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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 대신 ‘메타자연학’?…철학에 현재 한국어는 왜 없나
‘형이상학’ 대신 ‘메타자연학’?…철학에 현재 한국어는 왜 없나
  • 최승우
  • 승인 2022.04.01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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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현대 한국어로 철학하기』 신우승 외 2인 지음 | 메멘토 | 224쪽

‘transcendental’, ‘선험적’, ‘메타자연학’...철학적 언어들은 어렵고 생경하며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 것이 사실이다. 분명 한글인데 외국어처럼 이해되지 않기도 한다. 철학의 많은 단어와 문장들이 한문과 영어에서 파생되었으며 이 둘의 조어도 적지않다. 

뿐만 아니라 해석 역시 역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철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이런 기류에 반기를 든 이들이 등장했다. 학문공동체 ‘전기가오리’의 운영자 신우승과 독일 본 대학 박사과정 김은정, UCLA 박사과정 이승택이 뭉쳤다. 책 제목 『현대 한국어로 철학하기』는 이 반란군(?)들의 작업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문장이다.

 

쉽고도 재미있는 개념 논쟁

이 지적 탐험가들은 강단 철학자가 아닌 박사과정의 젊은 철학도라는 사실이 신선하다. 때문에 기존 관습이나 체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이 책은 총 열네챕터로 이루어져있다. 논변, 명석판명, 공리, 미적속성 그리고 앞서 말한 형이상학까지 철학 전반적인 화두를 훑어나간다. 

특기할만한 것은 내용이 설명과 대화체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신우승이 개념에 대한 의문과 동시에 수정번역을 제안하면 김은정과 이승택이 반론하는 식이다. 반론에 반론을 거듭하여 자연스레 합의가 되기도 한다. 비록 서면상이지만 격의없는 토론을 통해 좀 더 ‘참’에 가까운 본질에 접근하는 과정이 자못 흥미롭다. 개념에 대한 다른 생각과 의견들이 어떻게 합의되고 도출되는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한 예로 형이상학의 장을 펼쳐보자. 신우승의 표현에 따르자면 사회학은 사회학을 다루니까 사회학이고 동물행태학은 동물을 다루니까 동물행태학이다. 그렇다면 형이상학은 ‘형이상’을 다루는가? 형이상학의 한자표기는 ‘형태 너머의 것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의미를 가질뿐 형태 너머의 것이 무엇인지 구분하지 않았기에 분과학문의 이름으로서는 사실상 실패작이라 규정한다. 그리고 형이상학의 영문명 ‘metaphysics’마저도 성공적인 이름이라 말할 수 없다며 이에 대한 번역어로 ‘메타자연학’을 제안한다. 신우승의 제안이 끝나고 김은정,이승택의 반론이 이어진다. 김은정은 ‘메타자연학’이 ‘메타과학’과 동의어로 여겨질 위험을 지적하고 이승택은 형이상학의 부정과 긍정적 어감을 들며 의미의 명확성이 반드시 큰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동시에 이들의 반론에 대한 신우승의 답변이 이어지는데 본인의 오류를 겸허히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국어 없는 한국철학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독자들은 읽다보면 이 열띤 토론에 참가한다는 인상을 자연스레 받는다. 마치 생생한 공론의 장에서 호흡하는 느낌이다. 실제로 저자는 “여러분도 공동저자라 생각하며 논의에 참가한다면 유익한 독서가 될 것”이라 당부한다. 애초의 출간목적이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참여형 철학이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공동저자이자 지면의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한 신우승은 말미에 이르러 한국 철학계의 몇가지 뼈아픈 화두와 제안을 던진다. 『현대 한국어로 철학하기』는 개념과 번역어에 대한 고찰이라며 현재 사용하는 번역어들이 현대 한국어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뒤이어 일상 언어로 철학개념을 다루는 시도를 했음을 밝히고 그 과정에서 느꼈던 안타깝고 미진한 현실을 비판한다. 

 

철학의 핵심은 대화를 통한 논쟁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논쟁에 참여할 수 있다. 사진=픽사베이

철학의 꽃은 의심이다.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했던 데카르트까지 가지 않더라도 기존체계에 의구심을 갖고 새로운 방식을 제안했던 수많은 철학자들만이 눈부신 사유의 발전을 이뤄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저자들은 진정한 의미의 철학적 왕도를 걷는 것처럼 보인다. 기존의 개념어들을 의심하고 분석하며 해체 후에 다시 재정립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책은 깊은 내용과는 달리 얇고 담백한 크기다. 너절하게 문장을 늘어뜨리지도 않는다. 딱 필요한 만큼 가감없이 서술했다. 이 책을 공동 집필한 젊은 철학도들의 노고와 실험적 시도에 경의를 표한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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