자 철학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하며 학술 활동을 이어간다. 1941년에는 ‘사회주의와 자유’라는 단체를 만들어 비밀저항운동을 같이하기도 했다.

 

이 책 『사르트르 vs 메를로퐁티』을 통해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의 삶과 사상을 흥미롭게 엮은 강미라 박사는 한국외대에서 메를로퐁티를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제목은 「메를로퐁티의 ‘몸-주체’와 푸코의 ‘몸-권력’ 비교」였다. 그는 “사르트르는 존재론적 규정상 인간을 의식적 존재로 규정했고, 반면에 메를로퐁티는 인간을 신체적 존재로 규정한다”라고 적었다. 의식과 신체의 문제는 철학의 화두 중 하나다.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1945년에는 문학과 사회 저항 메시지를 담은 <현대>를 공동 창간했다. 하지만 공산당을 지지했던 사르트르의 행보에 메를로퐁티가 반대하며 결별하기에 이른다. 학술전문출판사인 세창출판사의 ‘프레너미(Friend+Enemy)’ 시리즈에 걸맞은 두 철학자가바로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다. 사르트르가 문학 작품 등을 통해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했던 반면, 메를로퐁티는 좀 더 철학자다면 면모를 보였다.  

 

타인은 지옥일까, 선의의 공동체 일원일까

사르트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타인, 그것은 곧 지옥이다’라는 문구다. 웹툰과 드라마 제목으로 인용될 정도이니, 그의 사유가 얼마큼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사르트르 vs 메를로퐁티』에서 강미란 박사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사르트르에게서 타인은 해명 불가능한 존재이며, 그와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갈등이다. 반면에 메를로퐁티는 타인과 나는 각자 신체적 존재로서 이미 항상 세계에 속한 존재이다.”(10쪽)

 

사르트르(왼쪽)와 메를로퐁티. 이 둘은 사상적 동지였는데, 나중에 결별했다. 이들은 실존주의, 현상학 등 여러 철학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사진=위키백과

타자가 철학적 문제로 제기된 건 근대가 시작된 이후부터다. 사르트르는 타인에 대해서 철저하게 탐구했다. 남이 나를 보기 전에는 나 스스로 수치심이 없다. 하지만 “타자의 시선이 향하는 것은 나의 몸”이기 때문에, 그 순간부터 나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즉자적인 존재가 대타적인 존재로 바뀌는 셈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나는 타자의 지향적 대상”이다. 부끄러움은 항상 지향적인 의식이다. 지향의 대상은 바로 나이다. 그런데 “나로서는 타자의 내면이나 주체성을 알 수 없다”라는 게 막다른 골목이다. 

“합일의 시도가 갈등의 원천이다.” 사람을 사랑할 때 우리는 종종 상대를 또 나른 나로 인식한다. 그에게서 내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에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체험하는 것은 “그의 대상이 된 나”이다. 누구나 알겠지만 “나=너”의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타자와의 사랑을 불가능한다. 이 때문에 타자와의 관계는 언제나 갈등일 수밖에 없다. 인내하고 또 인내할 뿐 타자를 이해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강미란 박사는 “사르트르의 입장에서 자아에게 타인이란 미지의 영역에 속하며, 어떤 것으로든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신체적 존재로서 인간, 서로 보는 것이 소통

그렇다면 메를로퐁티는 어떤가? 갈등보단 서로 읽히는 흩어봄에 가깝다. 사르트르가 ‘의식’을 중심으로 타인을 지옥이라고 규정하며 부정적이고 절망적으로 본 측면이 있다고 하면, 메를로퐁티는 ‘몸’을 중심으로 선의의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품었다. 메를로퐁티의 입장에선, 나와 남은 서로 주체로 살아갈 수 있다. 사르트르에게는 나와 타자의 몸은 ‘세계-한복판의-존재’로서 모순과 난처함이 공존한다. 하지만 메를로퐁티에게선 ‘세계-에의-존재’로서 신체적 존재로 존재한다. 강미란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신체적 주체는 세계라는 공동의 토대 위에서 공동신체성을 통해 서로 주체(상호주체성)로 인정할 수 있다. 메를로퐁티의 상호 주체성은 ‘공동신체성’으로 해명된다.” “메를로퐁티에게 인간 존재는 신체적 존재이며, 서로 마주보는 것은 곧 그 자체로 일종의 소통이다.” 메를로퐁티에게선 갈등도 소통의 다른 모습일 수 있다.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같은 시대를 살아간 두 철학자이지만, 현상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사상은 달라진다. 이 때문에 동지는 머나먼 적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인간에게서 희망을 품을 것인가, 아니면 절망할 것인가. 그건 삶에 대한 어떤 사유와 태도를 가지는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지금 우리는 어떤 사유·태도를 가지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사르트르 vs 메를로퐁티』는 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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