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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조언_‘군주론’과 ‘로마사 논고’, 어떻게 읽을 것인가
전문가 조언_‘군주론’과 ‘로마사 논고’, 어떻게 읽을 것인가
  • 김종법 한양대
  • 승인 2005.11.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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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의 정당화”가 아닌 근대국가의 실천논리

인류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커다란 사상적 논쟁 중 하나는 ‘국가’에 대한 것이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형태나 개념적 차가 있었지만, 본질적으로 국가의 형성과 권력유지 문제는 모든 정치사상가들과 인간의 중심문제였다. 특히 역사적으로 시기구분을 하는 것과 정치학이라는 학문을 추상적인 수준에서 구체적인 수준으로 전환시키면서 그 연구대상을 철학적 당위에서 학문적 존재로 바꾼 획기적 동인은 바로 ‘국가’ 개념이었고, 이를 구체화 시킨 이가 바로 마키아벨리였다.

즉 사회과학분야에서 마키아벨리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가 단행한 정치철학에서 정치과학으로의 이행이야말로 ‘근대’ 정치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고, 그의 ‘국가’ 개념은 전환의 중심주제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가 있다. 두 저서를 아우르는 큰 주제는 근대국가의 성격과 이탈리아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국민국가에 대한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근대국가 개념은 ‘공동의 선’이라는 국가성립의 목적과 당위성을 밝히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이념으로 자유와 자율을 강조하고, 국가 구성단위를 계급적 측면에서 고찰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양 저작을 통합하는 개념으로 ‘국가이성’이라는 철학적 기반 위에 현실적인 ‘군주’ 개념과 더불어 정체의 문제, 국민개병제의 의미를 갖는 군대의 문제, 이를 위한 계급적 구분을 통한 국민국가의 정당성 부여를 위한 귀족과 민중의 이분법적 계급 대립론, 국가 내부의 사회적 제도로서 종교와 법률의 상정 문제 등을 거론한다. 이로써 근대국가 개념이 논리적으로나 이론적으로 시대를 뛰어넘는 생명력을 갖게 됐다.

결국 마키아벨리의 학문은 오늘날에도 정치학의 하부연구 주제이며, 아울러 현실적 제도와 장치를 설명케 하는 준거점이 됐다. 또 이탈리아 정치학의 전통을 확립한 선구자로서 ‘국가이성’ 논쟁과 절대주의 국가이론 등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20세기 초에는 그람쉬에게 재평가돼 ‘현대군주Il Principe moderno’라는 이름으로 사회주의 정당과 국가논쟁으로까지 확대됐다.

이탈리아와 대한민국은 반도라는 지리적 유사성 외에도 공통점이 많다. 특히 근대의 역사적 배경이 상당히 비슷하다. 더구나 국민국가 형성이 늦었다는 점, 중세에서 현대로 바로 진입한 점 등은 우리가 이탈리아의 역사나 사상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분명한 이유다. 바로 마키아벨리야말로 그런 이탈리아의 상황을 그 누구보다 적시하고 그 해결책을 이탈리아가 처한 역사적 현실에서 구했고, 거기서 기반한 두 저서가 ‘군주론’과 ‘로마사논고’인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사회에서 읽혀지고 있는 마키아벨리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지나치게 권력획득의 당위성만을 주장하는 수단적 측면에서 대표되는 정치사상의 전형으로 그려지거나, '군주론'이 마키아벨리 사상의 종결로 읽혀지는 경향은 마키아벨리에 대한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군주론'이 갖는 단편성을 회복시켜 주면서 전체적인 구도를 잡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로마사논고’다. ‘논고’에서 마키아벨리가 주장하려는 바는 권력획득의 절차보다는 획득한 정치권력의 집행과 그것이 민주적 타당성을 갖기 위한 정체(Polity)에 대한 논의다. 즉, 그는 정치권력의 획득과 실행이라는 두 경우를 각각의 저서에 따로 담아서 정치학의 근본 원칙을 종합적인 구도로 설명하고자 했다.

이것이 현대에도 마키아벨리가 유용성을 갖는 이유이며, 어째서 '로마사 논고'에서 강조되는 핵심 개념이 '비르투'인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통치권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서 비르투가 정치권력을 획득한 뒤에는 가장 중요한 통치원칙으로 전환될 수 있으며, 그것은 정치권력의 속성인 헤게모니의 행사와 내용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마키아벨리를 읽는 기준점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보다 적확한 마키아벨리의 이해를 위해선 그의 주요 저서 3권을 모두 읽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는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아직 소개되지 않은 ‘전쟁술’을 함께 읽는다면 마키아벨리 사상의 종합적인 체계가 그려질 수 있을 것이다.

김종법 / 한양대·정치사상

필자는 이탈리아에서 ‘한국적 시각을 통해 본 그람쉬 헤게모니 개념에 대한 일고’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군주론'과 '로마사논고'에 나타난 마키아벨리의 근대국가 개념의 차이성 및 동질성 연구’ 등의 연구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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