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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84] “평등한 자유에 대한 위협이 없다면 모든 사회적 개념에 관대해야”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84] “평등한 자유에 대한 위협이 없다면 모든 사회적 개념에 관대해야”
  •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 승인 2022.03.29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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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포트킨
바쿠닌
무솔리니
말라테스타는 혁명 다음날의 첫 번째 과업은 모든 정치 권력을 파괴하고 노동자와 농민이 공장과 토지를 인수해 공동으로 일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진=위키미디어

말라테스타의 혁명은 단순히 사회 변화를 가속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했다. 그의 혁명은 새로운 제도, 새로운 집단, 새로운 사회적 관계의 창조이고 특권과 독점의 파괴였다. 나아가 정의, 형제애, 자유의 새로운 정신이야말로 사회생활 전체를 갱신하는 것이라 이야기하며 대중에게 직접적이고 의식적인 행동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만들라고 했다. 
대중의 도덕적 수준과 물질적 조건 모두를 높여야 한다고 했다.

동시에 그는 아나키스트 혁명이 모든 제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군대, 경찰, 사법부와 감옥을 요구하는 권위에 기초한 제도만을 파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의 다른 제도들은 인민들이 자신들의 업무를 관리하기 위해 인수해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때문에 그는 혁명 다음날의 첫 번째 과업은 모든 정치 권력을 파괴하고 노동자와 농민이 공장과 토지를 인수해 공동으로 일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주, 기업가, 금융가의 재산을 몰수와 은행 폐지, 소유권 증서의 파괴, 민중의 무장을 주장했다. 

또한, 부르주아 지식인들과 구성원들이 동일한 혜택을 누리려면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일해야 하며, 집단에 합류하기를 원하지 않는 노동자와 농민에게는 스스로를 부양할 재화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나키스트는 다른 사람들의 평등한 자유를 위협하지 않는 한 모든 사회적 개념에 관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솔리니의 감시 아래에서의 저술 활동

무솔리니 사진= 위키미디어

말라테스타는 마지막 5년을 무솔리니의 경찰이 밤낮으로 감시하는 가택 연금 상태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 보냈다. 그는 그의 '오랜 친구'인 크로포트킨이 과학적 결정론과 과도한 낙관론에서 오류를 범했다고 비판한 글을 포함한 여러 글을 썼다. 크로포트킨은 인간사에서 의지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한 '기계적 숙명론의 희생자'로 공산주의적 아나키즘이 마치 자연의 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앞의 난관을 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근본적으로 크로포트킨은 자연을 일종의 섭리로 생각했으며, 덕분에 인간 사회를 포함한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보았는데, 이는 많은 아나키스트들에게 '아나키는 질서'라는 절묘한 크로포트킨의 구호가 반복되게끔 이끌었다고도 비판했다. 

말년에 말라테스타에게 아나키는 자연 질서의 한 형태라기보다 인간의 창조물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그는 “과학은 필연이 끝나고 자유가 시작되는 곳에서 멈춘다. … 도덕의 원천과 행동 규칙을 찾아야 하는 것은 의지력을 행사하는 이 능력 안에 있다.”고 했다. 또한, 그는 아나키는 새로운 효과를 달성할 수 있는 인간 의지의 행사를 통해 달성된 인간적 열망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현대 사회 생태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자연의 힘과 협력하고 자연을 정복하지 않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말라테스타는 종교와의 전쟁을 촉구했지만 도덕적·영적 가치의 중요성은 끊임없이 강조했다. 즉, 아나키즘의 도덕적 기초는 만인에 대한 사랑, 인간성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자신을 가둔 감옥이 아무리 어두워도 자유와 사랑에 대한 자신의 빛나는 이상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는 마지못해 혁명적 폭력의 필요성을 받아들였지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목적에서 도덕성을 추구해야 하고, 수단이 결정돼야 하기 때문에 '모든 목적은 수단을 필요로 한다'고 보았다. 그는 또한 목적과 모순되는 수단으로 혁명을 방어해서는 안 되며, 혁명을 옹호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혁명적 테러에 완전히 반대하고 반란과 혁명의 위대한 옹호자인 그는 죽기 전날 무차별 폭력의 공포를 지적했다. 말라테스타의 모든 저술에서 빛나는 것은 그의 개방성, 성실성, 정직성이다. 1932년 79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그는 여전히 '상사도 없고 헌병도 없는' 사회에 대한 비전에 충실했다. 불굴의 국제 혁명가, 따뜻함, 인간미, 지칠 줄 모르는 낙관주의는 망명을 강요당했다가 2차 세계 대전 이후에야 재편성된 분열된 이탈리아 아나키즘 운동의 상징만이 아니라 새로운 아나키즘 운동의 좌표로 남았다.

