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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사랑법
철학자의 사랑법
  • 최승우
  • 승인 2022.04.04 1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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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지음 | 사월의책 | 300쪽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
이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혐오와 팬데믹의 시대, 철학의 눈으로 보는 우리 시대의 사랑론

최근 과학서, 에세이, 소설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정함, 우정, 사랑, 친절에 관한 담론이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다. 팬데믹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타인과 거리두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극복하려는 시도로도 읽힌다. 정치적 부족주의가 횡행하고 혐오의 발화가 곳곳에서 만연하며 코로나로 인해 단절과 고립이 일상화된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다시금 사랑과 우정 그리고 다정함에 기대를 걸고 있다. 대체 사랑이란 무엇이기에 생사를 가늠하는가? 세상사에 공허해진 마음은 사랑에서 다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이 책 『철학자의 사랑법』은 철학자 김동규가 세상물정과 철학, 시와 예술을 오고 가며 우리 시대의 사랑론을 깊이 성찰한 사유의 산물이다. 사실 사랑은 플라톤의 ‘에로스’ 개념처럼 철학의 주된 사유 대상이고, 철학함의 본령을 이루기도 한다. 저자 역시 사랑을 자신의 철학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으로 보고 있다. 저자는 ‘철학 산문’이라는 에세이 형식을 빌려 호메로스와 플라톤에서 하이데거와 장-뤽 낭시에 이르는 철학자들, 김소월과 윤동주에서 고정희와 나희덕에 이르는 시인들, 그리고 오수환과 강영길 등에 이르는 예술가들과의 열띤 대화 속에서 우리 시대 사랑의 의미와 가치를 찬찬히 짚어간다.

사랑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모순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소설, TV 드라마, 대중가요, 영화에서는 지겹도록 사랑 타령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역대 최저 혼인율이 보여주듯이 사랑과 연애는 갈수록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 부차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한쪽에는 사랑 담론의 과잉이, 다른 한쪽에는 사랑의 부재가 있는 이율배반적 현실이다.

저자는 사랑의 부재를 개탄하는 데 머물지 않고 어떻게 이 시대에도 사랑이 ‘숨은 채’ 존재하는지 보여준다. 사랑이 숨어 있기에 우리는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할 뿐이다. 『철학자의 사랑법』은 사랑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진부하기 짝이 없는 사랑 타령이 지겨워진 현대인에게, 사회적 거리두기와 집합금지 등으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사랑의 심해를 탐사하는 잠수정에 동승해 보기를 권한다. 시와 철학의 정수를 파고드는 사려 깊은 탐사 과정 속에서 우리는 사랑의 진면목을 또렷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 왜 다시 사랑의 철학인가?-“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김수영)

요즘 시대에 철학자가 사랑을 입에 담는다면, 아마 삼류 철학자로 분류되기 십상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한동안 사랑의 철학은 우리 시대의 사랑에 대해 침묵해 왔다. 그러나 과거 철학의 영웅들이 만들어 놓은 개념의 첨탑 뒤에 숨기만 해서는 이 시대의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철학자의 사랑법』에서 철학자 김동규는 사태를 거꾸로 봐야 한다고 꼬집는다. 철학에 의해서 사랑을 검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사랑의 잣대로 철학의 능력을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사랑이야말로 사람의 사유 수준을 측량하는 리트머스 종이다. “내게 사랑에 대해 말해 보라. 그러면 나는 당신의 철학 수준을 말해 주겠다.”

세상과 나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랑이다. 사랑은 너무나 흔한 말이지만, 누구나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해 방황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어렵고 드문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사랑은 저 멀리 있는 천국이나 유토피아가 아니라, 지금 여기 일상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난다. 이 책 『철학자의 사랑법』은 이렇듯 비루한 일상에서 웅대한 사랑이 움트고 성장하며, 모욕 받으면서도 당당하게 자신을 관철해 나가는 사랑의 ‘사나운 조짐’(김소월)에 주목한다. 언뜻 작은 눈덩이처럼 보이지만, 대규모 눈사태를 예고하는 사랑의 사나운 조짐을 시와 철학 속에서, 그리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읽어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김수영의 말처럼,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인지도 모르겠다. 언제 어디서나 반복되는 사랑 타령은 거북하고 지겨운 게 사실이지만, 그 끝없는 반복에서 사랑의 ‘사나운 조짐’을 읽어내는 눈썰미야말로 삶의 최상급 지혜가 아닐까 싶다.” (285쪽)

사랑이 없어서 사랑을 위장하는 시대-“더 먼저 사랑하고 더 오래 사랑하라”(고정희)

일부 사람들에게 사랑은 통속적이고 저급하고 동물적인 것처럼 비추어진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포함해 누구나 손으로 하트를 그려가며 사랑을 표현한다. 피상적인 사랑 표현은 사랑의 부재를 겉으로나마 ‘위장’하기 위한 가련한 몸짓이다. 동시에 사랑을 목말라하는 ‘비명’이기도 하다. 정말로 무시무시한 상태는, 고통을 아예 느끼지 못하거나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고통 때문에, 가식적인 사랑조차 표현하지 못하는 지경이다. 그런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때때로 사랑의 심해에 깊숙이 빠져볼 필요가 있다.

비유컨대 이 책은 사랑의 심해를 탐사하는 잠수정이다. 1부 ‘더 먼저 더 오래’에서는 평범한 일상에서 사랑과 죽음의 참된 의미를 찾는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묻곤 한다. 사랑의 당사자들인 나와 너 모두 불완전하고 볼품없는 존재일진대, 과연 우리가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기는 한 것일까? 이와 같은 회의적인 질문에 대해 저자는 삶과 사랑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며, 눈밭에서 눈덩이를 굴리듯 사랑에 뒤엉켜 사랑을 키워나갈 때,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사랑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2부 ‘한과 멜랑콜리 사이’에서는 서로 다른 사랑론에 뿌리내린 두 정서, 즉 한(恨)과 멜랑콜리를 비교한다. 지금 한국인이 겪는 우울은 과거의 한과도 다르며, 서양의 멜랑콜리와도 다르다.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전통적인 김소월식 사랑이 제 마음을 죽이고 내부로 삭이는 것이었다면, 서양식 멜랑콜리커의 사랑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마음이 몸을 죽이는 자살과 맞닿아 있다. 저자는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모두를 고려하면서 우리 시대의 사랑과 우울을 해명해야만 우리 자신의 정서를 제대로 돌보고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3부 ‘이 시대의 푼크툼’에서는 지금 이곳의 현안들을 사랑의 관점에서 되짚어본다. 특히 저자는 코로나 시대의 사랑법을 이야기한다. 비대면 화상 강의로 형이상학을 수업해야 했던 일화를 들려주며 수업 성패의 최종 관건은 대면이냐 비대면이냐가 아니라, 사랑의 유무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사랑의 통신기술이 편지, 스마트폰, 유튜브로 변한다고 해서 미숙한 사랑이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저자는 ‘당신 자신을 알도록 하세요’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환기하면서, 자신을 아는 일이 결국 사랑을 아는 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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