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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조상 이야기-생명의 기원을 찾아서』(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까치 刊)
화제의 책:『조상 이야기-생명의 기원을 찾아서』(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까치 刊)
  • 신정민 기자
  • 승인 2005.11.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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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기원을 찾아 40억년간의 순례기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정당화하고 싶다면, 이 책의 마무 데나 펼쳐보라”

1970년대 윌슨과 함께 사회생물학 논쟁을 촉발시킨 ‘이기적인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대 교수가 이번에는 생명의 기원을 찾아 40억년의 순례기를 한 권으로 엮었다.

기존의 진화사가 인간을 결말에 등장시킨 인간중심적 서술방식이었다면, 도킨스는 이와 반대로 초서의 ‘캔터베리이야기’의 형식을 차용해, 인류에서 포유류, 파충류 양서류 등의 순으로 40회에 걸친 생명체의 나이테를 한 올씩 풀어 생명 기원의 중심을 향해간다. 따라서 각장마다 등장하는 생명체는 곧 그 자체가 재현된 주연이자 조상을 잇는 과정으로 등장한다.

인간의 가계도가 비교적 잘 기록된 유럽의 왕가 중 작센코부르크 가문에서 4대에 걸친 혈우병 유전자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빅토리아의 돌연변이 유전자에서 시발했음을 보여주 듯, 한 개체의 랑데부만 읽더라도 그 개체가 어느 지점에서 분화되어 나오는지 이해가 가능하도록 탄탄하게 짜여져있다.

이런 구성방식은 각장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수만 년에서 수백만 년을 뛰어넘어 랑데부한 생명체들에 대해 최신과학의 연구결과와 가설, 그리고 이론으로 분석하고, 조상을 추적한다.

사실 생명체가 존재하는 수십억년 동안 인류가 등장하고, 수렵에서 농업과 산업으로 급박하게 대도약한 역사는 4만년으로 극히 짧은 시기에 속한다. 오늘까지 생명체의 역사를 하루로 본다면 그 시간은 단 일초에도 미치지 못한다. 모든 개체들의 공동조상을 만나러가는 출발점은 이렇듯 인류의 조상과 마주한다. 격리된 태즈메이니아인이 멸망하기까지 어떻게 현인류까지 이어질 수 있으며, 먼 조상의 유전자 기여도가 후대로 갈수록 어떻게 0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 설명한 후, 인류가 대륙의 이동을 통해 교착민과의 상호교배가 있었다는 사실을 유전자에 초점을 맞춘 템플턴의 이론을 빌려와 증명한다.

猿人을 지나 침팬지, 고릴라, 원숭이 등 포유류와 랑데부한 후 백악기(K/T)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개체로 활발했던 파충류의 세계로 넘어간다. 1억8천만년전의 오리너구리, 바늘두더지 등의 단공류, 3억만년 전의 사우롭시드, 4억만년전의 조기어류와 5억만년전의 창고기와 멍게, 그리고 개미나 메뚜기 등의 선구동물, 해면동물, 아메바를 거쳐 40억년 전의 세균에 이르기는 공동의 조상을 찾기까지, 자칫 무겁고 지루해질 수 있는 진화사를 분화된 개체들의 합류도와 사진, 그리고 비교적 평이한 글에 담아 흥미롭게 보여준다. 특히 이해를 돕기 위한 여러 장치를 고안하는 능력은 저자의 박학을 돋보이게 한다.

예를 들면 어린시절에 읽었던 ‘아라비안나이트’의 신바드로와 로크의 만남에서 주는 상상력이 17세기 이후 사라져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코끼리 새를 끌어올리기도 하고, 독일과학자의 메뚜기 상호교배 실험에서 보여준 자연조건과 인위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설명한 후, 콜린 파월이 케냐의 대통령 다니엘 아라프 모이와 함께 찍은 사진분석을 통해 혼혈과 사회과학적 인종문제로 자연스럽게 옮겨와 유전적인 작용으로 귀결시킨다.

이는 저자가 기존에 주장했던 ‘이기적 유전자’와 비슷한 견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랜 시간 사라지거나 분화되며 활성화된 생명의 개체들이 결국 한 조상에서 이어졌다는 도킨스의 진화사 재현은 지적충족을 넘어 생명의 경이로움을 보여준다.

신정민 기자 jm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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