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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臥遊思想과 풍류 넘쳐
조선 臥遊思想과 풍류 넘쳐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5.11.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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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동유첩』 이풍익 지음 | 이충구 외 옮김 | 성균관대출판부 刊 | 520쪽

▲동유첩 원본 ©

 ‘동유첩’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었던 李豊翼(1804~1887)이 그의 나이 21세 때 금강산의 명승지를 두루 유람하고 지은 시문에다가, 금강산의 갖가지 명승지를 화공을 시켜 그린 실경산수화 28점을 하나의 서화첩으로 묶은 것이다.

지난 1968년 이수영 씨가 성균관대박물관에 전10권으로 기증했으나, 1992년 도난당해 현재는 9권만 전하는 이것을 성균관대출판부에서 아름다운 단행본으로 재구성했다.

조선 후기에는 금강산 가기가 하나의 열병처럼 확산되었다. 문인들의 유람에는 대개 시문짓기가 따르기 마련이라, 한문과 국문으로, 시나 시조로 읊은 금강산 관련 시문은 실로 엄청난 숫자다. 물론 대다수 문인들에게 엄청난 장관의 금강산을 그린다는 건 엄두도 못낼 일. 훗날 드러누워 그림을 회고 감상하고자 하는 바람의 실현을 위해 시문은 자신이 짓고, 그림은 직업화가인 화공으로 하여금 그리게 하여 그것을 두고두고 완상할 수 있게 서화첩을 꾸몄다. 그 대표적 예가 바로 ‘동유첩’인 셈이다.

‘동유첩’은 정부요직을 두루 역임한, 당대의 뛰어난 시인이자 문장가였던 이풍익의 작품으로 기행문학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다. 화첩에 실린 그림들 역시 1백70년이나 된 그림들로서, 구도의 완벽함과 채색의 정교함에 있어서 숙달된 기량을 보여줘 임모작이 드문 산수화라는 장르에서 주목할 만한 의의가 있다. 이풍익 나이 21세 때 이뤄진 유람이라, ‘觀天下’의 성격이 짙었던 이 서화첩은 명승경관을 통해 올바른 성정을 키우고자 한 측면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동유첩’의 글과 그림을 원판 그대로 옮기고자 노력했으며, ‘동유첩에 대하여’,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여운-이풍익의 동유첩에 실린 금강산 그림들’, ‘금강산에서 빛나는 희망을 품다’ 등의 글을 실어 문학, 미술사학 연구자들과 일반인들에게 두루 다가가게 했다.

이풍익이 금강산 ‘楡岾寺’란 절에서 하룻밤 묵으며 지은 시를 한번 읊어보자.

 

“늙은 부처 외로이 앉아 있는 곳에서 / 나그네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 부처 뼈에 스미는 낮은 종소리 / 등불 그림자에 詩情은 깊어지네. / 패엽경은 이리저리 떨어져 나갔고 / 감실 느릅나무 뿌리 다 드러났네. / 벼룩 빈대 하나 없는 편안한 잠자리 / 새벽에 일어나 고맙다고 인사했지.”(‘선당에서 자면서’ 全文)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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