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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하고 싶은 말만…이해로 묶인 관계는 ‘쪽방’이 됐다”
“각자 하고 싶은 말만…이해로 묶인 관계는 ‘쪽방’이 됐다”
  • 강일구
  • 승인 2022.04.11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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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신진연구자에게 듣는다① 지금, 무엇이 문제인가

<교수신문>은 창간 30주년 특집으로 30대 전후 신진연구자들이 말하는 현실 문제의식과 관심사, 연구환경에 대한 전망을 가감 없이 청취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들은 인문·사회과학과 과학기술의 융합 같은 학제 간 연구 활성화를 강조하는 변화 속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묻기도 했으며, 페미니즘 리부트에 따라 달라진 연구 분위기, 이전 세대와는 달라진 젊은 연구자들의 학문적 관심사와 연구 방법으로 좌담회의 입을 뗐다. 

각자의 분야에서 다른 연구 경험을 하면서도 후속세대로서 대학원·학계에 대한 비판이나 개선사항에 대해서는 한목소리가 나왔다. 한국연구재단 지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열악한 생계와 파편화된 학계를 비판했다. 교수 자신의 관심에만 맞춰진 수업이나 학생을 방치하다시피 하는 대학원 교육에 대해서는 모두 쓴소리를 냈다.

이번 좌담에는 강수영(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사과정), 김보경(서울대 국문학과 박사과정), 유현미(서울대 사회학과 박사졸업), 이송희(고려대 한국언어문화학술확산연구소 연구교수), 이우창(서울대 영문학과 박사과정), 전준하(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사졸업), 조승희(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현수진(성균관대 사학과 박사과정)씨가 참여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학문후속세대를 길러내는 대표적인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거나 했던 사람들이다.

좌담은 지난 3월 20일 줌을 통해 이뤄졌으며 <교수신문>은 두 차례에 걸쳐 이들의 이야기를 싣는다.

<교수신문>은 창간 30주년 특집으로 30대 전후 신진연구자들이 말하는 현실 문제의식과 관심사, 연구환경에 대한 전망을 가감 없이 청취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좌담은 지난 3월 20일 줌을 통해 이뤄졌으며 <교수신문>은 두 차례에 걸쳐 이들의 이야기를 싣는다. 사진=ZOOM캡처

페미니즘 연구 재생산 원활해 보이지 않아
50대 남성 교수와의 관심과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아

논문 투고 물으니, 연회비·심사비·게재료 등등 내라고
“여기는 원래 그런 곳” 답 돌아와…문제의식 공유해야

BK사업·학술연구교수(B형) 등 받아도 알르바이트 전전
박사 수료 후 임용까지 10년 넘게 생계 해결 방법 없어

교수들, 대학 내의 위계나 차별문제 대응에 무능하다
기업도 인력관리 이렇게 안 해…‘대학의 기업화’ 비판 자격 있나

 

△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강수영: 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사과정에 있으며 서울시 빅데이터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다. 관심사는 시공간 데이터와 지역분석, 도시정책이다. 지리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5년 동안 일하다가 올해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김보경: 서울대 국문학과 박사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논문 구상 중이다. 1980~1990년대 한국 문화 운동과 사회운동의 변화를 공부하고 있으며 동물윤리와 에코페미니즘에도 관심이 있다. 지난해에는 대학원생 자치회를 만들어 보려고 기획도 했다. 

유현미: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올해 2월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학과에서 강의를 하나 하고 있고 몇 년간 대학원생 인권이라든지 갑질이나 성희롱 이슈에 대응하면서 연구 주제를 발전시켜 나갔다.

이송희: 고려대 한국언어문화학술확산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일하고 있다. 박사과정 즈음에 학교에서 성폭력 사건이 폭로되었고 사건에 대응하며 대학원생 노조 활동을 했다.

이우창: 서울대 영문과에서 18세기 여성의 도덕 담론과 근대소설에 관해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총학생회에서 6년 동안 고등교육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대학원생 인권을 포함한 연구환경, 교육환경 개선에 관심이 있다.

전준하: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서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과정 공부를 1학기 하다가 자퇴했다. 석사 때는 대학이나 학술정책에 대해 연구했고 대학원생 보호를 위한 제도에 관해서 연구했다. 회사에서는 정책연구를 하고 있다.

