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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어느 미국회사의 사원선발 인터뷰
기고: 어느 미국회사의 사원선발 인터뷰
  • 김명주 충남대
  • 승인 2005.11.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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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명대학에 입학하려면 성적만 좋아서는 턱도 없다는 말은 이미 세간이 널리 회자 된지 오래다. 소위 유명대학의 교육목표란 것이 대중교육 차원을 넘어서 사회 각계각층의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함이고, 지도자가 되려면 예습복습에 철저한 성실성, 능숙한 암기력, 재빠른 순발력도 중요하겠지만, 보다 더 중요한 뭔가를 요구하는 까닭이다.


대학뿐이 아니다. 미국의 기업과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도 빼어난 성적과 뛰어난 두뇌만은 아니다. 미국의 한 기업이 사원을 선발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숙제 마감 시간이 5분 남았다. 당신은 숙제를 모두 끝냈지만, 옆의 친구가 숙제를 끝내지 못했다. 그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초등학교 저학년 도덕문제처럼 답이 뻔한 문제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답은 초점과 태도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같은 숙제를 제출하는 것으로 보아 친구와 나는 경쟁관계에 있음이 분명하니 도움을 준다는 것이 어떻든 부담일 수 있다.

게다가 시간이 5분밖에 남지 않았으니 도와준다 해도 숙제를 마친다는 것은 영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도울 수 없는 상황의 불가피함을 조목조목 설명해야 할까? 수백대 일의 경쟁을 뚫고 선발된 사람의 대답인즉, 불가피한 상황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친구를 돕겠다는 것이다. 즉 돕겠다는 의지에 더욱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참으로 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오락가락 한다. 지력이 모든 능력의 우위에 서고, 남보다 내가 잘나야 직성이 풀리는 나르시시즘, 정체성 확립이랍시고 에고가 고집스럽게 날뛰는 세상이 아닌가. 물론 내 자신도 그런 세상의 일부다. 애들 성적표에 세상이 맑아졌다 흐려졌다 하는 철없는 엄마이고, 세상의 거울에서 내 모습만을 발견하는 나르시시스트이고, 희생보다는 성취에 급급한 섣부른 커리어우먼이다.


가끔씩 이런 생각이 든다. 비상식량 수북이 쌓아두고 그렇게들 살아남으려고 아등바등하는데, 정작 홀로 살아남는다면 얼마나 심심할까. 밉든 곱든 삶을 살만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내 주변의 사람들이 아닌가? 심심하지 않으려면 나 혼자 살아남기보다 함께 살아남아야 하고, 혼자 똑똑한 것보다 다른 사람들이 함께 똑똑할 수 있도록 도와야하지 않을까?


대중교육이든 엘리트 교육이든 교육은 지성의 훈련에만 그칠 수는 없다. 사회인으로서 지성보다 더욱 중요한 능력은 서로 관계할 수 있는 능력이고, 관계 안에서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조금 낮출 수 있는 능력, 그래서 나와 다른 의견에 타협하면서 함께 일을 추진해나가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김명주 / 충남대·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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