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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돌아보는 한국 연극운동사
21세기에 돌아보는 한국 연극운동사
  • 김재호
  • 승인 2022.03.24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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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영 지음 | 푸른사상 | 672쪽

한평생 연극사를 공부하면서 그에 관한 학술 저서를 여러 권 펴냈지만 언제나 독자는 한정되어 있었다. 솔직히 딱딱한 문장에다가 각주가 주렁주렁 달린 책에 일반 대중이 관심을 가질 리 만무했다. 사실 연극사 연구도 궁극적으로는 극예술의 부흥에 보탬이 되어야 할진대 상아탑의 담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때때로 들곤 했다. 더구나 대중의 정서 함양과 삶의 환희를 안겨주어야 하는 극예술에 대한 연구가 상아탑 안에만 머물러서는 제 역할을 다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다.

 

우리나라 근현대 연극 발전의 궤적을 따라간 『21세기에 돌아보는 한국 연극운동사』는 개항 이후 현대까지의 한국 연극사를 정리한 책이다. 개화기 이후 전개된 신극 운동부터 21세기 뮤지컬 전성시대까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온 한국 연극의 자취를 그리며 오늘날의 현대 연극계를 조망한다. 연극계 선구자들의 생생한 증언과 자료 사진을 곁들였고,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식 서술로 연극사를 입체적이고 풍부하게 풀어나간다.

외세 침략과 국권 상실, 전쟁 등으로 굴곡진 시대를 거치며 전개된 한국 근대극은 예술 그 자체로서 존재하기보다는 시민 의식을 변화시키고 사회 변혁을 추동하는, 그야말로 ‘운동’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해왔다. 연출가도 연극비평가도 없었던 20세기 초반, 신문명과 신문화의 물결 속에서 연극은 문화의 한 형태로 존재하기보다 오락물로서 기능했다. 최초의 관립극장인 협률사 등이 세워지고, 야외에서 옥내로 무대를 옮겨감으로써 무대예술의 판도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판소리나 재담, 무용 등이 번창했으나, 전통극을 그대로 전수하거나 창극을 변형시키는 것에 그쳤고, 일본의 저질 신파극을 비판 없이 수용했다.

3·1운동 이후 자각한 청년 학생들이 종합예술로서의 연극 중요성을 인식하고, 연극을 사회운동의 중심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김우진, 박승희, 유치진 등의 선구적 인물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유학 생활을 거쳐 새로운 형태의 연극과 연극이론을 소개하고 실험함으로써 연극 진흥을 위해 고뇌했다. 비록 현실에 벽에 부딪쳐 좌절되기도 했지만, 그들이 내린 근대극의 뿌리가 연극 중흥에 이바지했다.

최초의 연극 전용 극장이었던 동양극장을 둘러싸고 한 시대를 풍미하던 인기 스타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되고, 이념 대립과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공연을 멈추지 않으며 연극 현대화를 위해 노력했던 연극인들의 노력은 존경스럽기만 하다. 마당극, 일인극, 번역극, 뮤지컬 등 다양한 연극 형식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발전해온 우리 연극은 이제 글로벌 시대를 맞이했다. 유민영 교수는 21세기에 이르러 눈부시게 달라진 현대 연극을 조망하며 무대예술이 담당해야 할 사회적 기능에 대해서도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책머리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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