조승희: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다. 지금은 제주도의 에너지 정책에 대해 연구 중이다. 석사 1학년부터 박사 1학년까지 대학원 총학생회에서 정책 관련된 일을 했고, 일을 하며 대학원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현수진: 성균관대 사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연구 관심사는 고려 시대 지성사다. 사학과 대학원 학생회장을 하며 회칙 및 신입생 관련 정책을 만들었고, 신진 역사 연구자 모임인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에서 역사 대중화 활동을 하고 있다.

 

△ 연구자로서 각 분야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강수영: 석사학위 논문으로 아시아 항공 물동량 분석했다. 이때 교통지리학과 물리학을 끌어왔는데, 교통지리학으로 왜 이 연구가 필요한지에 대한 맥락을 잡고 방법론은 물리학에서 발전된 모델을 사용했다. 제 생각에는 사회과학 분야에서 이런 형태의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영미권에서는 ‘computational social science’라는 용어가 쓰이는 것으로 안다.

이렇게 데이터 분석과 사회과학을 결합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있다. 최근에 사회과학 연구와 컴퓨터과학 연구의 접근 방식이 어떻게 다른가를 논의할 기회가 있었다.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연구 질문의 의미와 맥락이 매우 중요하다. “왜 우리는 이러한 연구를 하는가”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져야 한다. 반면 컴퓨터과학에서는 하나의 데이터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거나, 최신 방법론의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가 많다. 사회과학에서 컴퓨터과학의 모델을 들여온다고 하면, 단순히 방법론을 사용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 더해져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그래서 아직은 “새로운 모델 한 번 돌려봤어”, “좋은 데이터 가져와서 패턴 한 번 봤어”에 그치는 연구가 정말 많은 것 같다.

김보경: 대학원에 들어가게 된 것은 2017년도였다. 그 시기 전후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학원 내에서도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결과물을 내려는 사람들이 생겼다.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몇 년 전만 해도 여성 문학이나 페미니즘 연구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몇 년의 시차를 두고 큰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학계의 분위기 또한 변한 것 같다. 2000년대 문학평론을 하던 선생님과 메일을 교환하는 비평 작업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선생님은 기원이나 계보를 설정하는 문학사 연구가 젊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문학사에 대한 문제의식이 너희한테 있냐”라고 물으셨다. 선생님께서 어떤 말을 하고 싶으신지는 공감하지만, 우리 세대는 이런저런 전회를 경험하지 않은 세대다. 문학 연구를 할 때 텍스트 연구, 잡지 매체, 독자 연구 등 자원을 모두 섭취하면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 세대 선생님들과 문제의식에 공감이 안 돼 충돌하는 부분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유현미: 사회학과 안에서도 ‘국’자 들어가는 학과와 비슷하게 이론이나 사회사를 지향하는 베이스가 있다. 그런데 사회사도 인적 재생산이 잘 안되는 것 같다. 최근 젊은 연구자들이 여기에 관심이 없다. 이전 세대들과 단절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2030 연구자들과 학회의 주류가 돼 있는 50대 남성 교수들의 관심이 매끄럽게 연결되고 있지 않다. 한편으로 학계 안에서 인적구조가 크게 바뀌고 있다. 흔히 말하는 정년으로 퇴임하는 교수들이 많고, 새로운 신임 박사들이 많이 생기고, 인문·사회학 같은 경우에는 대학원생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 석사는 여성이 더 많다. 박사는 여성이 40% 정도 된다. 페미니즘 연구 관련해서는 미래가 어려워 보인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젠더와 관련된 학제적인 전공들에서 석사로 진입하는 분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이후 박사와 박사 이후까지 안정적으로 안착한 것 같지는 않다. 석사 정도까지 하거나 박사 수료까지 하고 박사를 따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공식적이고 축적된 지식으로서 아직 제도권에 안착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송희: 고전문학·한문학계에서도 2000년대 이후로 내재적 발전론이 비판을 받으면서 새로운 이론이나 방법론을 찾으려는 시도가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파편화되어 보이는 주제들이 많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논쟁적인 주제에 도전하기보다 개별 텍스트나 작가를 중심으로 연구하는 젊은 세대 연구자들을 보고 50대 후반-60대 교수들은 “요새 애들은 왜 이렇게 재미가 없냐”, “너희들은 왜 논쟁을 안하냐”고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분들이 한창 활동할 때는 학계에 거대 담론이 있었고 이를 중심으로 갑론을박이 이루어졌는데, 요즘에는 연구자들이 개별적인 관심사를 가지고 각개전투를 하는 편이라 그런 것 같다. 제가 봤을 때, 내재적 발전론 같은 담론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은 모두 인지하고 있음에도, 다른 방식의 접근법이나 관점을 훈련받은 적이 없다보니 연구의 문제 의식을 설정하거나 텍스트를 독해하는 데 있어서 이전 세대의 스타일을 그대로 답습하게 되는 경우도 상당히 있는 것 같다. 새롭고 다양한 관점과 접근법을 제시하여 학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저희 세대 연구자에게 주어진 책무가 아닌가 싶다.

