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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새정치경제학 방법론 연구』 김형기 엮음| 한울 刊| 415쪽| 2005
서평:『새정치경제학 방법론 연구』 김형기 엮음| 한울 刊| 415쪽| 2005
  • 강신욱 박사
  • 승인 2005.11.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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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연과 내포 확장 시도...학제적 연구 가능성 열어

20세기 말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는 현실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중요한 사건이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발생한 이 급격한 변화와 충격은 연구자들에게 많은 숙제를 던져주었다. 그러나, 실제 이 사건에 대한 학계의 반응은 크게 두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주류 사회과학의 관점에서는 개인의 자율적 의사와 그에 근거한 시장질서를 무시한 사회주의가 몰락한 일은 당연한 것이었고, 이 이미 예견된 실패에 대해 특별히 덧붙일 얘기가 없었을 것이다. 맑스주의 이론에 근거하여 사회주의의 형성과 발전을 설명하고자 했던 정치경제학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이론적 실패에 대해 새삼 따져보는 일이 마치 죽은 자식 무엇 만지는 것으로 느껴졌을 수 있다.

갑작스런 변화에서 비롯된 당혹감 때문이었을지 모르지만, 사회주의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떠받치고 있던 이론체계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할 기회가 충분히 없었다는 것은 모든 연구자에게 불행한 일이다. 정치경제학에 대한 비판자에게든 옹호자에게든 실패에 대한 치밀한 검토와 분석은 새로운 모색을 위한 훌륭한 자양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대공황의 원인과 그 교훈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금융위기는 세계 각 나라에서 시기를 달리하며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세계화라는 새로운 역사적 환경위에서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한번의 사건에 대해서도 이러할 진데, 70여년간 지속되면서 세계 인구 삼분의 일의 생활양식을 지배했던 사회체제와 이론에 대한 평가는 이제 시작일 뿐이며 앞으로도 계속 지속될 것으로 기대해도 무방할 것이다. '새정치경제학 방법론 연구'는 이런 의미에서 다소 늦었지만 동시에 매우 시의 적절한 작업의 결과이다.

이 책이 기존의 다른 연구들과 달리 특징적인 점은, 정치경제학 내재적 비판의 차원을 방법론이라고 하는 높은 추상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정치경제학의 한계를 지적하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작업은 지난 십 여 년간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이른바 ‘정통’ 정치경제학의 정치적 권위에 억압되어 있던 이단적 정치경제학의 목소리를 되살려 정치경제학의 부활을 꿈꾸거나 주류 사회과학의 분석틀을 정치경제학에 적용하여 현실에 대한 부분적 설명력을 높이려는 시도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시도는 오래 못가 정치경제학의 형식과 내용 사이의 일관성이라는 문제에 부딪치게 마련이다. 즉 방법론 연구는 피할 수 없는 길목인 셈이다.

정치경제학에서 방법론 연구는 다른 이론에서와는 다른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방법론에 대한 회의는 곧바로 역사적 유물론에 대한 해석방법과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맑스의 경제이론은 기본적으로 인류의 역사를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발전으로 이해하고, 그 틀에서 자본주의의 역사적 성격에 주목하려는 철학적 인식에 뿌리박고 있다. 방법론에 대한 내재적 비판은 그것이 맑스주의의 세계관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혹은 얼마나 자유로워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문제이다.

정치경제학 방법론의 혁신을 위해 이 책이 채택하고 있는 전략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분석의 단위를 계급이란 집합체에서 더 미시적인 단위로 끌어 내리려는 시도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경제학이 이전에 주목하지 못했거나 주목했더라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던 영역에 대해 분석하려는 시도이다.

이 책은 전자를 방법론의 외연적 확장으로, 후자를 내포적 확장으로 구분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전자는 정치경제학의 방법에 대한 연구, 후자는 대상에 대한 연구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외연과 내포의 명칭부여가 뒤바뀐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학문체계간의 이종접합에 의해 유전자를 재조합’하고 그럼으로써 설명력을 높이려는 것이 새정치경제학의 핵심이라면 미시적 기초에 대한 추구를 외연적 확장과 동일시하는 것도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제도주의 경제학의 이론적 성취 속에서 맑스경제학에 대한 시사점을 확인하고, 진화적 관점과 복잡계 경제학의 관점의 분석적 유용성을 응용하며, 게임이론의 틀을 이용하여 경제주체들의 행동방식을 분석하려는 시도들이 이 외연적 확장의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이 연구들은 방법론적 개인주의와 역사적 유물론의 양립가능성에 대해 다양한 절충적 해답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이종접합이 정치경제학의 발전에 ‘비타민’일지 ‘바이러스’일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분명 정치경제학의 설명력과 타 학문과의 소통가능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다. 다만, 도구적 의미를 갖는 방법론적 개인주의를 사회를 바라보는 철학적 관점과 동일시한다거나(김영용, '제도주의연구프로그램'), 신고전학파 경제학에서의 이기적 인간 가정 에 대한 비판을 방법론적 개인주의에 대한 비판과 동일시하려는 설정(김애경, '게임이론의 정치경제학적 수용 가능성')은 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내포적 확장에서는 정치경제학 분석의 영역을 노동자의 생활양식, 젠더문제, 에너지 문제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분명히 정치경제학의 적응력을 높여 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내포적 확장의 전제인 철저한 자기 점검의 부재이다. 정치경제학의 실패 혹은 부족이 방법론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인지, 어떠한 방법론적 특징이 어떤 대상에 대한 침묵을 초래했는지, 새로운 문제 영역으로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는 과연 방법론의 전환이 필요한 것인지 등의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답은 선언적이기보다는 분석적으로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자본주의를 비판하려는 목적이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방법을 결정하였다’는 식으로 맑스의 방법론을 해석 내지 비판하려는 것은 쉽게 동의하기 힘들다.

이 책은 몇 년에 걸쳐 계속되는 집단적 연구의 첫 번째 성과물이다. 정치경제학의 부흥기와는 결코 거리가 먼 지금, 이렇게 집단적 연구가 가능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주목받을 만하다. 하지만 집단적 작업이 빠지기 쉬운 한 가지 유혹이 있는데, 그것은 개별적 연구 성과를 사후적으로 연계하고 결합하여서 집단의 성과로 만들려는 것이다. 물론 그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요자인 독자의 입장에서는 사전에 잘 기획·배분되고 조직된 대형 연구로부터 얻고자 기대하는 것이 있다. 이 연구팀의 제2, 제3의 작업에서는 그러한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나길 기대한다.

강신욱 / 한국보건사회연구원·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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