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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한국문학, 페미니즘의 조명을 받다
1990년대 한국문학, 페미니즘의 조명을 받다
  • 이승건
  • 승인 2022.04.0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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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말하다_『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다: 90년대 문제작가를 진단한다』 한국문학연구회 지음 | 한길사 | 2000 | 442쪽

페미니즘은 21세기 지식 키워드 중 하나
여성 비평가 13명이 여성 작가 13명을 연구

지난 3월 8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여성의 날’이었다. 올해로 114주년을 맞는 이 기념일에 세계 각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행진을 비롯한 크고 작은 행사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일과 가정 모두의 지킴’을 그리고 ‘일한 만큼 인정받음’을 각각 의미하는 빵(생존권)과 장미(참정권)는 이날의 상징이 된 지 이미 오래이다.

여성주의로 번역되곤 하는 페미니즘은 21세기 지식 키워드 중 하나로서 정치, 사회, 예술 및 학문 분야에 있어서 실천과 이론의 양 측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전개시켰고, 지금은 미투와 위드유 운동을 거치면서 그 의미 지대가 확장된 매우 중요한 인문학적 개념이라 여겨진다. 특히 요사이 대선 국면에서 몇몇 정치인들이 이 부분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 번 그 열기가 더해졌다고 보인다.

살펴보건대, 우리 예술계에서의 페미니즘 논의는, 일상에서의 그것과는 달리, 좀더 세련되고 심층적인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일례로 1990년대 문학계의 단층을 조명하는 연구, 즉 대표적인 여성 작가 13명(오정희, 박완서, 김채원, 김향숙, 최명희, 이혜경, 김인숙, 신경숙, 김형경, 최윤, 공지영, 공선옥, 은희경)을 대상으로 삼은 작가론 모음집인 이 책을 꼽을 수 있겠는데, 이는 앞서 1920년대(근대)와 1950년대(현대)의 여성 작가들을 다루었던 ‘페미니즘과 소설비평' 시리즈물의 세 번째 것으로서, 여성 비평가 13명(김복순, 이선미, 변신원, 홍혜원, 이덕화, 김미현, 권명아, 김현주, 김예림, 이호숙, 김현실, 소영현, 정재원)이 페미니즘 시각에서 바라 본 일련의 작가론으로 꾸며진 연구물이다.

 

우선 13이라는 숫자가 범상치 않게 다가온다. 왜냐하면 이 숫자는 제도화된 남성중심문화의 고발 및 대항에 역점을 둔 분리주의 페미니즘에서 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가부장적 숫자로서, 페미니스트 미술가 주디 시카고(1939~)가 「디너 파티」(1974~79)에서 한 변에 13명씩 모두 39명의 문화계 여성 인사들을 삼각형 식탁에 초대하여 여성의 언어로서 그들에게 존경심을 표현한 설치작품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 페미니즘에 대한 예술계에서의 논의는 특히 ‘70년대부터 미술 분야에서 직접적인 메시지로 목격된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주디 시카고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프레스노 분교에서의 「페미니스트 프로그램」(1971)으로써 물꼬를 만들더니만, 최초의 페미니즘 미술제 「여성의 집」(1972)과 109명의 현존 여성작가들을 선정한 「여성이 뽑은 여성전시회」(1973) 그리고 여성미술에 대한 인식을 고양시킨 「여성화가들 : 1550년~1950년」(1976) 등의 전시회를 통해 방치된 여성의 역할과 누락된 여성 이미지의 역사를 신랄하게 비판했었다. 더욱이 페미니즘 미술사에서 랜드 마크 페이퍼로 추앙받는 린다 노틀린(Linda Nochlin, 1931~2017)의 「왜 위대한 여성미술가들은 존재하지 않았는가?」(1971) 글이 발표된 때도 이 즈음이다. 

 

 

한국문학, 페미니즘으로 휴머니즘을 꿈꾸다

식민지시대의 여성작가와 해방 및 분단시대의 여성작가들에 대한 연구에 이은 한국문학연구회의 세 번째 기획물인 이 책은 “빛과 그늘을 모두 지닌 1980~1990년대 페미니즘 문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페미니즘 문학의 허와 실을 구별해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 중요할 것”(27쪽)이라는 시선을 담고 있기에, 한국문학의 자기성찰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출간 의도가 담긴 책의 머리말에 해당하는 글(「페미니즘을 통한 휴머니즘의 구현」, 25~36쪽)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이론 자체가 아닌 실제 적용을 중심으로” 내용에서 뿐만 아니라 형식적인 차원에서의 문학성도 고려하면서 “페미니즘을 통한 휴머니즘의 구현”(27쪽)이라는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 1990년대에 주로 활동한 13명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페미니즘 시각에서 분석하고 나선 것이다.

 

인권운동이니 프로트주의니, 또는 실존주의와의 관계 등 서양의 거대 담론 흐름 속에서 페미니즘을 뒤척거린 것이 아니라, 한국적 DNA를 품은 여성작가들의 경험세계에서만 엿볼 수 있는 여성을 둘러싼 이미지를 또 다른 동시대 여성의 시선(여성 비평가)에서 섬세하게 접근하여, 여성작가들의 여성의식을 살펴보면서 “페미니즘 문학이나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용어 자체가 불필요해지는 미래에 이바지하기를”(35~36쪽) 기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박완서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중년의 여성들, 특히 전업주부로만 살아가는 여성들이 자기의 삶에서 느끼는 ‘소외’를 중심으로 살펴 본 글 「위기의 여자와 성찰의 시선」(박완서론·이선미, 79~112쪽) 등이 있다.

이 책이 나온 지도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남녀가 함께 행복한 상생의 공동체’라는 슬로건(2004)으로 ‘여성의 날’을 맞이한 지도 근 20년이 지났다. 다시 뽑아든 이 책은 우리 사회가 지난 20년보다 여성의 삶이나 여성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좀 더 성숙해 졌는지 그리고 보다 유연해졌는지를 현시점에서 뒤돌아보게 하는 듯하다.

 

 

 

이승건
서울예술대 교수ㆍ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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