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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를 고민할 때다 
학문후속세대를 고민할 때다 
  • 최재목
  • 승인 2022.04.12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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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최재목 논설위원 / 영남대 철학과 교수

“학문 후속세대의 문제는 ‘효율, 평등, 자기실현’에다 
‘공동선’ 추구의 원칙을 기초로 거점 대학 중심으로 이루어지되, 
대학 부설 연구소, 교육부, 한국연구재단 등이 협업하여 추진해 가야 할 것이다. 

그 핵심은 학문후속 신진 연구자들의 ‘생계’나 ‘고용불안’ 해소라고 본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도 명심할 대목이다.”

최재목 논설위원

인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농촌 혹은 지방 소멸이라는 말을 접하면 일단 두려운 생각부터 든다. 오랜 세월 인문학자로 살아온 경험에서 나온 불안감 때문이다. 가끔 어느 대학에서 무슨 인문 관련 학과 폐지(=폐과)라는 소멸의 비보에는 낙담하곤 한다. 학문의 부음 앞에 무기력해지는 것은 당연하리라. 

학과의 소멸은 교수, 학생은 물론 관련 학문, 나아가 학문 후속세대의 소멸을 뜻한다. 학문 생태계의 파탄은 학자들의 생계 및 고용 불안을 넘어 학문 자체의 무력화를 가져온다. ‘사라져 없어진다’는 뜻의 소멸은 자연현상마냥 들리나 사실 인위적 배후가 있다. 배후란 그 제거의 최종판단에 대한 대학 측의 이유나 배경을 말한다. 인위적 제거의 결정은 ‘학생이 모집되지 않아 유지되기 어렵다’, ‘돈이 되지 않는다’ 등의 현실적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돈이 되지 않는다고 다 줄여나가는 방식이라면, 대학부설 사회교육원처럼 고수익 인기 학과만 남기고 모두 없애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소거 방식으로 제대로 된 대학이 유지될 리 없다.

동양에서는 진리의 전수를 전통적으로 ‘계왕계래’(繼往開來)라 했다.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이어받아서 후세의 학자들에게 가르쳐 전하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은 ‘계왕성개래학’(繼往聖開來學)을 줄인 것이다. ‘옛 성현(往聖)을 위하여 끊어진 학문(絶學)을 잇는다’는 ‘위왕성계절학’(爲往聖繼學) 같은 포부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학자나 국가통치자들이 지녀야 할 중대한 사명을 보여준다. 끊임없이 학문 전통의 맥을 ‘후속(後續)’해가겠다는 소명감은 대학을 존속케 하는 근거이다. 인간 사회 발전의 지향성을 궁극적으로 ‘휴머니티’에다 두려는 안간힘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다니엘 벨은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에서 인간 사회의 발전은, 리듬을 달리하는 세 가지의 기본가치인 ‘효율, 평등, 자기실현’의 실현과정으로서 보고, 이것이 사회발전을 지배하는 중추 원칙이라 보았다. ‘효율’은 경제방면에서 산업혁명 이후 우세하게 된 관료제 조직의 발전과 경제사회의 발전을 지탱해온 가치(중추원칙)이다. ‘평등’은 정치방면에서 근대시민혁명 이후 정치적 발전을 뒷받침해온 가치이다. ‘자기실현’은 문화방면에서 현대의 문화적 상황을 지배하고 있는 가치이다.

그런데 이 세 가치는 상호 모순을 갖는다. 예를 들면 자기실현이 추구되고, 평등이 중시되면 될수록 효율이라는 가치는 점점 더 소홀하게 되어 경제적 활력이 감쇠하게 된다. 이런 점이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이라고 벨은 생각한다. 이런 문제제기는 현재 대학의 교육 변화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필자는 이 세 가지(효율, 평등, 자기실현)에다, 학문공동체 같은 ‘공동선(共同善)’ 항목을 추가하면 어떨까 한다. 

대학은 인류의 공동선을 향한 마지막 보루로서, 인간 사회의 공생을 향한 메타적 안목을 산출하고 합의하고 지켜가는 최종 기구라고 할 수 있다. 한 사건에 대하여 세 단계의 심급(審級)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3심제처럼, 진리 또한 ‘초중등, 고등, 대학’에서 실험되며 공생을 위해 공유되는 것이다.

학문 후속세대의 문제는 ‘효율, 평등, 자기실현’에다 ‘공동선’ 추구의 원칙을 기초로 거점 대학 중심으로 이루어지되, 대학 부설 연구소, 교육부, 한국연구재단 등이 협업하여 추진해 가야 할 것이다. 그 핵심은 학문후속 신진 연구자들의 ‘생계’나 ‘고용불안’ 해소라고 본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도 명심할 대목이다.

최재목 논설위원
영남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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