현수진: 고려 시대 유학 사상사에 관심이 있다. 기존에는 유학의 다양한 조류 중에서 '성리학'을 최고 발전 단계로 상정하고, 그 전의 유학 사상사를 고려 말 성리학의 도입과 수용을 위해 달려가는 것처럼 그려내는 경향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역사학계가 내재적 발전론을 주창하게 된 시대적 배경 때문에 이런 연구 경향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저는 이런 발전의 내러티브를 극복하고 당대 사람들의 생각과 인식에 최대한 다가가고 싶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최근 연구 동향 분석에 따르면, 한국 전근대사 학계는 국제관계사와 공간의 역사에 관심을 둔다. 국제관계사는 일국사적인 관점을, 공간의 역사는 시계열적인 관점을 극복하는 시각이다. 즉, 내재적 발전론을 극복하기 위한 한국 역사학계 나름의 해답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 신진연구자들이 경험하는 연구환경의 고민이 있나. 노동·생계·젠더 문제 모두 좋다.

김보경: 대학원 들어와 논문투고 방식을 몰라, 선배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선배가 학회에 가입하고 연회비와 심사비를 내고 게재료를 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내 글 쓰는데, 돈을 왜 내야하나!”라며 놀랐다. 그런데 선배가 이야기 하길 “여기가 원래 그런 곳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원래 그런 곳이야”라고 말하는 선배가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이런 것에 있어서 대학원생들이 문제의식을 느끼고 환경 자체가 마련돼야 할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인문·사회 쪽은 개인화되고 고립돼 연구하는 풍토가 강하고, 위계 문제도 장벽으로 작용해서 해결하기 어려운 것 같다.

현수진: 나는 연구자로서 많은 혜택을 받은 편이다. 석사 과정 때는 BK 장학금을 받았고, 박사 과정 때는 한국연구재단 글로벌박사양성사업에도 선정됐다. 이후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B유형 등 이런저런 연구 과제에 지원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연구비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이런 장학금을 받기 어려운 학생들은 생활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BK 사업을 유지하려면 학생 수가 유지돼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재원은 한정돼 있어서 학생들이 모든 학기에 장학금을 받을 수 없고, 받는다 하더라도 월 100만 원 전후의 금액을 받을 수 있다. 구조적인 문제다. 그나마 저처럼 서울에 부모님 집이 있는 사람들은 괜찮은데,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은 심각하다. 이 친구들은 월세 내면 끝이다. 연구에 집중할 수가 없다. 휴·복학을 반복하며 공부와 관련 없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한 뒤 공부하느라 석사 졸업하는 데 몇 년씩 걸린 친구도 있다. 박사 수료 후부터 취직까지 10년 가까이 생계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자기가 알아서 버텨야 한다.