 

아나키스트는 먼저 아나키즘적으로 살아야

말라테스타는 조직과 권력을 구별하고 개인주의 아나키스트들이 조직을 거부하는 것은 조직과 권력을 혼동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진=위키미디어

특히 나는 앞에서 언급한 <마틴 에덴>과 관련하여 나아가 아나키즘 내의 개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에 대해 말라테스타는 중요한 교훈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나키즘 조직은 개인의 해방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두 가지의 결합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따라서 철저한 개인주의를 고집하는 아나키스트가 아나키스트들의 자발적인 조직이나 집단을 거부하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그는 아나키스트 정당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인정했다. 

말라테스타는 조직과 권력을 구별하고 개인주의 아나키스트들이 조직을 거부하는 것은 조직과 권력을 혼동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동시에 그는 아나키즘을 주장하기에 앞서서 아나키스트들은 자신이 아나키즘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는 반권력적인 아나키스트들은 당연히 독재에 저항한다고 보면서도, 인간은 타인과 협력하면서 개인의 자발성이라는 자유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것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교육과 선전이라는 과정을 필요로 하는 것임을 그는 잘 알았다.

그런데 말라테스타는 조직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경계의 시선을 보냈다. 이는 생디칼리슴을 주장하는 자들이 노동조합운동만으로 아나키즘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와 반대로 말라테스타는 노동조합이 아무리 혁명적이라고 해도 그것이 여전히 자본주의 체제에 속해있는 한 노동조합 자체가 아나키즘 사회를 약속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말라테스타는 아나키스트들이 노동조합은 물론이고 진보적인 정당이나 여타 사회조직과의 협력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그 어떤 조직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특히 노동조합에 대해 말라테스타는 보수를 받는 전임자들이 관료화되고 특권화되는 현실을 비판했다. 나아가 아나키스트가 유급 상근직을 맡는 것에 대해서는 아나키즘의 대의를 버린 자라고 비판했다. 또한, 노동조합의 파업이나 총파업 등은 수단이지 목적일 수 없고 목적은 어디까지나 아나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랑과 연대 속 아나키즘의 원리를 고민하다

사진=위키미디어
말라테스타는 만년에 사랑과 연대 속에서 아나키즘의 원리를 찾으면서 증오와 복수를 추방하고자 했다. 사진=위키미디어

말라테스트에게 비판할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말라테스타가 1876년에 쓴 초기 문서에서는 봉기를 가장 효과적인 선전수단으로 보고 그것에 의한 사회주의 건설을 주장했다. 러시아에서 테러리즘으로 이해된 바쿠닌의 파괴라는 교의가 이탈리아에서는 민중봉기라는 폭동의 형태로 구체화 된 것이다. 그러나 1877년의 사제들이 말라테스타를 비롯한 아나키스트들을 ‘신의 참된 사도’라고 부르면서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사회혁명이여, 영원하라’라고 외친 베네벤토 봉기 이후 봉기주의는 자취를 감추고 이후 테러리즘이 서양을 휩쓸었다. 이에 따라 말라테스타와 함께 아나키즘 운동에 투신했던 코스타는 사회민주주의로 돌아섰고, 카피에로는 논쟁에 지쳐 정신이상이 되었다. 

그래서 말라테스타만이 바쿠닌의 전통에 머물렀으나, 1880년대 이후에 격렬하게 전개된 테러리즘에는 찬성하지 않았다. 그것이 쿠데타와 같은 정치적 변혁에는 유용할 수 있지만, 사회혁명에는 유효하지 않고 민중과 유리된 사회혁명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민중의 다양한 생활에 맞추어 다양한 해법이 모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거대 조직에 대해서는 그것이 관료화되고 권력화되는 점을 경계했다. 말라테스타는 만년에 사랑과 연대 속에서 아나키즘의 원리를 찾으면서 증오와 복수를 추방하고자 했다. 그래서 “만일 승리를 위해 거리에 교수대를 세워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패배하고 싶다”고 했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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