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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우크라이나 사태가 빚은 중동 외교 변화
[글로컬 오디세이] 우크라이나 사태가 빚은 중동 외교 변화
  • 성일광
  • 승인 2022.03.30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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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성일광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책임연구원
압둘라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외교·국제협력부 장관(왼쪽)이 지난 17일 러시아 모스크바에 방문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오른쪽)과 악수하고 있다. 이날 알 나흐얀 장관은 우크라이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모든 중재 노력을 환영하면서도 국제 에너지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러시아와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사진=타스연합뉴스
압둘라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외교·국제협력부 장관(왼쪽)이 지난 17일 러시아 모스크바에 방문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오른쪽)과 악수하고 있다. 이날 알 나흐얀 장관은 우크라이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모든 중재 노력을 환영하면서도 국제 에너지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러시아와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사진=타스연합뉴스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자유민주주의가 2차 세계대전에서 파시즘을 이겼고 1989년 소련이 붕괴하기 시작하자 공산주의마저 이겼다며 「역사의 종언」이란 제목의 에세이를 외교정책 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기고했다. 그는 3년 후 1992년 『역사의 종언과 마지막 인간』이란 저서를 내며 자신의 이론을 더 정교화했다. 후쿠야마 교수가 간과한 것은 중국 사회주의의 공고함과 포퓰리즘에 기반한 푸틴의 독재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후쿠야마 교수의 결론이 너무 성급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뼈아픈 사건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국제 정치 질서뿐만 아니라 중동 정치 질서에도 새로운 함의를 던져주고 있다. 2월 말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규탄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채택을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안전보장이사회 상임 이사국인 러시아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 이사국인 UAE가 미국이 추진한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고 기권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미국의 비공식 동맹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 역시 미국이 추진한 결의안을 지지한다는 서명 작성을 거절했다. 전통적인 친미 국가 UAE와 이스라엘이 미국에 반하는 결정을 내린 배경은 무엇일까.

UAE와 이스라엘은 이미 수년 전부터 미국에만 의존하기보다는 다른 신흥 강대국과의 전략적 다각화에 몰두해 왔다. 전략적 다각화의 배경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이끄는 규범에 기반한 국제 질서와 냉전 이후 시대의 유산이 쇠락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매우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로 남아 있지만, UAE와 이스라엘과 같은 크기가 작고 주변국(이란)의 위협에 취약한 국가는 잃을 게 많은 만큼 전략적 수단과 외교적 선택의 다각화를 피할 수 없는 국제환경이 조성됐다. 게다가 강대국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따른 다극 체제의 출현 가능성은 UAE와 이스라엘에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따라서 UAE와 이스라엘은 러시아와 중국에 화해의 손짓을 내밀면서 워싱턴과의 외교 관계 손상을 최소화하고 있다. 최근 UAE와 이스라엘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의 최대 관심사는 중국과 미국 간 신냉전 구도가 형성되고 한 국가를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다. 유엔 무대에서 발생한 외교적 혼선은 갑자기 발생한 우크라이나 사태로 UAE와 이스라엘이 워싱턴과 모스크바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벌어진 사건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모스크바가 UAE와 이스라엘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미국에 실망한 UAE와 이스라엘은 러시아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지렛대로 이용해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끌어낼 수 있다. 모스크바는 또 미국이 제공하지 않는 무기, 정보와 외교적 지지를 제공하며 미국의 공백을 채우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특히 2019년 이란이 사우디 동부 아브카이크와 쿠라이스 아람코 석유 시설을 공습한 이후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하지 않자 사우디는 물론 역내 친미 국가는 안보를 미국에만 의존할 수 없음을 절감했다. 이스라엘과 UAE는 이미 2015년 체결된 이란 핵 합의(JCPOA)에 불만을 품고 있었고 현 바이든 정부가 핵 합의 복원을 위해 이란에 너무 끌려간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이 화웨이의 5G 통신망 도입을 반대하자 UAE는 미국과의 5세대 전투기 F-35 도입 협상을 중단시켜 양국 관계가 경색된 바 있다. UAE는 러시아와 방산 협력을 강화해 왔고 러시아가 포함된 OPEC+ 원유생산 합의를 국가 개발과 경제 다각화 계획의 초석으로 보고 있다. UAE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방의 대러시아 원유제재 때문에 원유를 증산해야 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한다. 원유 증산이 자국 장기계획에 차질을 줄 뿐만 아니라 원유를 저가에 판매해야 할 수도 있으므로 UAE로선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러시아의 도움이 필요한 이유는 이란 때문이다. 이란은 시리아에서 이스라엘 공격을 위한 군사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물론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에 무기를 공급하는 작전을 수행해 왔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군사적 활동을 막기 위해 공습은 물론 비밀 군사작전도 불사하고 있다. 시리아에서 전개되는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은 러시아의 암묵적 동의 없인 어려운 만큼 이스라엘은 마냥 푸틴을 비난할 수 없는 처지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와 중동에서의 전략자산 축소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자유민주주의가 무참히 파괴되는 일련의 혼돈에서 이스라엘과 UAE가 얻은 교훈은 국제사회는 무정부 상태라는 뼈아픈 현실 인식일 것이다. 다시 말해 국제 관계는 경제협력과 타협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점철되는 냉엄한 현실인 만큼 생존을 위해서는 자구책(self-help)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러시아를 통한 UAE와 이스라엘의 전략적 다각화는 생존을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성일광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책임연구원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에서 중동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국 이스라엘 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는 『Mamluks in the Modern Egyptian Mind: Changing the Memory of the Mamluks, 1919-1952』 (Palgrave MacMillan, 2017)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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