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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토릭은 추잡한 것일까, 훌륭한 시민의 기술일까
레토릭은 추잡한 것일까, 훌륭한 시민의 기술일까
  • 유무수
  • 승인 2022.04.0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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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레토릭의 역사와 이론』 제임스 A. 헤릭 지음 | 강상현 옮김 | 컬처룩 | 628쪽

양쪽 모두를 고려하고 자기 방어를 위해 유용한 레토릭
레토릭은 중립적인 도구인가 아니면 부도덕한 행위인가

레토릭은 설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레토릭이 동의를 유발하는 중립적인 도구인지 아니면 조작으로 끝나는 부도덕한 행위인지”를 놓고 논쟁이 발생했다. “그건 레토릭에 불과해”와 같은 부정적인 표현은 레토릭이 인기를 끌던 BC 4세기 초반, 플라톤이 쓴 『고르기아스』에도 나온다. 플라톤은 레토릭을 더럽고 추잡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참여적인 민주체제인 아테네의 법정, 민회, 행사 등에서 설득적인 스피치가 성공의 핵심요인으로 부상할 때 소피스트는 고액의 수업료를 받고 레토릭을 가르쳤다. 레토릭 실천에 관한 포괄적 철학을 발전시킨 프로타고라스는 어떤 쟁점에서나 모순적인 주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모든 주장은 반대 주장에 직면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주장이란 “검증되고 반대쪽에서의 공격을 견뎌냈을 때라야만 승리하는 것”이다. 소피스트는 “세계는 언어적으로 재창조될 수 있다”라고 믿었다. 그들에게 실재는 객관적 사실이기보다 언어적 구성물이었다. 진리가 가장 설득력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라면 지식이란 개개인이 그렇다고 믿는 주관에 불과하다. 이러한 급진적 관점에 기반 한 레토릭은 보수적인 아테네인을 불편하게 했다.

로마 시대의 퀸틸리아누스는 레토릭을 훌륭한 시민 기술로 규정했다. 그는 로마의 이익을 위해 레토릭의 힘을 이용하는 시민의 역할을 연설가에게 부여했다. “나의 목표는 완벽한 연설가 교육이다.… 그가 천부적인 스피치 능력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동시에 좋은 품성을 지녀야 한다는 뜻이다.” 중세 유럽 교회 설교에서 레토릭 기술이 발전했다. 설교를 듣는 다수가 성서의 내용에 익숙하지 않은 문맹인 상황에서 13세기 바스보른의 로베르가 만든 『설교의 형식』은 세 부분으로 나누는 설교방법을 논의했다. 주제는 “셋을 넘는 진술을 포함해서는 안 되거나 혹은 셋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독일의 언어철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레토릭에 대해 구체적으로 쓰지는 않았지만 저자는 하버마스가 20세기 후반 레토릭 연구에서 합리성을 평가하는 수단을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하버마스는 인간 노력의 어떠한 측면도 합리적으로 순수하거나 편향적이지 않은 경우는 없다고 이해했으며, 합리적 토론에 열려있는 의사소통 능력과 공론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로런스 프렐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도시환경은 우리의 주목을 받기 위해 “배치를 통해 레토릭하게 구성된 것”이라는 ‘배치 레토릭’ 개념을 제기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진리를 수호하고, 복잡한 아이디어를 덜 훈련된 청중에게 적용시킬 수 있으며, 어떤 경우의 양면을 모두 고려하고, 자기 방어를 위해 유용하기 때문에 레토릭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여전히 레토릭을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가?”라고 저자는 질문한다. 

이 책은 2001년에 2판, 2021년에 7판이 나왔다. 책 뒷부분에서 각 장의 핵심내용을 심화하며 이해해볼 수 있는 토론문제들은 저자인 제임스 A. 헤릭 교수의 강의실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옮긴이인 강상현 연세대 교수(언론홍보영상학부)는 수업준비를 위해 “레토릭 이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아주 잘 정리된” 관련문헌을 검토하던 중 이 책에서 “바로 이거다”라고 느꼈다고 했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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