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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새끼 돼지 때려죽인 건 위법인가, 생계 노동인가
병든 새끼 돼지 때려죽인 건 위법인가, 생계 노동인가
  • 유무수
  • 승인 2022.03.30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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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동물 너머』 전의령 지음 | 돌베개 | 189쪽

18세기 고양이 대학살 사건은 노동착취가 발단
이미지가 보여주는 현실 너머의 현실 살펴봐야

인류학자인 전의령 전북대 교수(고고문화인류학과)는 이 책에서 동물복지 담론 ‘너머’에 산적한 사회적 문제에 주목한다. 동물과 맺는 관계 방식은 “단일하지도 균일적이지도 않다.” 저자는 동물복지 담론에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젠더, 계급, 정체성, 권력 등을 조명했다. 우리는 어떤 고통에는 움직이고 어떤 고통에는 움직이지 않고 있는가. 우리는 이미지가 전달하고자 하는 현실과 그 현실 너머의 현실 사이에서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경상남도의 한 돼지농장에서 새끼 돼지 수십 마리를 망치로 때려죽이는 영상이 언론과 SNS에 공개되어 큰 파장을 일으켰다. 동물단체는 동물보호법을 위반했다며 고발했다. 해당 농장은 병이 든 돼지를 죽였다고 변명했고, 동물단체는 상품성이 떨어지는 돼지를 도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러한 논쟁의 프레임 너머에 있는 노동자를 조명한다. 돼지를 때려죽이는 작업은 이른 바 ‘3D’ 노동에 해당한다. 동물에 대한 폭력으로 간주되는 일을 하는 노동자는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비정규직 노동자 또는 이주민 노동자일 가능성이 높다. 동물단체의 주장을 수용하여 상품성이 떨어지는 돼지를 도태시키지 않으면 돼지농장은 적자누적으로 망할 것이다. 새끼 돼지의 고통은 보살펴주어야 하고 돼지농장 주인의 고통은 외면해도 되는 것일까? 

미국의 주정부는 금지하고 있지만 미국 남부에는 두 마리의 개 중에서 한 마리가 거의 죽을 때까지 싸움을 시키는 ‘개싸움’이 있다. 개싸움은 동물들의 단순한 싸움이 아니다. 개싸움에는 남부 노동계급의 상처받은 자존감이 투영되어 있다. 잘 싸우지 못하거나 싸움을 회피한 개는 주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의미가 부여되어 죽여 버린다. 18세기 파리의 한 인쇄소에서는 ‘고양이 대학살’ 사건이 벌어졌다. 인쇄소 주인의 애완 고양이보다 못한 취급을 받던 인쇄공들의 분노가 동네 모든 고양이를 잡아 죽이는 사건으로 표현된 것이었다. 그 의미는 노동착취에 대한 반기였고 부르주아 문화에 대한 조롱이었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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