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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변하거나 사라지거나
대학, 변하거나 사라지거나
  • 송지준
  • 승인 2022.04.14 0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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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_대전환 시대의 대학 ②_송지준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교수

디지털·공유로 변화 가속하는데 차별화는 부재
대학은 연구·기술·교육 중 한 분야를 집중 육성

“대학의 기능은 교육, 지식창출, 지식보고 세 가지다.
대학은 연구·기술·교육 중심 대학으로 개편될 필요가 있다.
국립대는 인문사회를 포함한 과학기술 기초 연구중심대학으로 전환해야 한다.
사립대는 기술중심대학으로 전환하도록 재정적 자율성 등의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14세기 흑사병(페스트)은 소작농의 급격한 감소로 인한 봉건사회를 무너트리고 근대사회로 이끄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금 3년째 겪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은 디지털 시대를 앞당기고 4차 산업혁명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 자명하다. 우리나라의 대학은 이러한 새로운 대전환 시대와 더불어 학령인구의 절대적인 감소라는 또 다른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디지털과 지식공유로 시대는 급격히 변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은 여전히 오래된 전통적 방식의 수업을 고집하고 있다. 대학이 변하지 않으면 결국 사라지게 될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대학을 의미하는 ‘University’는 라틴어의 ‘universitas magistrorum et scholarium’에서 나온 말로 ‘Community of teachers and scholars’를 의미한다. 이것은 대학의 기능을 세 가지로 제시한다. 교육자에 의한 교육기능, 학자에 의한 연구 및 지식창출의 기능, 이러한 교육과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보고의 기능. 대학은 태생적으로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회, 문화, 경제 모든 분야에 밑바탕이 되는 인력, 기술, 지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모든 나라에서 막대한 공공 자금을 들여서 대학을 유지하고 있다.

 

대학은 교육·지식창출·지식보고 역할

대학에는 교육, 지식창출 그리고 지식보고의 역할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을 생각하면 교육기능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지금 우리가 수행하는 대학 교육 방식은 2천여 년이 넘은 형태의 교육방식으로, 독점적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학자가 지식을 필요로 하는 다수의 학생에게 지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교육 방식은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지식의 디지털화 및 공유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지면서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이미 기존의 교육방식은 종말을 서서히 맞이하고 있었고,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러한 기존 교육방식의 종말을 가속화 했다.

이와 더불어 우리나라는 학령인구의 절대적인 감소를 맞이하고 있어 교육 기능만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대학은 그 교육 대상이 없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에는 약 400여 개의 대학이 있고, 이중 250여 개가 종합대학이고 150여 개가 전문대이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대학이 학부 중심의 교육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대학별 차별화가 거의 없다. 지식의 디지털화 및 공유화로 인한 기존 교육방식의 형태가 없어지고, 대학 교육의 대상이 되는 ‘학생’이 없어지는 상황에서 대학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변화를 하지 않으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대학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대학이 가진 고유의 세 가지 기능(교육, 지식 창출, 지식의 보고)을 회복해야 하고, 연구 중심 대학과, 기술 중심 대학, 교육 중심 대학으로 개편돼야 한다. 물론 몇몇 대학에서는 연구, 기술, 교육의 모든 분야를 포함하는 대학도 있어야 하겠지만, 대부분의 대학은 한 가지를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립대, 연구중심대학으로 전환

먼저, 국립대를 중심으로 연구중심대학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하겠다. 국립대는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이 된다는 점에서, 민간 부분이 담당할 수 없는 즉 경제적 가치 창출이 직접적으로 되지 않은 분야에 대한 연구와 지식의 창출에 초점을 맞춘 대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비단 이공계의 기초 연구분야 뿐 아니라, 거의 몰락 수준이 된 인문사회분야의 연구도 국립대학을 중심으로 수행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국립대를 논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논란은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대학의 서열화와 지방 국립대의 몰락이다. 그래서 혹자는 서울대 폐지론 또는 국립대의 통합 등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왜 지방대가 몰락하고 있으며, 왜 서울대가 타 지방대에 비해 여러 면에서 월등한 우위를 가지고 있을까? 그 원인은 단지 지방 학령인구의 감소에 있다기보다는, 서울대가 받는 압도적 재정 지원이라고 하겠다.

