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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통섭·고종황제’ 논쟁 촉발…‘최고의 번역을 찾아서’ 호평
‘민족주의·통섭·고종황제’ 논쟁 촉발…‘최고의 번역을 찾아서’ 호평
  • 김재호
  • 승인 2022.04.15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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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 30년과 함께 한 문제작·주요 기획

역사 비판으로 한국사회 근대화 자취를 객관적 조명
자생 이론·시대의 미 분석해 현실 진단과 대안 제시

<교수신문>에서 30년 동안 펼쳐진 논쟁들은 책으로 이어졌다. 이들 논쟁 속에서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임지현 지음, 소나무, 1999), 『고종황제 역사 청문회』(교수신문 지음, 푸른역사, 2005), 『통섭: 지식의 대통합』(에드워드 윌슨 지음, 최재천·장대익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5),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김영사, 2010) 등이 문제작으로 떠올랐다. 

 

<교수신문>은 지난 30년 동안 고종황제와 대한제국, 우리 이론, 우리시대의 미, 고전 번역비평 등 주요한 기획으로 학술담론을 이끌었다. 이 기획들은 책으로 출간됐다. 

요샌 지나친 민족주의를 ‘국뽕’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건설적인 비판이나 소통이 부족한 민족주의는 폐쇄적이다. 임지현 서강대 교수(사학과)가 11편의 논문을 묶어 책으로 펴낸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는 그동안 한국사회가 놓치고 있던 질문을 과감히 던진다. ‘우리에게 민족이란 무엇인가’, ‘민족주의는 초역사적인 자연적 실재로 비판을 받을 수 없나’, ‘한국사회 진보는 민족주의를 통해 어떻게 보수화 하는가’ 등. 이 책의 부제는 ‘신화와 허무의 민족주의 담론을 넘어서’이다. 우리나라에서 민족주의는 비판을 절대할 수 없는 종교와 같은 위상에 놓였다. 하지만 한국 현대사와 세계사에서 민족주의는 파시즘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임 교수의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는 마르크스주의와 민족주의를 살피면서 동유럽 현실 사회주의의 체제 변혁을 분석했다.  

 

잊힌 황제와 사라진 제국 평가

『고종황제 역사 청문회』는 우리 기억 속에서 잊힌 황제와 사라진 제국을 어떻게 평가할지 논의한다. 이에 따라 한국 근대와 일제 시기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고종에 대한 평가는 역사적으로 민감하고 중요하다. 고종과 대한제국 관련 논쟁에는 역사학·경제학·정치학 전공 등 11명의 학자들이 참여해 주목을 받았다. 문호를 개방하고 세계 자본주의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과연 고종은 개혁군주로서 근대화를 이끌 수 있었을까? 이 책은 고종시대 관련 식민사관 극복, 대한제국 근대화 성과·재정 정책,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 개명군주와 민국이념, 일제의 수탈과 대한제국 실상 등을 다뤘다. 이에 대한 논쟁들은 한국이 향후 어디로 나아갔는지를 가늠할 중요한 좌표로 작용했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와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와 함께 번역한 『통섭: 지식의 대통합』은 학문의 융합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화제작이다. 통섭(統攝)은 성리학과 불교에서 나온 말로 “큰 줄기를 잡다”라는 의미로 정의된다. 최 교수는 통섭이 그 자체로 학문이 아니라 학문간 융합을 뜻하는 방법론에 가깝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1926∼2021) 미국 하버드대 명예교수가 사회생물학적 환원주의를 주창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통섭이 자칫 유전자결정론·우생학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우려다. 왜냐하면 통섭은 사회생물학을 통해 윤리·도덕도 설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환원주의가 아닌 과학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라며 좋은 환원주의와 나쁜 환원주의를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교수신문> 「낡은 논쟁 대신 새로운 앎이 필요하다」, 2008년 11월 24일자) 특히 전 교수는 여러 세대에 두루걸쳐서 발생하는 진화를 보는 관점으로서 유전자 선택론과 한 세대에 개체가 발달하는 과정을 살피는 관점으로서의 유전자 결정론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곱 밝혔다.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정치철학)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한국사회에서 공정이라는 화두를 던진 문제작이다. 하버드대에서 최초로 온라인으로 무료 공개한 그의 강의는 전 세계에서 번역되며 관심을 모았다. 이 책은 공리주의, 의무주의, 자유주의, 칸트, 아리스토텔레스 등을 정의와 연결시켜 각종 딜레마를 철학적으로 분석했다. 샌델 교수는 철학을 대중화 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가 제시하는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법은 첫째 행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공리주의, 둘째 자유·권리를 소중히 여기는 자유주의, 미덕과 좋은 삶을 위해 사회구성원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주의다. 각각은 물론 장단점이 있다. 그래서 샌델은 철도 기관사의 선택에 따른 죽음 문제, 동성간의 결혼 문제 등으로 공리주의·자유주의·공동체주의를 쉽게 설명했다. 

