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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문화재청의 정치적 상상력
교수논평: 문화재청의 정치적 상상력
  • 조은정 한남대
  • 승인 2005.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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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정/한남대·미술사

  40여 년간 퀴즈게임의 기초문제 노릇을 해왔으니 ‘국보1호 숭례문’은 대한민국 국민의 상식이었다. 그런데 최근 누리꾼의 검색어 1위로 ‘국보1호’가 떠올랐다. 국보1호를 재지정하자는 의견이 일자 찬성과 반대, 대안 들이 논의되었고, 11월 14일 긴급소집된 문화재위원회의 ‘유보’ 결정에 따라 국보재지정 문제는 내년으로 사안이 넘어갔다.

주요 관심사인 국보1호 변경에 대한 논의 결과치고는 싱겁기 짝이 없지만 문화재위원회의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다. 이미 10여 년 전인 1996년에도 국보1호 재지정은 건의된 사안이었고, 당시 결정도 지금과 같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의 결과가 같다고 해서 국보1호 재지정 소동의 원인이나 사안이 같은 것은 아니다.

  김영삼 정부 때 국보1호를 재지정하자는 논의 속에서 진행된 여론조사에서는 전문가 중 59%, 일반인 68%가 국보1호 재지정을 반대했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감사원은 국보1호를 문화재적 가치에 따라 다시 지정하도록 문화재청에 권고하겠다는 지적을 하였고, 최소한 국보1호 숭례문은 교체할 수도 있다는 문화재청의 답변은 국보1호 재지정 논의에 불을 지폈다.

감사원이 검토중인 새로운 국보1호의 후보로는 간송미술관 소장 <훈민정음>과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이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석굴암, 해인사 팔만대장경 등이라고 알려졌다.

  전국민의 우리 문화재에 관심이 이토록 지극한 것임을 드러내는 사건이라고만 하기에는 문화재로서 국보1호 재지정 논의가 일고 진행된 과정에는 관심을 두고 확인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왜 하필 지금 이 시점에서 국보1호가 문제인가, 둘째 언제부터 감사원이 국보의 일련번호에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가, 셋째 진실로 숭례문이 국보1호로 지정될 자격이 없는 것인가, 또한 국보의 일련번호가 문화재 가치의 중요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던가라는 점이다.

이 모든 의문은 결국 하나의 문제점으로 귀결되는데 숭례문이 ‘일제강점기에 지정된 국보1호’라는 명제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이다.

  감사원이 국보1호 재지정을 언급할 수 있었던 것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승리를 확인해주는 상징적 장소가 숭례문이었다는 데 있다.

1934년 조선총독부가 '조선 중요문화재 보존령'을 내리면서 보물1호로 지정된 것인데 1955년 그대로 숭례문을 국보1호로 삼은 것은 일제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로 본 때문이었다.

물론 항간에 알려진 국보지정 배경은 왜곡된 점이 없지 않았고, 1962년 일괄정비된 국보와 보물도 일련번호일 뿐 중요도에 따라 조정된 것은 아니었다. 국보1호 재지정은 일제청산, 문화재의 중요도에 대한 재인식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결국 국보1호에 대한 관심이 감사원이라는 국가기관에 의해 촉발됨으로써 문화재 정책이 여전히 기억공동체로서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기제로 사용되고 있음을 증명한다.

‘역사 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국보1호를 바꾸자고 했으니 기꺼이, 중요한 문화재로 거론되는 대상이 천번이나 새로 등장할지라도 바꾸고 또 바꿀 일이다. 국보1호만 바꾸어 역사가 바로설 수만 있다면 말이다.

  문화재에 대한 관심은 일반에서는 ‘애호’로 국가적으로는 정책으로 반영된다. 과거 대한민국 제1공화국은 한국전쟁 직후 국가적인 고적보존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하였다.

한데 해인사 장경각에는 동기와를 얹어 번쩍이게 하려 하였던 반면 개발을 빌미로 한양성의 성곽은 헐어내었다. 과거의 영화를 오늘에 자랑하는 증거물로서 문화재와 현실의 이익을 증가시키는 데 방해가 되는 문화재에 대한 이중잣대를 지니고 있었던 셈이다.

나아가 문화재 애호사상을 고취하기 위하여 커다란 현수막을 숭례문 기둥에 못질을 하여 걸었으니 국가주도의 문화재 정책이 얼마나 정치적인 선전에 있었던 것인가를 증명하였다.

  50년 전과는 다른 정치의식의 사회지만 문화가 과거지향적일 경우 정치지배에 대한 복종은 보다 강하게 나타난다는 원리가 새삼스럽다. 국보1호 숭례문은 오늘날 도심 한가운데 약간의 육축만을 거느리고 있다고 해서 왜소한 문화재로 치부될 대상이 아니다.

역사를 바로세우는 데 노력을 기울인 증거가 국보1호가 바뀐 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숭례문, 50년 전 두들겨박은 쇠못에 생긴 생채기가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음을 인식한다면, 국보와 보물의 가치를 숫자로만 인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화재는 보호되어야 하지만 늘 의연함을 지킨 그 자태대로 인정해줄 일이며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할 일이다.

숭례문에 화염병을 들고 올라가서는 안되는 것은 국보1호여서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 소중한 문화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목적의 도구로 문화재가 거론되지 않을 때 문화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그래서 후년으로 기약된 국보와 보물 등 문화재지정에 대한 전면적이고도 총체적인 기획이 더욱 중요하다.

문화재는 민족 역사의 증거이자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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