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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서열, 대학 속 서열
대학의 서열, 대학 속 서열
  • 김자중
  • 승인 2022.03.21 0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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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김자중 강원대 교육학과 강사
김자중 강원대 교육학과 강사

한국 대학의 서열구조는 이미 일제 식민지기에 그 싹이 보인다. 식민지 고등교육체제의 서열구조 안에서 가장 꼭대기에는 경성제국대학, 그 아래에는 관립전문학교, 그리고 가장 밑바닥에는 사립전문학교가 있었다. 이는 각 학교 간에 교육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한 경쟁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게 아니라, 조선총독부의 관학(경성제대와 관공립전문학교) 우대정책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내용 중 하나는 조선총독부의 재정 지원이다. 고등교육기관 예산은 경성제대에 집중적으로 배정됐다. 그 다음은 관립전문학교다. 사립전문학교의 경우 전시체제기 이전까지 총독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은 사례는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와 경성약학전문학교 정도에 불과했다. 기독교계 사립전문학교는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그밖의 학교는 재정난에 허덕이며, 주로 학생들이 내는 수업료에 의지해서 운영됐다.

다른 하나는 관학 졸업자에 대한 자격 부여다. 예를 들면 경성제대 의학부나 경성의학전문학교 졸업자는 이미 1920년대부터 일본 제국 어디서나 통용되는 내무성 의사면허를 받았으나,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 졸업자는 1934년이 돼서야 그 자격을 받았다. 관학 졸업자는 중등학교 교원검정시험인 소위 ‘문검’을 치르지 않고 공립중등학교 교원이 될 수 있었으나, 사학 졸업자는 사립중등학교 교원만 될 수 있었고 공립중등학교 교원이 되기 위해서는 문검에 합격해야 했다.

일반적으로 해방 이후 한국 대학은 미국모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서울대학교는 미국의 주립대학 모델을 참고한 것이라고 한다. 대학원·학부의 구성이나 운영방식은 분명히 그렇다. 그러나 미국의 주립대학은 서열구조의 꼭대기에 있지 않다. 서울대의 서열은 경성제대의 서열(일본모델)에서 비롯된 것이다. 왕년의 사립전문학교는 서울 시내 유명 사립대학으로 신분상승했다. 이제는 새롭게 소위 ‘지방대’가 이들을 떠받치고 있다.

한국 대학 속에도 서열구조가 있다. 가장 밑바닥에는 시간강사가 있다. 내가 겪은 일이다. 2020년 2학기 A대학 강사 채용 공고에 1학기와 2학기 모두 ○○과목을 배정한다고 적혀 있었다. 운 좋게 채용되어 계약서를 쓰고 2학기에 ○○과목 강의를 했다. 그런데 다음해 1학기를 앞두고 2월 중순까지 학교 측으로부터 아무 연락이 없었다. 먼저 연락해보니 1학기에는 ○○과목을 배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본래 ○○과목은 2학기에만 배정되는 과목이고, 공고를 그렇게 올린 건 전임 학과장의 실수였다고 한다.

계약위반이라고 항의하고 사과공문을 요구했다. 돌아온 공문의 내용은, 요약하면 ‘계약위반사항 없음’이다. “폐강으로 인해 교과목을 배정하지 않을 수 있고 담당과목을 변경할 수 있다”는 조항이 그 근거였다. 배정 자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폐강이 아니라고 반박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와 함께 학교측은 △△과목을 제안했다. 내가 배운 적도, 가르쳐본 적도 없는 과목이다. 이 모든 게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을 취지로 한다는 강사법 제정(고등교육법 개정) 이후의 일이다. 새삼스레 대학 내 시간강사의 서열을 절감했다.

많은 학문후속세대들이 시간강사를 하고 있다. 시간강사는 대학 내 다른 주체들과 동등한 한 구성원이다. 여러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강의의 약 30%를 담당한다. 그러나 학교 측은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하지 않는다. 강사법은, 취지는 좋으나 여전히 문제가 많다. 학문후속세대는 삶이 불안정해지면 연구를 제대로 할 수 없다. 또한 그들이 참여하는 연구 프로젝트의 질도, 강의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학생도, 학교도 모두 손해다. 앞으로 강사법의 허점이 보완되어야 하고 학교 측의 인식도 개선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시간강사 노동조합의 힘이 더 세져야 한다.

김자중 강원대 교육학과 강사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일제 강점기 전문학교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가천대, 강원대, 건국대, 유원대에서 강의하며 한국 고등교육문제의 역사적 기원을 탐색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1919년 보성전문, 시대·사회·문화》(공저』, 『한국 대학의 뿌리, 전문학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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