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2-07-01 17:55 (금)
우크라이나 사태로 드러난 신흥지역 연구의 현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드러난 신흥지역 연구의 현실
  • 허창배
  • 승인 2022.04.05 08: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문후속세대의 시선
허창배 북방경제협력위원회·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국제정치 전공 박사수료
허창배 북방경제협력위원회·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국제정치 전공 박사수료

지난 2월 24일,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하면서 전쟁으로 인한 긴장 고조와 인도주의적 위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193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운명을 결정한 뮌헨위기가 2022년 같은 장소에서 똑같이 반복되는 느낌이다. 현상타파적 성향을 보이는 침략국이 나치 독일에서 러시아로,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을 모색하는 상대적 약소국이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우크라이나로 바뀌었을 뿐 국제적 힘의 배분을 둘러싼 침략국과 이에 대응하는 강대국들의 전략은 크게 바뀐 것이 없기 때문이다. 

외신들이 우크라이나의 참상을 앞다투어 속보로 전하고 있지만 국내 언론들은 이를 인용해 보도할 뿐 우크라이나 정세를 정교하게 분석한 심층 기사나 인터뷰는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에 우크라이나 정세를 분석할 지역연구 전문가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현재 언론에 소개된 전문가들은 대부분 러시아 유학을 경험한 러시아 전문가들로 우크라이나가 아닌 러시아의 입장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분석하고 있다. 

물론 미국 등 서방과 러시아의 세력경쟁이라는 지정학적 구도를 배제하고 우크라이나 사태를 설명하긴 어렵다. 같은 맥락에서 러시아의 의도를 아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강대국 위주의 분석이 오늘날 우크라이나 상황 전체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의 의도와 선택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이 신흥지역 연구자들이 활동해야 할 영역이다. 미·중·일·러 등 강대국 연구자들이 대상의 윤곽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신흥지역 연구자들은 눈이나 코 등 대상을 식별할 수 있는 특징을 그리는 사람이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크라이나 전문가와 같은 신흥지역 연구자들이 꼭 필요한 이유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연구자 중 국제정치나 비교정치 등 분과학문을 배경으로 우크라이나어 구사가 가능한 지역연구 전문가는 전무한 상황이다. 비단 우크라이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동부유럽, 동남아, 중앙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 대부분의 신흥지역 연구자와 학생들은 생존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대러 제재 국면에서 정부가 보여준 다소 모호한 태도가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이 아니라 외교적 실책으로 해석되는 것도 어쩌면 지역연구 저변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인지도 모른다. 

신흥지역 연구자의 시선으로 본 우크라이나 사태

폴란드 예를 들어보자. 독일과 러시아(소련)라는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폴란드는 1990년 토대선거와 민주정부 출범 이후에도 외교안보정책 우선순위를 결정하지 못했다. 당시 소련은 여전히 안보 위협 국가였으며 독일과는 오드라/니사 국경분쟁을 겪고 있었다. 미국의 강한 압박이 아니었다면 독일은 폴란드 서쪽 영토를 차지하고 전쟁 배상금도 거부했을지 모른다. 폴란드의 유럽-대서양주의는 결국 1990년대 중반에서야 구체화될 수 있었다. 폴란드 제3공화국 외교정책 결정에서 보이는 이 같은 신중함은 탈냉전으로 인한 안보공백(security vacuum) 속에서 2차대전 당시와 같은 치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이다.

시기는 다르나 우크라이나도 같은 선택을 했다. 폴란드가 ‘유럽으로의 회귀’, ‘독립성의 유지’를 주장했던 것처럼 우크라이나도 민주주의와 인권, 시장경제를 신봉하고 법에 의한 지배가 구현되는 선진국이자 대외적 주권과 영토적 통합성을 존중받는 국가를 열망했다. 1990년대 중동부유럽 많은 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 흑해 및 카스피해 연안 신흥국들도 서방과 러시아라는 두 강대국 집단 사이 어느 한쪽을 선택함으로써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다. 지금 우크라이나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다.

신흥지역 연구자가 직면한 현실

강대국보다 덜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연구가 바로 신흥지역 연구다. 하지만 국내에서 신흥지역을 배우고 연구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국내 신흥지역 연구자들, 학생들은 어떠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첫째, 국내에서 현지 자료에 접근하는 일 자체가 도전이다. 이들 신흥지역 문헌들은 영어 등 국제 공용어로 출판되는 경우가 드물고, 현지 문헌들 역시 디지털 아카이빙이 안 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신흥지역 연구자들이 현지에서 직접 관련 문헌을 수집하고 있으며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국립중앙도서관이나 대학 도서관 등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어 문헌 수집 등 자료조사에 필요한 노력과 비용을 전적으로 혼자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의 전세계적 확산은 자료수집 등 연구 활동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둘째, 국내에 관련 내용을 전공한 교수나 연구자가 없는 경우가 많으며 학부생들의 입문 교재도 부족한 실정이다. 학생들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으로 신흥지역을 선택하지만 대학의 현실은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시간강사로 학생들을 지도한지 3년째 얻은 결론이다. 학생들은 전공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제2전공을 통해 진로를 모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대학원 진학이나 현지 유학을 선택하더라도 전공을 오래 지키는 경우가 드물다. 역사학과 정치학을 구분하지 못하는 언어 전공자들이 정치나 경제를 강의하고 학부생을 위한 한국어 전공 교재 한 권 제대로 없는 상황이 오늘날 한국 대학의 신흥지역 전문가 양성과정의 현주소다. 

셋째, 신흥지역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차별이다. 특히 같은 동료, 선·후배 연구자, 학생들로부터의 차별적 시선은 견디기 어렵다. ‘이렇게 힘없고 못사는 나라를 왜 공부하나’라는 경멸적 태도는 미·중·일·러를 연구하는 다수의 연구자들이 갖고 있는 상대적 우월감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유럽의 문화가 아시아의 문화보다 우월하다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연구자가 담당하는 지역 혹은 국가의 군사력, 경제적 능력은 각국의 국력을 파악하는 지표가 될 수는 있어도 그들이 생산하는 지식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즉, 미국 연구자의 연구 성과가 몰도바 연구자의 그것보다 더 우월하다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신흥지역 국가 및 그 연구자들에 대한 편견의 시선도 마땅히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신흥지역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연구자들이 국익에 기여하면서 당당하게 활동할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허창배 북방경제협력위원회·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국제정치 전공 박사수료

한양대학교에서 국제정치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국제정치, 유럽정치에 관심이 많은 신진연구자로 다수의 대학 및 연구기관, 정부기관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대표논문으로는 “평화의 과정: 보스니아 평화협정, 사라예보에서 데이튼까지”(「국제정치논총」 2019)와 “지역의 선택: 우크라이나와 몰도바 국내정치와 지역무역협정 정책”(「동유럽발칸연구」 2018), "Advanced Military Transfers as a Middle Power Strategy: The Case of Israel" (Israel Affairs forthcoming) 등이 있다. 대표저서로는 『루마니아: 미완의 혁명』 (서울: 한양대학교 출판부, 2018) 등이 있으며, 한국평화연구학회 정회원, 21세기정치학회 정회원, 비교평화연구회 준회원, 지속가능한사회과학연구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