강수영: 연구사업의 지원체계를 만드는 작업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학교 연구소에서 서울시로 근무지를 바꾸면서 가장 기뻤던 것은 행정전문가분들이 계셔서 내게 주어진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연구비와 함께 연구환경을 지원하는 체계가 패키지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수많은 학생과 계약직 행정직원분들이 헐값에 동원되고 있다. 회계처리, 보고서 작성, 강의 수강, 연구, 경제 상황 등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슈퍼 학생들을 길러낸다는 웃지 못할 부작용도 있는데, 이것이 과연 학계의 재생산에 좋은 일인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송희: 인문·사회 학술장에서의 인구절벽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국문과를 포함해서 다수의 인문학 관련 학과들이 통폐합되기 시작한 것은 벌써 10년도 훌쩍 넘은 일이었지만, 최근에는 연구자들의 일자리인 대학 자체가 문을 닫을 거라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오늘 좌담회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이 공부하고 있는 카이스트, 서울대, 고려대는 아직 연구와 대학원 생활을 하기에 좋은 환경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서울 주요 대학 가운데에서도 인문학 전공 대학원은 입학생이 무척 드물어 이미 상당부분 고사한 상황이라고 알고 있다. 국문과만 하더라도 서울 시내 대학원생이 활발히 유입되는 학교는 몇 개 안 된다. 그나마 ‘국’자 돌림 학과들은 한국학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이 있어서 이 정도나마 버티고 있다. 그래도 근 몇 년 사이 인문학계에 학문후속세대가 끊기고 있는 위기에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정치권이나 교육부, 한국연구재단 등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문제점을 알리고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들이 있었다. ‘학술연구교수’와 같은 제도들이 그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수년간 쌓아온 노력들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들리고 있다. 정권의 향배와 관계없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인문학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김보경: 젠더 문제와 관련해 학계 혹은 대학원에서 장벽을 맞닥뜨리는 순간이 있었다. 2020년에 교육공무원법이 개정되어 서울대에도 다른 성별이 최소 25%가 되도록 하는 지침이 내려졌다. 대학이나 학과 측에 이러한 지침의 존재를 환기시키고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목소리를 내려고 했으나, 정작 돌아온 것은 학생이나 대학원생이 이런 문제에 개입하는 것이 전례 없는 일이라는 대답이었다. 그런데 전무하지도 않고, 미국 일부 대학에서 대학원생 자치기구의 목소리가 강한 곳도 있고 심지어 교수 임용에 있어 비토권을 행사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 여성 교수 비율이 낮은 문제는 특히 페미니즘 지식의 재생산을 가로막는 하나의 구조적 원인이다.

유현미: 사회학과는 교수 공개발표회 때 학생들이 의견을 내고 있다. “전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 뭐랄까. 학계 안에서 전형적으로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배제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경력의 사다리라든지, 진로에 있어서 계속 여성들이 다른 경로로 이탈하거나 포기하게 되는 것과 연결돼 있다. 국공립대 여성 교수 채용목표제가 시행된 게 2002년이다. 김대중 정부 시기에 목표를 세워서 20%, 25% 달성하자고 했는데, 20년 가까이 달성이 되지 않고 있다. 개별적인 학문 분야에서는 ‘우리는 성과로 뽑는다’, ‘능력으로 뽑는다’라는 말로 정당화를 하는데, 20년 동안 숫자로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것은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는 것이다. 학계라고 하는 곳, 인문·사회 지식을 생산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오피니언 리더가 된다. 지식생산과 사회비판 등의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한다. 그러나 대학 안에서의 위계나 차별구조에 대해서는 무능하다고 생각한다. 기업도 이렇게 하지 않는다. 이 같은 측면에서 저는 ‘대학의 기업화 논리’를 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기업도 인력관리를 이렇게 하지 않는다.

현수진: 아직 졸업 전이라 정확한 상황은 모르지만, 졸업 후 취직할 때는 여성 연구자라는 사실이 불리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여성 연구자들이 비율이 적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현직 교수의 비율을 보면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다. 여성이 연구자로서 취직하는 과정에 도달하는 것 자체가 구조적으로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좌담회 참가자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다른 연구 경험을 하면서도 후속세대로서 대학원·학계에 대한 비판이나 개선사항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를 냈다. 사진=픽사베이

한 학기 동안 교수가 관심 있는 논문으로 교과과정 구성
맥락 모른 채 유행하는 이론 하나 배우고 한 학기 끝나

지금처럼 학벌로 끊어서 출신에 따라 순위 매겨선 안 돼
좋은 연구와 교육 환경을 만들기 위해 대학원 간 경쟁해야

박사 학위 받은 이후 무엇을 설계해야 하는지 안내 없어
박사 되고 “논문 많이 써라”라는 게 유일한 가이드

학계 파편화 됐지만 공동의 이해로 묶여 위계도 재생산
전문화 흐름 거스를 수 없지만, 교류를 통해 해결해야

 

△ 대학원 교육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강수영: 대학원에서 특히 어려웠던 것은 공부의 기반이 되는 커리큘럼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교수님들이 그 학기에 관심 있는 것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았다. 학기 내내 교수님이 관심 있는 논문을 발제하는 방식으로, 무엇을 왜 배우는지에 대한 맥락 없이, 유행하는 이론을 하나 배우고 한 학기가 끝나곤 했다. 물론 관심사도 다양화되고 분야도 전문화되면서 공통 텍스트를 만드는 게 어려운 상황인 것은 맞는데, 적어도 특정 분야의 흐름을 알 수 있는 학과 커리큘럼이 만들어져야 하지 않나 싶다.

