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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조언_‘통치론’, 어떻게 읽을 것인가
전문가 조언_‘통치론’,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정연교 경희대
  • 승인 2005.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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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의 정치적 입장 이해해야

‘정부에 관한 두개의 논고’(이하 ‘통치론’)는 현대 자유민주주의 정치철학을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통치론’을 상투적인 자유주의 체제론으로 예단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통념과 달리 ‘통치론’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어왔을 뿐만 아니라 쟁론으로부터 자유로운 해석도 없었다. 일례로 ‘통치론’은 “소유욕으로 가득 찬 개인주의(Possessive Individualism)” 예찬론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근대 최초의 시민혁명론”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심지어 ‘통치론’의 핵심논지를 입헌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칼뱅주의의 정립에서 찾는 학자도 있다.

다양한 해석 가능성은 정확한 독법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러나 ‘통치론’과 같은 텍스트를 위한 독법이 따로 존재할리 없다. 그렇다고 ‘통치론’을 읽을 때 유념해야 할 점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상식적 차원에서도 한두 가지는 거론할 수 있다. 첫째 저자의 생애와 집필 의도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둘째 집필 당시의 사회, 경제적 여건과 시대정신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로크의 생애와 집필 의도를 이해하는데 있어 핵심은 그가 정치인이었고, ‘통치론’은 일종의 정치홍보물이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로크는 영국 노동당의 창시자인 쉐프츠베리 백작의 대변인 겸 논객으로 오랫동안 활약했다. 그 결과 6년 동안이나 네덜란드에서 도피생활을 해야 했다. 대신 명예혁명 후에는 15년간 정부의 요직에서 근무할 수 있는 특권도 누렸다. 예나 지금이나, 특정한 정파에 속한 논객의 의무는 자기편을 옹호하고 상대를 비난하는 것이다. 비록 ‘통치론’이 ‘학술서적’의 모양을 취하고 있다지만 이 점에 있어 예외라고 볼 수 없다.

‘통치론’은 부제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두 개의 개별적인 논고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논고는 전적으로 로버트 필머의 왕권신수설을 비판하기 위해 씌어졌다. 반면 두 번째 논고는 입헌민주주의의 정당성을 사회계약론적 논의 틀에 따라 부각시키고 있다. 분명 첫 번째 논거와 두 번째 논거는 내용에 있어서는 물론이고 스타일에 있어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성격의 두 개의 논고를 한권의 책으로 묶은 이유는 무엇일까.

논객 로크의 의무 중 하나는 당연히 그가 속했던 의회파(the Whig)의 당론인 입헌민주주의 체제를 품위 있게 변호하는 것이었다. ‘통치론’의 두 번째 논거가 비교적 학술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이러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집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효과적인 홍보는 때로 네거티브 전략을 요구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치사한 비판도 불사해야 한다. 첫 번째 논고가 사소한 비판으로 점철된 것은 이러한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 사람들은 흔히 로크의 최대 라이벌이 홉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로크 당대에 그와 명운을 걸고 쟁투를 벌였던 사람들은 홉스와 같은 정치적 절대주의자가 아니라 필머와 같은 왕당파(the Tory)였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통치론’을 읽을 때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든 또 다른 유형의 정보는 당대의 사회, 정치적 상황과 시대정신에 관한 것이다. 로크는 가히 ‘변혁의 시대’라 부를 수 있는 시기에 살았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 전역이 1백50년이 넘도록 내란과 정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정통”이라 부를 수 있는 정치체제의 기본 틀조차 확립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 불안에도 불구하고 “계몽의 시대”는 이미 도래해 있었다. 뉴턴과 보일은 과학의 발전을 앞당겼고, 홉스와 그로티우스는 “이성의 정치”를 견인했다. 한계도 분명했다. 누구도 종교적 편견과 이성 중심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로크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남다른 면이 있었다.

‘통치론’을 읽다 보면, 이상과 현실, 기본과 부수, 논리와 수사가 뒤섞여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계약’이나 ‘동의’와 같은 사회계약론적 개념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듯 하다가도 어느새 ‘천부인권’과 같은 자연법 논의를 접하게 된다. 또 삼권분립과 같이 정부의 기본체제에 대한 논의가 가부장의 상속권과 같이 어딘지 지엽적으로 느껴지는 논의와 함께 진행됨을 보게 된다.

좋게 보면 ‘통치론’에서 느낄 수 있는 양면성은 계몽에 대한 로크의 열망이 현실에 대한 그의 숙려와 만나 이루어낸 ‘협치’의 산물이다. ‘통치론’은 개정을 거듭해 로크의 사후 4판까지 출간되었다. 그 중 로크가 자신의 저작으로 인정한 판본은 4판이 유일했다. 그만큼 로크에게 있어 ‘통치론’은 남다른 의미를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통치론’이 그가 목숨을 걸고 이루어내고자 했던 사회개혁 프로그램의 청사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통치론’을 이해하는 열쇠는 로크와 그가 봉착했던 문제를 역사적 맥락을 감안해 파악하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왕과 시민, 신교와 구교, 제국과 식민지, 과학과 종교가 충돌했던 문명사적 전환기의 한가운데에서 혁신을 위해 고뇌하고 번민했던 지식인의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통치론’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연교 / 경희대·정치철학

필자는 로체스터대에서 ‘존 로크의 계약론적 정치적 책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철학적 인간학’ 등의 저서와 ‘사회생물학의 도덕철학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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