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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서평:『주희의 자연철학』 김영식 지음| 예문서원 刊| 580쪽| 2005
본격서평:『주희의 자연철학』 김영식 지음| 예문서원 刊| 580쪽| 2005
  • 조남호 평화대학원대
  • 승인 2005.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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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하고 꼼꼼한 관찰…정량적 평가 아쉬워

"주희이전에도 그와 같은 사람이 없었고, 주희 이후에도 그와 같은 사람이 없다.” 주희는 중국철학사에서 독특한 인물이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직관을 중시한데 비해, 주희는 그래도 개념적 분석을 했다. 아울러 주희는 천문·의학·지리 등 다방면에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그것을 자신의 철학적 체계에 적용했던 것이다. 이를 잘 보여준 것이 이 책이다.

종래의 연구가 주희의 형이상학이나 윤리학에 치우쳐있던 점에서 이 책은 주희의 다양한 자연에 대한 관심을 보여 주었고, 주희 연구를 한 층 더 업그레이드 시키는 효과가 있다. 주희가 단순한 책상물림의 철학자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은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저자는 ‘주자어류’와 ‘주자문집’에 나오는 그야말로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빼놓지 않고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보여 주고 있다. 문집과 어류의 방대한 양을 여러 번 그리고 꼼꼼히 읽지 않고는 도저히 이와 같은 저작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의 이러한 바지런한 작업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결론은 평자에게 의문을 갖게 한다.

저자는 주희의 자연에 대한 이해가 결국은 개별적인 특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서양과학과 같은 보편적인 수준에까지 이르지 못한 채, 주희는 자연의 현상들을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지 않고, 분리되지 않는 각각의 개별 현상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주희의 이러한 사고방식이 상식적인 자연지식에 기초하고 있다고 한다. 인식론적으로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문제 삼지 않고 상식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을 설명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주희는 자연세계의 사물이나 현상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으며 숨겨진 메커니즘이나 외부의 원리들로 이것을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저자는 주희의 동시대 서양의 스콜라 철학자들을 비교함으로써 주희의 사고가 가지는 한계를 고금의 차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평자가 보기에 이러한 결론은 다분히 서양 근대 과학적인 시각에서 주희를 평가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에 대해 평자는 두 가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하나는 주희가 이해했던 동양 과학의 성격과 관련된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에 대한 주희의 비전문성과 관련된 문제다.

먼저 주희가 이해하고 있던 동양과학의 성격에 대해 살펴보자. 평자는 주희의 자연과학이 개별적 법칙에는 관심을 가졌지만 일반적 이론에 도달하지 못했던 것은 주희의 이론모델이 정성적 속성에 연유하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된다.

氣와 인력을 비교하면 이 점이 잘 드러난다.

인력이 행성 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기하학적 천문학이라면, 기는 역법의 계산을 중심으로 하는 대수학적 천문학이다. 이러한 점은 기가 대수적 비율로 설명되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1(하나의 기), 2(음양), 4(음양의 네 부분), 8(음양의 여덟 부분) 등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기는 定量적인 사고로 설명될 수 없다. 동양의 정성적인 사유방법은 기를 내적인 체험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리게 된다.

왜냐하면 기의 정성적인 속성들은 기본적으로 우리 인간의 주관적인 느낌과 관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양인들의 전통적 사유에 따르면 기야 말로 만물을 이루는 기본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만물에 대한 이해는 기에 대한 이해로부터 나오는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정성적인 이해 방식이기 때문에 결국 나의 감각과 체험이 곧 우주의 비밀을 여는 열쇠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가 요사이 체험위주로 설명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는 기야말로 정신과 물질을 뛰어넘는 제3의 것이라고 하는 생각과 연결이 되어 있다. 이 점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기를 현대 물리학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일반적 사고란 바로 정량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정량적인 사고방식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는 없다.

자연과 인간을 이해하는 데 양적으로만 파악하는 사고야말로 가장 위험한 생각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양적으로 파악하는 사고는 자연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려는 사고와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기계론적인 사고다. 기계론적인 사고는 물질에는 정신이 없다고 간주한다.

오늘날 인간성 상실이나 환경파괴는 이러한 사고에서 연유되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의 상호 교감 과정을 전제로 하지 않는 사유체계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기는 이 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기는 유기체적 사고에 입각해 있기 때문이다. 기는 모든 존재를 연결하고 있다. 따라서 기의 이론에 따르면 정신과 물질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하고 있는 것이 된다.

다음은 주희의 자연에 대한 관심이 아마추어리즘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에 대한 것이다. 저자는 주희가 전문적인 지식에 그다지 높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평자가 보기에 이러한 평가는 주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주희가 의학·천문·지리에 관심을 쏟는 것은 실제적이었다. 주희의 관심은 사대부 지식인에 있었다. 이들이 어떤 사회를 만드는 가에 관심이 있었다. 자신의 이론적 대상을 분명히 한 것이다.

예를 들면 사대부에게 의학은 임금과 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한 것이었다. 忠과 孝는 이들의 도덕적 세계를 완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들이다. 부모와 임금에 대한 사랑은 질병에까지 미쳤다. 따라서 주희는 의학을 배울 것을 강조한다. 물론 이러한 사고는 주희 이전에도 있었던 유학자들의 사고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에는 자신들이야말로 총체적인 사회 설계사라고 우월의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주희를 비롯한 성리학자들의 이러한 사고는 전문적인 사회영역의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전문적인 직업에 대한 천시를 깔고 있는 이들의 직업관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검증 없는 전문성이란 또 다른 폭력을 가져오는 것이다. 전문집단이 질병에 대하여 배타적 독점권을 행사하는 현대의 상황 속에서 성리학자들의 의학 통제는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있다.

주희는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직무에 충실하고, 도덕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조화로운 세계라고 주장한다. 주희는 의사들에게 끊임없이 사회윤리를 심어주고자 했다. 물질적인 이윤보다는 정신적인 가치를 중요시하는 성리학자들은 의사들이 전자에만 관심을 쏟는 것이 사회적인 안정성을 해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것이 주희의 理이다. 주희의 리는 비록 전근대적이지만 도덕과 윤리의 문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럭비공 같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과학기술이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서, 인문학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과학기술을 올바로 견인할 수 있어야 한다. 주희의 자연과학은 지금에 와서 별반 큰 의미가 없을 지라도 그의 리에 대한 관심 즉 도덕과 윤리에 대한 관심은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아울러 기가 가지는 교감 더 나아가서 소통의 의미를 부활시켜야 할 것은 아닌가.

 
주희는 한편으로 동양철학에서 누구나 다 아는, 그냥 거쳐 가는 철학자로 대접을 받아왔다. 전문적인 연구없이 대충 이해되는 경향이 있어왔다. 다른 한편으로 주희는 봉건적인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 전근대의 철학자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주희는 인간에 대한 고민을 했다. 그 중에서 주희가 고민한 윤리와 소통의 문제는 여전히 지금에도 논의되는 철학적인 문제다. 그가 가지는 의미를 재해석할 수 있어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저작은 인문학이 소홀하기 쉬운 자연 철학자로서의 주희상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저작은 주희가 갖는 시대적 한계를 조망할 수 있는 계기를 준다. 주희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계기와 한계를 모두 고려할 때 균형된 시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조남호 / 국제평화대학원대학·동양철학

필자는 서울대에서 ‘나흠순의 철학과 조선학자들의 논변’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희-중국철학의 중심’, ‘동양철학과 한의학’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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