이우창: 지난 수십 년간 학술장은 전문화와 분업이 빠르게 진행됐다. 좋게 말하면 우리 학계는 과거에 비해 훨씬 많은 주제를 훨씬 깊게 다룰 수 있다. 문제는 인적·물적 측면에서든, 시간적 차원에서든 대학원이 매우 한정된 자원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비해 연구자로서 인정받기 위해 소화해야 하는 지식의 양과 전문화 정도는 압도적으로 늘어났는데, 대학원에 머물며 배울 수 있는 시간은 그대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학원이 대응해야 하는가는 쉽지 않은 문제다. 현실적으로 정답은 없고 장기적인 목표를 유지하되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대학원들 사이에서 얼마나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할 수 있느냐로 경쟁하는 환경도 좀 필요하다. 지금처럼 학벌에 따라 순위가 매겨지는 게 아니라, 좋은 연구와 교육 환경을 만들기 위해 서로가 어떤 것들을 제공하는가를 가시화하여 대학원 간의 합리적인 경쟁이 가능하게 하는 게 지금보다는 낫지 않을까.

유현미: 저도 대학원 과정에서 뭘 배웠는지에 대해서 자신감이 많이 떨어지는 경험들이 있다. 그냥 각개격파하고 되는대로 공부했던 것 같다. 지도교수 제도의 문제도 있는 것 같고 각자 자기 분야만 공부하면서 “교수님들이야말로 한 과로 묶을 수 있는 공통의 언어가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프로젝트 했던 것을 가져오거나, 최근에 관심 갖게 된 책을 읽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 방식만이 아니라 진로에 대한 교육도 교수나 학교로부터 딱히 받은 게 없는 것 같다. 박사가 됐다는 것은 독립된 전문 연구자가 된다는 것인데, 학위를 받은 이후에 무엇을 설계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용적인 안내를 받지 못했다. 가령, 강의법 같은 것도 전혀 배우지 못했다. 박사 되고 ‘논문 많이 써라’라는 말 말고는 가이드를 받은 적이 없다.

조승희: 저희 대학원에는 이공계열 공부를 하다가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을 처음 배우는 학생들이 많기에 수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이론적 트레이닝이나 방법론 습득도 수업에서 교수님들이 어떻게 잘 가르쳐 주느냐에 따라 많이 갈린다. 그래서 아주 운이 좋다면, 딱 좋은 시기에 기초적인 것을 공부해 그 다음부터 주제적인 수업을 듣는 친구도 있지만, 운이 안 좋거나 시간이 안 맞아 주제 강의부터 듣고 다음 학기에 전공필수를 듣는 경우도 있다. 논문을 쓰면서 방법론을 배우기도 한다. 이것도 역시 교수님들의 재량에 좀 의지할 수밖에 없다. 논문을 쓰면서 “인터뷰는 이렇게 해라”, “아카이브는 이렇게 봐라”라고 하면서 말이다. 
학생을 아주 가까이서 계속 도와주시는 분도 있지만, 학생의 재량에 맡기거나 알아서 하라는 교수님도 있다. 그 다음으로 교수님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 부분은 역시 생계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 나의 생활이 어떤지 등을 교수님과 잘 이야기하고, 연구 프로젝트나 수업 조교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때 학생으로서 공부를 하는 단계에서 큰 도움이 됐던 기억이 있다.

현수진: 역사학의 경우에는 기초 공부가 많이 필요하다. 분야마다 다르지만 제 전공의 경우 한문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논문을 읽으려면 영어·일본어·중국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 교육과정에서 사료 및 연구사 읽기, 논문 쓰기 연습 교육을 충분히 제공하지만, 그것을 위한 기초 공부에는 개인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는 면이 있다. 이런 부분을 학부-대학원 연계 교육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보강하면 좋을 것 같다. 또한, 저희 학과의 경우에는 다른 대학에서 오는 분들이 많다. 지금 예비대학원생 제도가 있긴 한데, 대학원 진학에 관심 있는 타대 학부생들이 학부 때부터 기초 공부를 함께 해 공부의 연속성을 보강하는 제도나 문화가 더 활성화되면 좋을 것 같다. 