서울대의 재정 규모는 연구비를 포함해서 연간 약 1.5조 원이고, 학생 1인당 교육비는 5천만 원이다. 이에 비하여, 국립대학인 경북대와 전북대의 연구비가 포함된 전체 재정 규모는 서울대에 크게 못 미치고, 학생 1인당 교육비는 1.7천만 원 수준으로 서울대의 3분의 1 정도에 미친다. 현재의 지원체계로는 연구중심의 우수한 국립대로서의 성장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전국의 거점 국립대를 서울대 수준의 지원을 통한 연구중심대학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립대, 기술중심대학으로 전환

두 번째는, 사립대학을 중심으로 한 기술중심대학의 육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네덜란드의 경우 대학은 3년제인 연구중심의 WO(wetenschappelijk onderwijs: scientific education) 대학과, 4년제인 기술 중심의 HBO(Hoger beroepsonderwijs: higher professional education) 대학으로 나뉜다. 3년제인 WO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종합대학이고, 4년제인 HBO

는 실질적 기술을 가르치는 대학이다. 하지만, WO 대학이 HBO 대학보다 더 좋은 대학으로 분류되거나 하지는 않고, WO 대학의 역할과 HBO 대학의 역할이 다르다. WO 대학에서는 원리와 기초중심의 연구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고, HBO 대학에서는 실질적인 기술을 가르치는 기술교육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계 관련 HBO대학을 입학하면 졸업까지 엔진을 직접 설계하고 만드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되는데, 이론 교육과 함께 이러한 실질적인 프로젝트 기반 교육을 통해, 졸업 후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술 및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한다. 네덜란드 의료기기 회사인 필립스, 반도체 생산 장비를 만드는 ASML 등 세계의 첨단 기술을 선도하는 회사들은 이러한 특화된 기술교육과 연구중심대학의 결과물이라 하겠다.

 

사립대는 재정적 자율성 획득 필요

사립대는 등록금 인상 및 모든 것에 대해 정부의 눈치를 봐야하는 상태로 자율성이 거의 없다. 현재 200여 개의 사립대에게 기술중심대학으로의 전환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위한 재정적 지원 방안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물론 몇몇의 거대 사립대들은 서울대와 거점 국립대와 같은 연구중심대학으로의 전환도 고려해야할 것이다. 기술중심대학으로의 혁신적 변혁을 실패한 대학들은 과감하게 정리를 해나가는 방향으로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국내의 국립대는 국가 보조금이 전체 재정 수입의 약 54%, 사립대는 등록금이 약 66%와 5% 미만의 국고 보조금이 대학 재정수입의 주된 요인이다. 따라서, 사립대에게 국가 보조금을 추가로 지급하거나, 다른 재정 방법으로 자율성을 획득하지 못한다면, 현재의 구조에서 기술 대학으로서의 혁신적 전환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로, 미국의 사립대 재정구조는 33%의 등록금, 15%의 정부보조금, 28% 기부 및 투자수익으로 이루어져 있다. 학령인구의 절대적 감소를 고려한다면, 단지 등록금 인상으로 인한 재정마련은 한시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학령인구의 감소는 대학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학령인구의 감소는 장기적으로 초중고등학교 수의 감소는 자연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초중고등학교의 위기라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현행 교육교부금법은 내국세의 20%정도를 교육교부금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어, 학령인구가 3분의 1로 줄어들 동안 초중고 학령인구에 투입되는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은 5배 증가해, 연평균 5조 원의 불용예산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불용예산을 각 지방의 거점국립대의 연구중심 대학으로의 전환, 지방 사립대의 기술 중심의 대학으로의 전환에 사용한다면, 대학의 혁신적 변혁을 가져올 것이다. 

‘변하거나 사라지거나(Change or Die)’는 지질학자인 John Hodgdon Bradley의 저서 『생존의 패턴들(Patterns of Survival)』(1939)에서 처음 사용됐다. 이것은 진화적인 관점에서 환경에 따라 그 개체가 변화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문명의 대전환에 버금가는 대변혁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문화적으로는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환경적으로는 인구의 절대적인 감소 속에서 100여 년 동안 변화하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대학은 ‘변하거나 사라지거나’의 상황에 처해있다. 우리나라 대학은 고통스럽지만 발전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400여 개 대학의 많은 수는 스스로 죽어가는 것을 곧 목도하게 될 것이다. 

 

 

 

송지준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교수

서울대 생명과학부에서 학부를 마치고, 미국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에서 구조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의대에서 연구원을 역임했다. 현재 생화학, 후성유전학, 분자생물학, 구조생물학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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