 

13개 대학의 유산 발굴해 평가

또한 <교수신문>은 「새로운 밀레니엄을 위하여」(1998∼1999), 「우리 이론을 재검토한다」(2001∼2002), 「우리시대의 미를 논한다」(2003), 「최고의 번역을 찾아서」(2005∼2007), 「대학의 유산, 한국의 미래다」(2010∼2011), 「근현대 한국을 만든 40곳」(2012∼2014), 「과학기술 사각지대를 비추다」(2021), 「인문사회 오늘을 말하다」(2021), 「선도국가란 무엇인가」(2022) 등 굵직한 학술기획으로 주목을 받았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위하여」는 『굿모닝 밀레니엄』(민음사, 1999)로 출간됐다. 21세기를 앞두고 인류 역사를 바꾼 22개의 사건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교수 총 72명이 설문에 참여해 22개 사건을 추렸고 44명이 집필했다. 그 사건들은 예수의 탄생,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다윈이 남긴 유산, 사회주의의 몰락, 리우 환경 선언 등이 있다. 김성재 한신대 교수(기독교교육학과)는 「낮은 땅에서 구하는 인간의 지혜와 사랑」이라는 글에서 “예수 운동에서의 신의 지혜는 인간을 초월한 추상적 진리가 아니라 천한 인간에게서 구하는 지혜”라며 “인류가 이 신의 지혜를 구할 때만이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를 사랑과 희망으로 살게 될 것”이라고 적었다. 

「우리시대의 미를 논한다」는 영화·미술·사진 등에 나타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그 주제는 극한성, 식물성, 해체성, 일상성, 자생성, 해학성, 퓨전, 대화성, 여성성, 순간성이었다. 이 기획은 같은 제목으로 성균관대출판부에서 2006년 출간됐다. 윤범모 경원대 미술대학 교수(미술평론가)는 「한국 현대미술과 자생성 문제」라는 글을 통해 “한국미술에서 자생성 혹은 정체성을 언급하려면 개인적 취향을 떠나 1980년대의 민중미술을 범본으로 삼아 검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민중미술을 주목하는 이유는 시대정신 혹은 민족의식을 소중한 가치로 삼아 대중과 함께 호흡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이론을 재검토한다」는 비참한 학문의 식민지 시대를 종지부 찍으려는 야심찬 기획이었다. 근대학문 100년 동안 20개 이론을 골라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그 결과물은 『오늘의 우리 이론 어디로 가는가』(생각의나무, 2003)로 출간됐다. 20개 이론에는 경제사학(김용섭), 내재적 접근(송두율), 동양학 논쟁(김용옥), 민족경제론(박현채), 민족문학론(백낙청), 민중신학(안병무), 분단사학(강만길), 생명사상(김지하), 심미적 이성(김우창), 온생명(장회익), 자생풍수(최창조), 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 탈식민주의 글쓰기(조한혜정·김영민) 등이 포함됐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과)는 「최장집의 ‘한국민주주의론’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조숙한 민주주의, 민주적 시장경제론, 보수적 민주화 등에 대한 최 교수의 분석과 대안은 현실적합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풍부한 정책적 함의를 지닌다”라고 밝혔다. 

 

고전 번역비평으로 현대적 의의 진단

「최고의 번역을 찾아서」는 공자의 『논어』부터 노자의 『도덕경』,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플라톤의 『국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까지 총 47권을 다뤘다. 이 기획은 고전 번역비평에서 고전이 지니는 가치와 현대적 의의를 설명하며 고전 읽는 방법에 대해 조언했다. 정원규 서울대 교수(사회교육과)는 “밀이 『자유론』에서 적시한 사상의 자유와 다수결 원칙의 충돌은 모든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미 고전적이며 여전히 현대적인 문제”라고 설명했다.

「대학의 유산, 한국의 미래다」는 13개의 대학의 유산을 선정했다. 전국 4년제 종합대학 중 44대가 79점의 ‘유산’을 제출했다. 각 대학이 출품한 유산들 중에서 개인의 성과보다는 대학 내부에서의 공동의 유산에 초점을 맞췄다. 유산은 세계적·국가적·지역적 기준으로 평점을 매겼다. 그 결과 국역 여지도서(전주대), 남명학고문헌시스템(경상대), 도서문화연구원(목포대), 생명과학의 메카(건국대), 서울학연구소(서울시립대), 아세아문제연구소(고려대), 여성교육 역사와 시스템(이화여대), 특수교육(대구대), 포항방사광가속기(포스텍), 한국음식연구원(숙명여대), 한한대사전(단국대), LG연암문고(명지대), 20여 종의 특수 외국어 사전(한국외국어대)가 우리나라 대학의 유산으로 선정된 바 있다. 

「근현대 한국을 만든 40곳」은 한국 근현대사를 개항부터 한국병합,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해방 후부터 1960년대,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네 시기로 구분해 주요 역사적 현장을 소개했다.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의인문학연구단과 함께 진행한 이 기획은 삶의 터전인 로컬의 문제를 인문학적으로 성찰했다. 40곳은 권력성의 토폴로지(위상)로 점철된 공간 ‘경복궁’, 오욕의 역사가 아로새겨진 공간 ‘장충단공원’, 민족 해방을 위한 번제의 제단 ‘옛 서대문형무소’, 동백꽃처럼 타오르다 슬프게 시든 도시 ‘목포항’, 회고적 다크투어의 대상이 된 추방의 땅 ‘소록도’ 등이다. 

이외에도 <교수신문> 주요기획들은 『한국의 지성 100년』(민음사, 2001), 재미 정치학자 김일평 교수의 칼럼집 『세기의 갈림길에서』(교수신문, 2001), 『생명에 관한 아홉가지 에세이』(민음사, 2002), 『한국의 미를 다시 읽는다』(돌베개, 2005), 『지식의 이중주: 인문학자와 과학자의 13가지 키워드 논전논박』(해나무, 2009), 『한국 고대문화 원형의 상징과 해석』(지식산업사, 2015),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글항아리, 2016) 등으로 출간됐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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