 

△ 학계나 대학 내에서 폐쇄성을 마주하거나 경험한 적이 있나.

이우창: 대학원생이 대학원에서 이탈하는 사례들을 보면, 한국의 대학원은 일종의 시스템 오작동이나 비효율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에 대응하는 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기구다. 대학원생이 말도 안 되는 대우나 학대, 착취를 당해도 마치 길가의 휴지를 보고 지나가는 사람처럼 그냥 ‘대학원은 원래 그렇다’, ‘운이 없는 거다’, 같은 마음으로 지나쳐버린다. 지금 사회에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심각한 문제가 되는데, 대학원 운영수준이 사회인식평균만도 못한 건 문제가 있다.

전준하: 회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학계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다가, 학계 밖에 있을수록 점진적으로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부실학술활동 문제다. 부실학회 문제가 폭로된 것은 제가 대학을 나온 뒤 일이다. 그때 그것을 조사하고 제보도 했는데 결국 바뀌지 않았다. 자정작용이 일어나지 않은 것을 보면서 가장 큰 문제는 학술장이 파편화됐다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파편화돼 있다는 게, 각각의 공간이 분리돼 있고 또 사실상 사유화 돼 일부 교수의 인맥으로 동아리처럼 운영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학술장은 특정 주제나 담론, 사조에 대해서 모여서 토론하는 곳이어야 하는데,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하고 CV에 한 줄 쓸 것을 가져가는 공간이 됐다고 생각을 한다. 반쯤 농담으로 신자유주의를 통해 학계에 구조조정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유현미: 부실학회 활동부터 학계 관련 모든 문제에 대해 저는 박사 논문에서 쪽방화라고 개념지었다. 파편화돼 있지만, 방안에서는 공동의 이해로 묶인 공동체성이 발생하고, 교수 1인에게 전권이 위임되거나 위계적인 관계들 속에서 남성 중심적 연결이 계승되고 있다는 말이다. 쪽방화는 예전에 학문 분야의 전문화와도 연결이 돼 있었다. 물론, 학문의 전문화라는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겠지만, 전문화가 더 잘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가 속한 학문 분야의 위치를 다른 분야와의 교류를 통해 서로가 잡아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강수영: 유학 간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회뿐만 아니라 학내 미팅에서도 주요 발언자가 정해져 있다고 한다. 한국은 나이나 학생들의 경제적 종속으로 더 심하게 위계화 된 상황일거라 생각한다. 해외 학술지에 논문을 쓰거나 국제 학술대회에 참가할 때는 여기에 위계가 한층 더 씌워진다. 여기에 연구재단 지원 사업의 평가체계가 결합되면서, 연구의 의미와 독자를 진심으로 고려하기보다는 위계를 받아들이고 실적 한 줄을 추가하는 것이 연구자 개인에게 유리한 상황이 재생산되고 있다.

이송희: 제가 기억하기로 대학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을 들은지 20년은 된 것 같다. 그런데도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면, 물론 여러 가지 구조적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대학에 수십 년씩 재직하며 제자들을 길러온 교수들이 가장 먼저 책임감을 느끼셔야 할 것 같다. 그런데도 마치 자신의 책임은 전혀 없는 것마냥 안전한 자리에서 인문학의 위기 타령을 계속 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간혹 보게 되면 속으로 못마땅해하곤 했는데, 저도 이번에 박사학위를 받다보니 30년 뒤에도 인문학 위기라는 말만 계속 나오고 달라지는 게 없다면 저도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조승희: 내가 속한 대학원은 교수와 학생간 대체적으로 수평적 관계에 있다. 교수들과 함께 술을 마시기도 하고 학과에 있는 라운지는 교수만을 위한 공간도 아니다. 오히려 학생들이 라운지 소파에 앉아있고 교수들과 눈인사도 한다. 폐쇄성 같은 것은 잘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평소에 교수님들과의 교류가 많으니 논문이나 프로젝트와 관련해 교수님들과 이야기가 잘 통한다. 학생이 교수에게 ‘보고’를 하고, 교수는 학생에게 ‘지시’를 하는 게 아니라, 핑퐁을 하듯 함께 연구를 만들어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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